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아일랜드계 영국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단연 대단한 작가로 특히 묘비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회자하는, 쇼의 유언으로도 알려진 묘비명은 그 문장의 설봉(舌鋒)과 함께 문장 자체의 진위를 포함한 주변의 일화로 유명하다. 떠도는 묘비명 혹은 유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원문과 비교하면 인터넷에 떠도는 묘비명이 어쩐지 오역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떠도는 한글 묘비명에서 쇼를 연상시키는 신랄함과 발랄함이 느껴져 정말 그가 한 말 같다.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버나드 쇼의 문장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옯겼다.
“이만큼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
이렇게 옮긴, 말하자면 오역을 바로잡은 문장은 반듯하고 꾸밈없는 진술이지만 쇼 특유의 까칠함이 사라진 게 아쉽다.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의 어려움은 “이런 일”로 옮긴 “something like this”이다. 죽음으로 해석하며 “살 만큼 살았으니 죽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은가” 하는 달관을 보여준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가능하고 나름의 달관이긴 하나, 쇼의 통찰치곤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할까.
‘이것(this)’이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기에 보기에 따라 큰스님의 법어 같다는 반론 또한 예상된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큰 스님들이 이 유언을 인용하며 법어를 했다고 전해진다. 우물쭈물하다가 예기치 못한 결말을 맞는 것보다는 두루두루 삶을 충분히 노닐다가 뭔가 훌륭한 것(something)을 성취하거나 도달하며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상상은 어떨까. 이 상상은 적잖은 위로를 준다.
문제는 쇼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장하여 살던 곳에 뿌렸으니 묘비명도 없지 않을까. 없는 무덤에 세워진 없는 묘비명이 이렇게 후대에 강한 인상을 남긴 걸 보니, 쇼의 인문적 잔영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없는 묘비명이 주는 통찰과 위로. 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100살 가까이 살았는데, 우물쭈물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던 듯하다.
쇼는 명언제조자로 유명하기에 실제 그가 남긴 뼈 때리는 말이 꽤 많다. 그가 실제로 한 말 중에서 두 개만 소개한다. 19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There are two tragedies in life. One is not to get your heart's desire. The other is to get it.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낸 인생보다 더 존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유용하다.”
A life spent making mistakes is not only more honorable, but more useful than a life spent doing nothing.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평론가로 영화·미술·문학·정치·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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