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선한 문제작으로 호평을 받은 김동령·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는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수상에 이어 지난 연말 제42회 영화평론가협회상 독립영화지원상 극영화 부분에 선정됐다. 두 감독의 전작 <거미의 땅>(2016)도 이 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의 성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이번 상 또한 차기작의 탄생과 배급에 주요 자극과 자원이 될 것이다.
개관과 운영을 위해 작게나마 지원해온 대구 독립영화전용관(오오극장)이 올해 초 이 영화를 상영했다. 끈끈한 유대감으로 형성된 지역 영화공동체의 일원으로 공인된 이야기에 저항하는 작은 사람들의 스토리-텔링은 창조적 역량을 가진다. 이러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와의 예기치 못한 만남은 새로운 독립영화의 탄생 고지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경험을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그랬던 것 같다. 벌써 두 감독의 차기작을 고대하게 된다.
사라질 기지촌의 시공간에 도전하는 인순과 꽃분이
기지촌이라는 사라져 가는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 이후 6년 만에 나온 이 영화 또한 다큐멘터리 장르로 분류되고 있지만, 극영화 부분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듯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과감하게 넘나들며 새로운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지향하는 실험적인 영화다. 두 감독이 만든 첫 영화부터 촬영 대상을 객관적인 인터뷰와 관찰로 쫓아가는 전통적 다큐멘터리 방식 대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촬영 대상인 기지촌 위안부 박인순을 인터뷰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녀와 즉흥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배우들과 두 감독과의 협업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장르 자체에 대한 재고와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버전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40여 년 기지촌 위안부로 살아온 인순을 주인공으로, 그녀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신을 바라보는 영화”, “자신의 뇌를 펼쳐서 보여주는 영화”(1)를 만들고자 했다는 김동령 감독이 밝힌 제작 의도는 “뇌는 스크린이다”(2)라는 들뢰즈의 영화 철학을 상기시킨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설명 요구에 “그냥 내 맘대로 그렸어”라는 인순의 대답은 자극과 사유의 분자적 미립자들이 그녀의 뇌에 만들어낸 이미지를 그냥 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영화는 창조적 뇌의 회로를 쫓아갈 수 있다. 따라서 감독들이 만들고자 한 새로운 다큐멘터리는 바로 인순이 그림을 그리면서 생성되는 자신의 창조적인 뇌를 펼쳐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인순이 그린 그림의 제목이자 이 영화의 제목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말해주듯이, 이 영화는 그녀가 상상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그릴 때 그녀의 뇌의 회로와 연결이 만들어내는 스크린을 펼쳐 보인다. 그 세계에는 매달 거듭되는 수십 번의 임신과 낙태를 한 자신과 꽃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 “임신한 나무”, 이승을 헤매는 죽은 꽃분이 귀신들, 기지촌 여자의 죽음과 장례식을 돕는 도깨비들, 미군 머리를 잘라서 끌고 가는 인순과 꽃분이의 기괴한 복수, 이들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들 등이 등장하는 오드 판타지(Odd fantasy)의 세계다. 따라서 드라마,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복수 판타지를 혼성한 실험적 형식의 이 영화는 들뢰즈가 설명하는 '“기억과 전설 그리고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을 발휘할 수 있는 “가난한 자들의 스토리-텔링”(3)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각색된 이야기에 저항하는 스토리-텔링
성적 학대와 착취를 견뎌온 가난한 자, 약자, 소수자인 인순과 꽃분이들이 발휘할 수 있는 거짓의 역량은 공인된 이야기가 주장하는 진실에 대해 상대적인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그 역량은 “대안적 진실”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판단 체계 자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거짓의 역량을 의미한다. 창조적 뇌의 주인공 인순은 이런 거짓의 역량을 발휘해 자신을 피해자 또는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즉 다수 지배적 관점을 대변하는 이미 각색된 이야기, 공인된 이야기에 저항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그녀와 기지촌 꽃분이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인순의 스토리-텔링은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천한 여자의 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기지촌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목욕하는 인순의 벗은 몸이다. 두 번째는 후반부에 꽃분이 유령들이 미술작가가 도망가면서 두고 간 사진 자료집을 보다 찾아낸 국과수가 찍은 사건 현장 보존용 사진 속 죽어 누워 있는 매춘부의 몸이다.
후자가 반미 감정과 여성주의적 분노를 일으킨 참담한 현실을 증언해주는 갈기갈기 찢긴 피해자의 비참한 몸이라면, 전자는 지금이라도 몸을 팔 수 있으면 기꺼이 팔겠다는 당당한 매춘부의 몸으로 서로 대비가 된다. 이와 같이 인순의 늙었지만 건강한 벗은 몸을 씻는 장면을 오프닝에 담은 의도는 강인한 생명감을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로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정동적 힘이 내재된 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박경태 감독이 직접 출연해서 찍은 외부자들과 동반해 의정부의 기지촌 뺏벌로 들어오는 진입 장면이 시사하듯, 오늘날 미군기지 철수와 재개발사업으로 사라지게 된 뺏벌 방문은 과거 어딘가에서 멈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는 체험이 됐다. 뺏벌이 더 이상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이 아닌 시공간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그 죽은 잔해마저도 파헤쳐져 산업폐기물로 버려진 수많은 무연고자 기지촌 여자, 양색시, 양공주, 이 영화에선 꽃분이로 불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회자되지 않은 채 사라질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사라지는 소멸에 도전해 인순이와 꽃분이들의 이름 모를 뼈다귀들이 “있는 힘껏 서로를 부딪쳐” 소리를 내서 함께 탄생시킨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세 명의 등장인물들을 화자로 한 내레이션을, 즉 다양한 목소리의 이야기들을 제공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화자 1(꽃분이 2), 전반부는 화자 2(미술작가), 후반부는 화자 3(대장 저승사자)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실패한 인순과 꽃분이들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전반부는 이들을 피해자와 관음증적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공인된 이야기가 어떻게 실패한 이야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롱테이크 기법, 죽음에 맞선 인순의 마인드 스크린 담아
명부에 없는 꽃분이들을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 죽음과 소멸로 이들의 이야기를 종결시키려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 만들기와 이에 맞서 인순과 꽃분이가 함께 만드는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 만들기 시도로 후반부가 전개된다. 저승사자들이 만드는 이야기 또한 “똑같은 (공인된) 이야기가 반복”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무모하고 자신만만한 여자” 인순이 죽음을 비장하게 직면하며 대장 저승사자의 권위에 단호하게 맞서 마침내 꽃분이들의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과정이 후반부를 구성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 기법 또한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카메라는 화자 2(미술작가)의 카메라처럼 피사체를 따라 이동하기보다는 주로 정지된 상태에서 롱테이크로 화면을 담는다. 이런 기법은 피사체를 프레임 속에 가두기보다는 카메라의 눈이 보고 있는 것과 그것을 의식하고 변형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든다. 저승사자들이 꽃분이 유령을 찾는 장면, 꽃분이 유령이 어메이징 클럽 벽 앞을 일렬로 서서 타령과 장구 장단에 맞추어 오고 가는 장면을 정지한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담은 장면을 살펴보자.
용기있는 작은 사람… 인순의 당당한 에필로그
후면 골목길 끝에 보이는 클럽의 담벼락을 스크린으로 삼아 전면에서 프로젝터가 투사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이 장면은 인순의 뇌가 펼쳐 보이는 마인드 스크린과 함께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으로서의 인순의 존재를 실제 관객에게 부각시킨다. 이런 정지된 카메라의 롱테이크 기법은 저승사자의 시각과 그것을 보는 인순의 시각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두 개의 이야기를 함께 연결해, 즉 다성성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데 매우 적절한 카메라 기법이다.
인순과 꽃분이가 미군의 목을 잘라 끌고 가는 기괴한 장면과 죽은 꽃분이들을 깨어나게 만드는 인순의 섬뜩한 울음과 웃음소리는 엘렌 식수(Hélène Cixous)의 페미니스트 매니페스토「 메두사의 웃음」(4)을 연상시킨다. 거짓의 역량을 가진 꽃분이들은 기존 신화의 목이 잘린 메두사를 페르세우스의 목을 자른 메두사로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후반부의 엔딩을 장식하는 클로즈업된 메두사의 웃음은 웃는 인순이의 얼굴을 보는 자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치명적인 능력을 가진 무서운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인순의 벗은 몸처럼 강인한 저항과 생명의 정동적인 힘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뺏벌에 죽어 누워 있는 꽃분이들이 부러워했던 두 다리가 튼튼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인순이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장면의 반복으로 끝난다. 혼자 영화관에 가 어둠 속에서 거대한 환영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순은 이 영화가 만든 그녀의 이야기의 ‘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창조적 뇌를 가진 무모하고 당당한 아름다운 여자다. 그리고 끝에서 다시 끝을 시작하는 시도야말로 소멸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작은 사람의 유일한 이야기 방식인 것이다.
글·정문영
영화평론가, 영화각색연구자, 현대연극과 영화 비평이론, 연극, 영화, 각색에 대한 논문과 평론 등 관련 글을 쓰고 있다.
(1) 서울독립영화제 2019 인터뷰('이야기되지 못한 이야기들'-<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동령,박경태 감독) 참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006810&memberNo=37618212&searchKeyword=%EC%98%A4%EC%9C%A4%EC%A3%BC&searchRank=2
(2) 그레고리 플랙스먼, 『뇌는 스크린이다: 들뢰즈와 영화철학』박성수 옮김, 이소출판사, 2002.(‘뇌는 스크린이다’라는 제목의 들뢰즈와의 인터뷰)
(3) 질 들뢰즈, 『시네마 II: 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시각과 언어. 2005.
(4)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 박혜영 옮김. 동문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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