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 감정과 생각 등이 폭발적으로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장편, 단편을 가리지 않고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며 정서적 충격을 받거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몰입해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그런 영화를 만났다. 6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화였지만, 여운은 꽤 길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이 먼저 다가왔고, 이어서 여러 궁금증이 밀려왔다. 바로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네마프2024) 글로컬 부문에서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영화 <8mm>(다니엘라 프라도 사라수아 Daniela Prado Sarasua, 칠레, 2024) 이야기다. 이번 네마프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됐던 영화 <8mm>의 제목이 지닌 여러 의미와 함께 이 영화의 강렬함을 소개하고 싶다.
8mm 필름, 과거와 현재의 공존
제목 그대로 영화 <8mm>는 8mm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반세기 전 주로 홈 무비를 촬영하는 데 사용되었던 필름으로 촬영되었고, 이후 디지털 효과가 추가되어 옛 감성을 듬뿍 담아냈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면 시간적 배경이 과거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옛이야기를 하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8mm 필름 감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옛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결되지 않은 오래된 문제를 시각적인 역설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8mm, 태아의 크기
영화 초반, 제목 <8mm>가 뜰 즈음에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온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8mm’라는 말이 들려오고 자막으로도 나타난다. 아주 짧은 대화지만, 8mm 크기의 작은 점이 태아라는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제목 <8mm>까지 뜨고 나면, 어항 속 물고기를 보고 있는 어린 여성이 등장한다.
임신 진단이라는 극적인 상황이 매우 짧게 말과 글로만 표현된 이후, 등장한 어린 여성은 충격을 좀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특별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 그 속을 짐작하긴 어렵다. 멍한 표정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포춘쿠키를 산 뒤, 거리를 걷는다. 8mm 카메라는 그런 여성을 따라간다. 이 여성은 어떻게 될까?
8M, 칠레 여성 시위 지원 단체
거리를 배회하던 여성은 시위대에 휩쓸리게 된다. 옛 필름 감성의 영상에 펼쳐지는 시위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시위를 설명하는 말이나 글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구호도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대신 시위의 열기만이 필름 감성의 슬로우 모션 영상과 변형된 소음으로 강렬하게 표현된다. 그 시위대 안에서 비로소 격렬하게 움직이는 주인공 여성을 보면서, 그녀의 분노 혹은 결단으로 짐작되는 감정도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한 시위가 ‘8M’이라는 칠레 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에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시위에서 ‘8M는 칠레 시위를 지원하는 예술 문화 단체라고 한다.
영화 <8mm>를 보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단체의 존재를 알 수는 없지만, 강렬하게 보여주는 시위대의 모습에서 여성들의 시위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강렬한 감정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여성의 감정까지 뒤섞이면서, 그저 개인의 감정과 문제가 집단적 감정과 사회적 문제로 증폭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의 열정과 분노, 벅참 등이 이 영화에서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여성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심이 된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용감해진 것처럼 보인다.
서사, 말이나 글을 통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매우 짧은 영화지만, 시청각적 요소가 제공하는 감성적 자극에 압도되다 보면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슈에 대한 이성적 궁금증도 생긴다. 짧지만 여러모로 여운이 긴 강렬한 영화 <8mm>이다.
이미지 제공: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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