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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만신> ― 나라 만신 금화, 무속인의 내림굿에서 망자의 진혼굿으로
[서곡숙의 문화톡톡] <만신> ― 나라 만신 금화, 무속인의 내림굿에서 망자의 진혼굿으로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4.10.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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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신>: 무속인의 힘겨운 삶과 나라 만신의 위엄

 

<만신>(박찬경, 2014)은 무당 김금화의 인생을 그려낸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이 영화는 2014년 2회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 2015년 2회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4살의 금화 ‘넘세’(김새론)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결혼하지만 시댁의 구박으로 친정으로 도망치고, 17살의 금화(류현경)는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고 스파이 누명을 받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중년의 금화(문소리)는 만신으로 이름을 날리지만 새마을 운동의 미신 타파로 탄압받는다. 이 영화는 무속인으로서 힘겨운 삶을 살지만 나라 만신의 위엄을 보여주는 김금화의 인생을 그려낸다.

 

 

2. 슬로우모션: 무속인의 필연적 운명과 배척받는 존재

 

<만신>은 김금화가 겪은 생과 사의 갈림길, 무속인의 필연적 운명, 배척받는 존재를 그려낸다. 넘세는 딸로 태어나 죽게 엎드려 놓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품에 안아줘 살아났으며, 다음에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로 외할머니가 지어준 이름 ‘넘세’가 되고, 13세에 비단꽃을 의미하는 ‘금화’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3살 넘세가 얻은 ‘금화’라는 이름은 무속인의 이름으로 잘 어울려 무속인 외할머니가 넘세의 무속인 운명을 알고 지어준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금화는 태어나는 날부터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그녀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아버지이고 그녀를 구한 것은 어머니이고 운명을 부여한 것은 외할머니이다.

 

소녀 금화에게 필연으로 다가온 무속인의 운명은 바닷물 속의 고무신으로 표현된다. 고무신은 소녀 금화와 중년 금화 때 등장한다. 소녀 금화는 바닷물 속 녹색 해조류 사이에서 고무신을 건져 올리고는 큰 바위 위에 누워 미소를 짓고는 시댁에서 친정으로 도망친다. 중년 금화는 강바닥에 발이 빠졌으나 빼지 못하다가 물에 비치는 소녀 금화의 얼굴을 발견하고, 뒤이어 영상은 고무신을 신고 바다를 달려가는 소녀 금화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우연히 발견한 고무신이지만 그 고무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물에 빠진 고무신은 어쩔 수 없이 빠져든 무속의 세계 혹은 필연적인 무속인의 삶을 의미한다.

 

이러한 필연은 내림굿에서도 표현된다. 17살 금화는 극심한 무병을 앓다가 내림굿을 받게 되는데, 자신에게 온 임경업 장군님, 용태부인, 칠성님, 신장님, 여장군님, 애기신님, 천문신님, 대신마누라님, 성수대신님 등 많은 신을 읊조리며, 세상 사람들 몸의 병,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큰무당이 되겠다고 말한다. 20살 금화는 6·25 전쟁에서 첩보 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는 국군과 인민군 양쪽으로부터 배척받는 존재가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어 무속인으로서의 고난을 겪게 된다.

 

<만신>의 전반부 스타일은 슬로우모션, 카메라의 움직임, 핸드헬드, 교차편집으로 신기와 정신세계, 탄압과 배척, 무속의 세계, 운명의 힘, 무속인의 삶을 표현한다. 처녀 금화가 내림굿을 받는 장면은 무속의 신과 무복을 찾아 뛰어다니는 금화를 따라 계속 움직이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무속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초현실적 세계와 운명의 힘을 표현한다. 과거 처녀 금화가 만신들 속에서 도는 장면과 현재 노년 금화가 도는 장면은 교차편집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무속인의 삶을 표현한다.

슬로우모션은 무속의 세계, 무속의 신, 탄압과 배척을 표현한다. 우선, 마당에서 소녀 금화가 동네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래의 운명을 읽어내는 장면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시간의 틈새와 확장을 나타내며 일상의 세계에서 벗어난 무속의 세계를 표현한다. 다음으로, 금화가 시집의 구박으로 친정으로 도망쳐온 후 무속의 신을 접하는 장면은 어두운 곳을 헤매는 카메라의 조용한 움직임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속의 신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부엌에서 금화가 밥을 짓다가 솥뚜껑이 저절로 열리고 하늘로 올라가자 그 솥뚜껑을 잡아 제금처럼 마주 잡고 치는 환상적인 장면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일상의 세계에서 무속의 세계로의 변화를 표현한다. 또한, 금화가 새마을운동의 배척으로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도망치는 금화 일행을 보는 시선, 도망치는 금화 일당을 쳐다보는 경찰을 보는 시선이 행위숏/반응숏으로 나오고, 경찰이 창 밖으로 던지는 검은색 무당 모자가 떨어지는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줌으로써 무속신앙에 대한 탄압과 배척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금화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해 굿을 하는 장면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붉은색 무당 모자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몽환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초현실적인 무속의 세계를 표현한다.

 

 

3. 뒷모습: 굿의 연희와 억울한 혼의 염원

 

<만신>은 김금화의 통일굿, 진오귀굿, 배연신굿, 만수대탁굿을 통해 통일의 공수, 억울한 혼 달래기, 연희자의 굿판을 그려낸다. 임진각의 통일굿에서 금화는 공수를 통해 통일을 염원한다. ‘공수’는 신의 말을 신제자의 입을 빌려서 인간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서 신이 인간에게 하는 말이다. 황석영이 기획한 통일굿에서 금화는 통일굿을 하다가 갑자기 통일각으로 달려가고 김일성의 영혼이 몸에 들어와 ‘내가 죄가 많다. 통일을 위해서 돕겠다.’는 말을 하는 듯 공수의 현장을 보여준다.

 

파주의 진오귀굿에서 금화는 6·25 전쟁 때 죽은 망자가 편히 저승길로 가도록 억울한 혼을 달랜다. 이 굿은 열수왕굿, 사자얼름, 망제대잡이, 수왕가르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열수왕굿은 저승을 관장하는 신을 모셔 망자의 혼을 보살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고, 사자얼름은 망자를 극락으로 잘 모셔가라고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것이고, 망제대잡이는 망자의 넋을 대에 실려 생전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고, 수왕가르기는 망자가 편히 갈 수 있도록 저승길을 열어주는 의식이다.

 

금화는 서해안 배연신굿에서 무당의 배연신굿과 뱃사람의 배치기가 어우러진 무속 연희를 보여주며, 만수대탁굿에서 굿판의 공연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배연신 굿에서 금화는 익살스러운 굿으로 무당이 광대나 거리패처럼 익살스러운 표정, 동작, 대사로 무당굿의 연희를 이끌어간다. 만수대탁굿에서도 금화는 노랫가락, 사설, 악기 연주 등 다양한 재주로 굿을 이끌고, 성기 모양의 막대기로 계속 들쑤시고 둘러매는 해학적 동작으로 민중의 욕망을 표현하고, 신을 모시고 연희를 이끈다는 점에서 연극배우, 오페라가수와 같은 공연자의 재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만신>의 중반부 스타일은 하이앵글과 표준앵글, 오버랩, 뒷모습을 통해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망자, 힘겨운 삶과 죽음의 위기, 현실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를 표현한다. 파주의 진오굿을 하는 장면은 하이앵글에서 표준앵글로 내려오는 카메라가 내려오면서 일상의 공간에서 망자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언덕 위의 처녀 금화(과거)가 아래의 노년 금화(현재)를 바라보는 시선, 현재/과거/현재 순서의 교차편집을 통해 과거 전쟁의 상처와 현재 망자의 혼을 연결한다. 처녀 금화가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는 장면은 바다와 금화의 오버랩을 통해 힘겨운 삶의 역경과 제금을 허리에 차서 자신의 시체라도 찾기를 바라는 소망을 보여준다.

 

금화의 뒷모습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 무속인의 삶을 표현한다. 국군과 인민군이 동시에 총을 겨눌 때 처녀 금화의 뒷모습, 바다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서 배 난간에 서 있는 처녀 금화의 뒷모습, 죽은 남자를 찾아 거리에 서 있는 중년 금화의 뒷모습 등 자신 혹은 타인의 삶과 죽음의 위기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무속인의 삶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무속인을 업신여기면서 필요로 하는 현실로 인한 외로움을 표현한다.

 

 

4. 클로즈업: 탄압/옹호의 역풍과 축원의 굿

 

<만신>은 새마을운동의 탄압, 기독교의 배척, 국풍81에서의 귀환, 미디어와의 공생을 통해 김금화의 축원의 굿을 보여준다. 금화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의 탄압으로 경찰 등에게 쫓기고, 기독교 세력의 배척으로 수세에 몰린다. 경찰에 쫓기는 금화가 자기 일행과 함께 신명나게 굿판을 벌이는 모습은 탄압의 현실과 신명의 굿을 대비시킨다.

 

금화는 국풍81으로 무속문화에 대한 저항이 완화되고, 반정부적인 운동권 학생들의 문화운동으로 전통문화가 선호되면서 다시 활동을 게재한다. 금화는 강신무당 중에서 가장 많이 미디어에 출연하고 공연을 많이 하여 강신무당의 길을 개척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무속의 순수성을 흐린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미디어가 금화를 이용한 것인지 금화가 미디어를 이용한 것인지 어느 것이든 간에 금화는 미디어에서 가장 유명한 무당이 된다.

 

금화는 배연신굿의 마지막에 굿과 마당극의 결합처럼 보이는 난장을 통해서 축원의 굿, 난장의 굿, 신명의 굿을 펼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녀를 꽂은 소녀 금화가 무구를 만들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알 등 쇠붙이를 모으고, 처녀 금화, 중년 금화, 노년 금화 등 인물들과 영화 스탭들이 금화의 뒤를 따라다닌다. 이러한 행렬은 전쟁과 폭력을 상징하는 쇠붙이로 무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고통받고 죽은 귀신,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달래주는 무속의 의미를 나타낸다.

 

<만신>의 후반부 스타일은 모자이크, 공중촬영, 클로즈업을 통해 무속인의 삶, 대과거/과거/현재의 조우, 고통과 위로를 표현한다. 금화의 인생이 펼쳐지는 장면은 소녀 금화, 처녀 금화, 중년 금화, 노년 금화의 모습이 한 화면에 퍼즐처럼 빼곡하게 있는 모자이크 기법으로 보여주다가 점점 사라지면서 바다 영상으로 전환됨으로써 무속인의 삶을 형상화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 금화가 쇠붙이를 모으는 장면은 공중촬영을 통해서 앞장서는 소녀 금화, 뒤를 따르는 처녀·중년·노년의 금화와 다른 인물들, 영화 스탭들을 한눈에 조망함으로써 금화의 일생, 무속에 대한 저항과 옹호, 무속의 기원을 표현한다.

 

금화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광주항쟁 등에서 죽은 망자의 혼을 달래는 굿을 하는 장면은 클로즈업을 통해 작두를 타는 모습, 작두의 칼날에 혀를 갖다 대는 모습,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강조하면서 고통받고 죽은 귀신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무속의 삶, 업신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힘든 일을 들어주는 무속의 존재감, 인물의 외롭고 서러운 감정을 표현한다.

 

 

5. 혼합: 다큐멘터리영화/극영화/애니메이션의 경계 허물기

<만신>은 전반부의 애니메이션 영상, 중반부의 실험 영상, 후반부의 극영화 영상을 통해 다큐멘터리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다. 전반부에서 소녀 금화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햇빛과 그림자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뒤이어 흰 달과 붉은 해의 그림에서 시작해서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무당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하면서 다큐멘터리영화, 극영화, 애니메이션영화를 결합시킨다.

중반부에서 중년 금화가 자살한 남자의 행적을 찾는 장면에서 꿈과 현실 혹은 꿈같은 환상이 펼쳐진다. 처음에 금화가 어떤 남자를 따라가는 행적을 그린 몽환적인 꿈은 나중에 철로에서 자살한 남자를 찾는 행적을 그린 현실이 된다. 이 영화는 남자와 그를 둘러싼 세 남자의 시선, 세피아톤의 색감, 어른거리는 그림자, 물방울, 강바닥에 빠진 발 등 그 과정을 마치 실험영화처럼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다.

후반부에서 마지막 장면, 즉 금화가 쇠붙이를 모으는 장면은 다소 작위적 설정으로 이루어진다. 비녀를 꽂은 금화가 쇠붙이를 모두 거두어 무구를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전쟁과 폭력이 무속과 기원으로 바뀌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때 처녀 금화, 중년 금화, 노년 금화를 비롯하여 출연한 모든 인물들이 소녀 금화를 뒤따른다. 카메라가 공중촬영을 통해 인물들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카메라와 스탭들까지 보여주면서 그 행렬들을 멀리서 조망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배우 류현경과 문소리는 처녀 금화와 중년 금화의 역할을 맡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배우의 모습으로 나타나 소녀 금화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극영화가 견지하는 현실이라는 환상을 무너뜨리는 소격효과가 나타난다. 소녀, 처녀, 중년, 노년의 금화가 한 자리에 모두 모임으로써 금화가 무속인으로 살아왔던 힘겨운 지난 날들을 한꺼번에 조망하고 성찰하게 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만신>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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