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우리가 형식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민의를 좀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선거법은 끊임없이 개정돼 왔다. 선거연령이 18세로 낮아졌고, 정당들이 표를 얻은 만큼 의석을 확보하도록 개정된 연동형비례제가 처음 실시되는 선거이기도 했다. 연동형비례제를 가장 열심히 주장한 당은 정의당이었지만, 이런 선거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람은 대선 때의 문재인 후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은 그 바뀐 선거제도의 첫 실험장에서부터, 스스로 제도를 무력화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당득표율로 정해진 총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빼고 나머지의 절반을 비례대표로 가져가게 설계된 이번 선거제도는 지역구 당선자가 많을 거대정당에게 불리하고, 소수 정당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국회가 이런 법 개정에 합의했다는 것은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반영하는,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가겠다는 선택을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법을 통과시킨 직후, 두 개의 거대 정당은 차를 후진시켜 이 선택을 뭉개버렸다.
양아치들에게 유린당한 선거판
선거의 핵심 주체인 정당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연기하기 위해 선거판을 열었고, 거기에 초대된 국민들은 무력하게 그들의 원하는 역할을 해줘야 했다. 여야 거대 정당 모두가 ‘나쁜 놈’이 된 마당에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원칙과 정의를 따질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협잡에 나서지 않은 정당을 찍는 것으로, 우린 이 행위를 심판할 수 있다. 그런데 정의당을 찍기가 망설여진다. 바로 여기서 21대 총선의 고충은 시작됐다.
명실공히 대표적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적어도 지난 1년 동안 연동형비례대표제 얘기에만 몰두했다. 제도만 바뀌면 정의당이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 마냥. 그러느라 그들은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의제가 무엇이고, 정작 싸워서 얻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는 망각한 듯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국회에 진출했을 때에도 처음 도입된 비례대표제가 지렛대가 됐다. 달라진 제도의 마술이 최초의 진보정당 국회진입을 가능케 했던 역사를 이번엔 원내교섭단체 구성으로 도약시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당 사이에는 명료한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당시 내세운 <무상의료, 무상교육> 슬로건은 지금까지도 금방 떠오를 만큼 강렬하게 당의 색깔을 드러냈고, 노동자 서민정당이란 계급성은 하늘의 별처럼 선명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표가 13%였다. 금속노조의 대표주자로 선발된 심상정은 당시 비례 1번으로, 노회찬은 10번으로 당선됐다. 아름답고 절묘한 사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원외의 진보진영이 손잡고 있는 단 하나의 원내 교두보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거대한 소수’는 그렇게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정의당은 아무리 선거제도가 바뀌어서 그들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될 수 있다 해도, 왜 그들을 찍어야 하는지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진보이며, 어떤 계층의 절박함을 대변하고,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지 가끔씩 심상정의 화려한 언변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민주당 왼쪽에서 그들을 견인”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결연하게 보여줘야 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을 견인하는 대신 따라가는 태도를 취했다. 정의당은 틈틈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말은 민주당 2중대라는 세간의 어휘로 해석됐다. 대한민국을 홍해처럼 절반으로 가르던 조국 사태는 정의당의 색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낼 결정적 순간이었다. 정의당은 모호한 어휘로 안전장치를 두르면서도 결과적으론 조국 편에 서면서, 더 이상 주워 담을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수준으로 민주당의 2중대임을 만인에게 확인시켰다.
비례 대표 경선의 패착
비례 1, 2번을 모두 청년에게 할당한 것에서 보여지듯, 청년층은 정의당의 핵심 타깃이었다. 치열한 입시전쟁에 치여온 그들에게 가장 민감한 가치가 ‘경쟁에서의 공정’임을 모르지 않을 정의당의 결정적 실수는 숱한 위조로 자녀들의 불법적인 대학진학을 지휘한 조국 부부를 감쌌다는 사실이다. 집권 정당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들의 거수기 노릇을 해주기 위해 <정의>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사람들은 목격했고, 그들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정확한 메시지를 심었다.
총선 직후 “정의당이 망한 이유”라는 글이 SNS상에 돌아다녔다.
"잘못이 무엇인지 주위에서 말해줘서 잘 알고 있으면서…리더가 아집을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비례는 정의당을 찍으려던 사람들을 돌아서게 만든 또 하나의 원인은, 당의 핵심가치인 <정의>를 결여한 사람이 그 당의 1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경선은 제법 떠들썩하게 세상에 회자됐다. 그것은 선거를 이벤트화 해 후보들을 언론에 노출시키기 위한 정의당의 계획이기도 했고, 세상이 그만큼 정의당의 비례후보가 가지는 의미에 관심을 부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TED식 정책검증대회라는 절차도 도입해 각 후보의 소견을 듣고, 이를 점수화해 순위를 매기는 등 다채로운 보도 포인트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경선은 소위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흥행에 성공했던 만큼, 그 결과에 쏟아지는 엄중한 판단 또한 무겁게 감당해야 했다.
37명의 비례경선 후보중 1등, 2등으로 당선된 사람이 27세 류호정, 33세 장혜영 두 젊은 여성이었다. 경선으로 당선됐으니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그들은 그 자리에 공정하게 오른 사람들일 테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표는 각각 1.76%, 1.62%였다. 9.25%를 얻은 배진교, 7.30%을 얻은 박창진, 7.21%을 얻은 양경규를 딛고 그들이 1, 2위에 올라설 수 있는 이유는 ‘젊음’과 ‘여성’이라는, 당이 선택한 디딤돌 위에 그들이 올라서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내에서 합의한 게임의 룰일 수 있으나, 그 자체가 가지는 대중적 설득력은 크지 않았다. 1, 2차에 걸친 정책검증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에서 가장 뛰어난 정책통이자 가장 탁월한 대중전달력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은 강상구는 최종 비례후보에서 탈락했고, 당 대변인, 서울시장 후보 등을 지냈던 또 다른 차세대 대표주자 김종철은 20위를 차지했다. 정의당을 지켜봐온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경선결과는 경선의 룰에 있었다.
왜, <젊음>과 <여성>이 인생 전체를 갈아넣으며 당을 지탱시켜온 열정과 검증된 실력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가? 이에 대해 정의당은 설명하지 않았다. 계급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거듭나고자 갈망하는 정당은 가장 대중적이어야 하는 그들이 설정한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낯선 두 사람의 신진주자를 대중에게 제시했다. 그리고는 정작, 비례후보들끼리 갖는 총선토론회에는 다시 한 번 당의 대표 정책통이자, 비례에서 완전히 버려진 ‘아재’들인 강상구, 김종철을 내보냈다. 이것은 명백히 “정의롭지 못한” 방식이었다. 대중적 화제성을 얻기 위해, ‘칙칙한 아저씨들’의 정당이 아니라 ‘발랄한 언니들’의 정당으로 채색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태도였다.
하나의 식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케팅 이전에 식당의 기본 덕목인 맛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당이 국민들의 표심을 설득하기 위해선 그들이 누구의 이해를 어떤 방식으로 대변할지를 절절하게 설득하고 입증해야 한다. 화려한 마케팅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난 4년은, 후자에 몰두한 나머지 전자의 기본을 망각한 시간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1번 심상정과 2020년 정의당 비례1번 류호정 사이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간극이 있다. 심상정은 여성인 동시에 금속노조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노조지도자였다. 류호정은 게이머, BJ로 활동하던 게임업계 해고노동자로 노조활동을 경험한 젊은 여성이다. 결정적으로 남자친구를 통한 ‘대리게임’을 통해 자신의 등급을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공정과 정의를 자산으로 삼아야 할 정의당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류호정의 대리게임 경력과 신장식의 4번에 걸친 무면허 운전경력이 도마 위에 오르자 당은 신장식을 자진사퇴시켰고, 류호정은 끌어안고 가는 결정을 했다. 그 때부터는 정의당의 문제는 한층 더 명료해 졌다. 문제는 류호정이 아니라 심상정이었다.
4선의원의 무게 뛰어넘어야 한다.
대리논란의 류호정을 끌어안기로 한 결정은 당대표 혼자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세 기간 내내 국민들을 무수히 만났을 정의당 지도부의 귀에도 그런 민심은 포착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비례 1번을 끌어안았다. 논의·표결·합의라는 형식을 거치지만, 노회찬 사후, 원톱이 된 심상정의 의중은 눈빛 하나로 모든 당정을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그 권력자가 합리적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만으로 당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는 당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대중의 요구와 당이 지표로 삼는 신념을 넘어서는 하나의 막강한 힘이 움직이는 당이라면,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프지만,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하게 된 시점으로 거슬러 가보자. 대선이 있었고, 민주노동당의 대선주자 권영길은 3%를 얻었다. 그것은 13%의 총선 지지율로 시작한 민주노동당이 4년만에 받아들이기엔 참혹한 패배였다.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권영길이라는 대선주자 자체가 주는 모순이었다.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투톱. 진보정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두 명의 눈부신 스타는 노회찬과 심상정이었다.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대선 주자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권영길은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킨 진보의 큰 어른이었으나, 원내 진출 이후 의원으로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당내 경선결과는 대중을 당혹시켰고, 결국 외면 당했다. 그것이 선거로 모아져야 할 당내 모든 에너지를 분산시켰고, 결국 계파 갈등이 빚은 뿌리깊은 분열이 빚은 파국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분당이었다. 당시 실패의 원인이 계파 갈등에 있었다면, 오늘 정의당이 빚은 패착은 손댈 수 없을 만큼 막강해진 당대표의 절대 권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공식적인 그들의 2중대와 함께 180석을 얻었고, 박근혜의 퇴각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할 적폐정당 미통당은 103석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은 비공식적 2중대의 도움 따위는 전혀 필요없어졌다. 20대 국회에서와 마찬가지인 6석을 지켰고, 당 전체로 보면 9.7%를 얻으며 지난 선거보다 2% 더 나아갔던 정의당의 결과를 참패로 받아들이는 것은 줄어든 미통당의 의석이, 공중분해된 국민의당의 자리가 정의당에게로 흡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통/미한당이 얻은 103석을 두고 많은 이들은 <폭망>이라고 말한다. 122석에서 19석을 잃어 103석으로 줄어든 것이 패배이기는 하나, 산술적으로도 ‘폭망’까지는 아니다. 죽은 박정희와 폐위된 박근혜의 유훈으로 지탱되는 구닥다리 정당.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총리 황교안을 원톱으로 삼으며, 참신한 인재영입도, 솔깃한 세대교체도, 단단한 정책제안도 없이 매일 같이 망언 퍼레이드를 일삼은 그들이 100석이 넘는 표를 아직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적어도 한 가지 기본은 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을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 그들이 한 유일한 일이었고, 그걸 해온 유일한 정당이 바로 그들이었다. 60대 이상이 표를 준 것만큼 20대도 그들에게 표를 줬다. 비례선거에서는 오히려 더불어시민당을 이겼다. 정의당은 끝끝내 ‘여당의 견제세력으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포부를 보여주지 않았고,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유리한 조건 속에서도 그들이 놓친 표를 흡수할 수 없었다. 정의당은 ‘미통당이 역사에서 사라져야 할 적폐정당’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려 애썼지만,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집권세력이 지난 3년간 지어온 새로운 문제들을 지목하는 역할을 유기해 왔다.
선거가 끝나고 불과 1주일, 조국이 감찰 무마했던 전 부산 부시장 유재수는 뇌물로 5년 구형을 받았고, 오거돈 부산 시장은 성추행으로 사임했다. 같은 날 라임사태의 주범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체포됐다. 수조원 대 금융사기의 비호세력이 청와대 쪽으로 지목되고 전 청와대 행정관이 구속된 가운데, 진실의 뚜껑이 열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성추행, 뇌물, 감찰 무마, 금융범죄 비호 등 수구세력들의 단골 죄목들을 집권세력들이 줄줄이 달고 언론에 등장한 것은, 오늘날 수구의 대표 진영이 민주당으로 넘어갔음을 증명해 준다. 그들의 죄목은 선거 직후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업을 지어왔고, 선거 직후 봇물처럼 터져나왔으며,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더 많이 터져나올 것이다. 매섭게 견제하는 세력이 없다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태세 전환, 기본에 충실한 진보정당으로
‘진보정당’이기 보다 ‘대중정당’으로 올라서고 싶었던 정의당의 플랜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복잡한 계산 속에서 스탭이 꼬이며 좌절됐다. 이번에 원내에 새롭게 진출한 5명의 비례의원들 중 그나마 정치 경험을 가진 의원은 2명 뿐이다. 숫자는 6명으로 같으나 체력은 20대 보다 더 약해졌고, 간판으로 내세운 신인들의 역량은 완벽한 미지수다. 정의당의 살길. 2년 후 대선, 4년 후 또 다른 총선에서는 진보성향을 가진 유권자가 아무 망설임 없이 찍어주고 싶은 정당이 되는 길은, 그들이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 현 집권세력이라는 그 명백한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노동자들의 도시 울산에서의 패배는, ‘노동자’라는 정의당의 본류가 얼마나 허술한 현실 기망이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 주는 성적표였다. 사실상 노동자들은 지난 4년 동안 그들의 목소리를 접수해줄 원내 정당을 갖지 못한 고아처럼 거리에서 지난한 전투를 벌여왔다. 그리고 심상정을 정조준하는 목소리가 이제 당내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와야 할 것이다.
권력에의 복종은 단 한 번도 진보의 미덕이 아니었다. 당내 유일하게 4선의원이 된 당대표는 정의당의 가장 큰 자산이자, 야성을 지닌 진보로 거듭나야 할 정의당이 기필코 넘어서야 할 무게다.
글·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 겸 번역가. 주요 저서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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