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100nm(나노미터) 이상, 5㎜ 미만인 플라스틱’으로 정의된다. ‘크기 5㎜ 미만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미세플라스틱 정의에 관한 합의는 2008년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미국 워싱턴 주에서 주최한 제1차 국제 미세플라스틱 워크숍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나노플라스틱(초미세플라스틱)이 1nm(나노미터) 이상, 100nm 미만으로 정의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세플라스틱 하한이 100nm가 됐다. 100nm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 정도이다.
평균적으로 어른 한 명의 미세플라스틱 섭취량이 일주일에 신용카드 1장 무게인 5g가량으로 추산된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90%가 마시는 물에서 온다.
해양의 미세플라스틱은 인간에 의해 해양으로 유입된 1차 미세플라스틱과 이것이 해양에서 광분해, 생물학적 분해 등의 화학적 절단과 물리적 절단으로 생성된 2차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며 전 세계의 바다에서 관찰된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눈에 실제로 보이지 않지만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에 의해 최종포식자인 인간에게 전달된다. 플라스틱의 주성분인 폴리머,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첨가제, 미세플라스틱이 환경에 노출된 이후 흡착된 화학적 오염물에 의한 영향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다.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거나 호흡하면서 장기간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되면 조직학적, 생화학적, 기능적 이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환경보건공학 바이오디자인 센터 롤프 홀든 박사 연구팀은 인간 시신을 연구한 결과 폐, 간, 비장, 신장 등 47개 기관과 조직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호흡과 섭취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몸에 들어와 혈류에 따라 폐, 신장, 간에 머물게 되며 머물러 있는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속 화학물질들을 통해 당뇨병, 비만, 성 기능 장애, 불임, 암, 에너지 할당 감소 등의 악영향을 끼친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너무 작아 사실상 수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은 발생과 해양 유입량을 줄이는 것 말고는 없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생활ESG행동 사무실에서 ‘플라스틱 없는 물’을 주제로 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금천한우물 아이쿱생협 정란 이사장은 소비자기후행동 캠페인위원회의 노플라스틱 팀이 주도해 지난 4월 20일 출시한 ‘기픈물’을 소개했다.
아이쿱생협이 생수까지 팔아야 하느냐 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픈물’이 시판에 들어갈 수 있었던 명분은 ‘기픈물’이 물은 물론 용기까지 포함하여 전과정에서 ‘플라스틱 0%’를 구현한 유일한 생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정 이사장이 가져온 종이팩 생수는 페트병에 담긴 일반적인 생수와 당장 겉모양이 달랐다. 종이팩에 담긴 ‘기픈물’은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미네랄이 골고루 섞인 ‘JUST 기픈물’, 혈관 관련 기능성 제품인 ‘마그네슘 강화 기픈물’과 ‘칼슘 저감 기픈물’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없는 물
아이쿱에서 생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소금이다. 2019년 80~90%의 천일염에 미세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아이쿱생협의 식품브랜드인 자연드림에서 판매하는 소금에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이후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 수심 600m 이하의 해양심층수에서 소금물을 얻는 고성의 한 업체와 제휴를 맺어 ‘깊은바다소금’을 출시했다. 정 이사장은 “해저 600m 이하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섞여 있지 않으며 주기적으로 해양심층수에 대한 방사능 및 미세플라스틱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는 물로 생수를 만든 것이 ‘기픈물’이다. '기픈물'의 생산공정 또한 모두 스테인리스 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설비 내부에 사람의 출입을 차단해 생산라인의 ‘미세플라스틱 0%’를 지켜내도록 했다. 원재료가 ‘미세플라스틱 0%’라고 하여도 생산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추가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기픈물’은 일반 생수보다 비싸지 않다. 330ml 기준으로 ‘JUST 기픈물’의 조합원가는 300원, ‘마그네슘 강화 기픈물’과 ‘칼슘 저감 기픈물’은 460원이다. 종이팩 용기 비용이 페트병보다 6배 정도 비싸지만,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체 가격을 낮췄다.
페트병 NO, 종이팩 YES
‘기픈물’은 페트병이 아니라 종이팩에 담겨 있다. 종이팩은 살균팩과 멸균팩 두 가지로 나뉜다. 살균팩은 우유처럼 냉장보관이 필요한 상품을 담는 데 사용된다. 멸균팩(테트라팩)은 안에 알루미늄 코팅이 붙어 있어 냉장보관하지 않아도 내용물이 상하지 않고 1년 가량 보관이 가능하다. 멸균팩을 쓰면 상온보관이 가능해 탄소발생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기픈물’의 종이팩은 멸균팩이다.
종이로만 된 살균팩에 비해 종이와 알루미늄으로 된 멸균팩의 재활용 효율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이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팩을 뜯어낸 후 재활용 과정에서 물에 오래 불리면 종이는 아래에 가라앉고 가벼운 알루미늄은 분리되어 위로 떠오른다. 각각 걷어내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멸균팩의 재활용 효율 자체가 낮다기보다는 한국의 재활용정책이 살균팩에 맞춰진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정 이사장은 지적했다. 살균팩과 멸균팩은 소재가 달라 함께 재활용할 수 없는 데다 현재 국내에서 멸균팩만 재활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
아이쿱은 수소문 끝에 강릉의 멸균팩 재활용 업체와 협약을 맺어 ‘기픈물’ 종이팩 재활용 활로를 열었다. 아이쿱의 전국 매장에는 살균팩과 멸균팩 수거함이 따로 설치돼 있다. 살균팩 재활용공정을 통해 분리된 종이는 롤휴지, 멸균팩 재활용공정을 통해 분리된 종이는 갈색 페이퍼타월로 재탄생한다.
정 이사장은 “미세플라스틱 해법은 원천적으로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어서, 생수 등 페트병을 종이용기로 바꿔나가야 한다”며 “그러려면 멸균팩의 자원순환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세플라스틱 저감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만 용기 생산 등 사전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는 “생산단계부터 폐기단계까지 용기별 탄소 배출량은 종이팩이 페트병보다 3분의1~4분의1가량 낮다”고 대답했다. 한국인이 1년에 평균 500ml 물 96병을 소비하는데 아이쿱 소비자기후행동 조사연구팀에 따르면 이 페트병을 종이팩으로 바꾸면 연간 27만 톤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페트병을 사용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고 세상은 회수하지 못할 (초)미세플라스틱에 지배당할 것이기에 지금부터라도 종이팩으로 용기를 대체해야 한다고 정 이사장은 역설했다.
‘NO플라스틱’
‘기픈물’의 뚜껑은 플라스틱이다. 그러나 석유화학제품이 아니라 사탕수수 재질이다. 명실상부한 ‘플라스틱 0%’를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사탕수수는 자라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다 생산과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훨씬 적다. ‘기픈물’의 병뚜껑 플라스틱은 수거돼 화분, 목욕탕 바가지 등으로 재활용된다.
‘NO플라스틱 캠페인’이란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운동이다. 스타벅스는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빨대로, 자연드림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컵을 종이컵으로 바꾸었고 아이쿱에 수산물을 공급하는 남도수산은 포장에 사용되던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 한 해에 6.5톤 정도의 플라스틱을 감축했다.
동석한 세이프넷지원센터 가치확산팀 김소담 매니저는 “어차피 먹어야 할 물이라면, 어차피 소비해야 할 일회용품이라면 약 18%밖에 재활용되지 못하는 플라스틱 말고 한 번 더 쓸 수 있는 종이팩 생수를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기픈물’ 출시는 종이팩 생수로 페트병 생수의 아성에 도전한다는 의의 외에 다른 기업과 산업이 NO플라스틱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며 정 이사장은 수미김의 사례를 전했다.
“2019년부터 수미김에서는 도시락김을 담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모두 빼고 상품을 포장해 한 해에 23.5톤 가량의 플라스틱을 줄였어요. 수미김이 자원순환 선도기업 환경부장관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자 다른 김제조업체에서도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앴습니다.”
정 이사장은 이처럼 다른 생수 기업들이 종이팩 생수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정부 국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 페트병 대신 종이팩 생수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NO플라스틱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픈물’이 어떤 날갯짓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일단 국내 생수시장에서 변화는 시작됐다.
글 안치용(ESG연구소장 겸 '생활ESG행동' 시민행동본부장)
김도연(바람저널리스트), 임수진(청년ESG플랫폼 소속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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