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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바쿠라우>의 전투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바쿠라우>의 전투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13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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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바쿠라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0년대의 제삼세계 영화

1960년대 세계영화사의 한 장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제삼세계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식민지였던 제삼세계는 2차 대전 이후 독립하게 되었지만, 많은 나라가 세계대전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의 확고한 패권국가로 부상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 진영의 패권국가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 1959년의 쿠바혁명으로 쿠바가 공산주의국가가 되면서 쿠바 영화산업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혁명뿐만 아니라 새로운 쿠바 영화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게티노는 「제삼영화를 위하여」(1969)라는 선언문에서 “제일 영화는 할리우드와 할리우드의 모델을 답습하는 상업영화, 제이 영화는 개인의 예술적 성취에 방점을 두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작가영화”라고 규정한 다음, “제삼영화는 제일 영화와 제이 영화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한 대안영화로써, 영화를 혁명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제삼영화는 인물의 영화를 주제의 영화로, 개인의 영화를 민중의 영화로, 작가의 영화를 일하는 집단의 영화로, 신식민주주의의 잘못된 정보의 영화를 (올바른) 정보의 영화로, 도피의 영화를 진실을 재포착하는 영화로, 수동성의 영화를 공격성의 영화로 반격한다.”

이러한 영화 운동을 지지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영화인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반제국주의’와 ‘반미주의’를 표방하고 ‘신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를 제작했다(제삼세계의 영화는 19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울영화집단’ 등을 결성하고, 전개했던 영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한국사회의 모순과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무기로서 영화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때, 라틴아메리카의 영화 운동을 많이 참고했다).

 

‘시네마 노보’의 부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다양한 제삼영화 가운데 브라질에서는 글라우버 로샤를 중심으로 도스 산토스, 루이 구에라가 주축이 된 ‘시네마 노보(Cinema Novo)’라 불린 영화가 등장했다. 1955년에 시작된 시네마 노보는 1971년에 막을 내렸지만,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와 줄리아누 도르넬리스가 공동 연출한 영화 <바쿠라우>(201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를 보면, 영화사의 한 장으로 남겨진 ‘시네마 노보’가 부활한 것 같다.

 

각종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 바쿠라우의 장례식
각종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 바쿠라우의 장례식

<바쿠라우>는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이미지로 시작해 브라질 북동부의 오지를 달리는 식수 운반 트럭으로 이동한다. 트럭이 도로에 널브러진 관과 오토바이와 시체를 지나갈 때,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가 연출한 기묘한 컬트영화 <엘 토포>(1970)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트럭은 폐허가 된 사립학교 건물을 지나 오지의 마을 ‘바쿠라우’(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을 치른다. 카르멜리타의 관에서 물이 흘러나올 때, 영화가 공포영화 장르로 진입하는가 싶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바쿠라우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런 다음 비행접시 같은 게 마을에 나타나는 장면을 보면, SF영화인가 싶기도 하다(특히 이 장면은 조악한 특수효과로 연출된 1950년대 할리우드의 SF영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상영시간 3분의 1지점까지 종잡을 수 없이 전개되던 영화는 바쿠라우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마을 근처의 농장 사람들이 모두 살해되고, 트럭의 식수 탱크에 총알구멍이 나고, 오토바이를 탄 바이커 복장의 수상한 남녀가 마을에 나타나는 등, 일련의 불길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스릴러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바쿠라우를 공격하는 미국인 용병 대장 마이클
바쿠라우를 공격하는 미국인 용병 대장 마이클

결국 비행접시는 드론으로 밝혀지고, 마이클(우도 키에르)이 이끄는 백인우월주의자들로 구성된 미국인 용병들이 불길한 사건의 주범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고립된 바쿠라우를 공격해 주민들을 몰살하려고 할 때, 영화는 서부영화 장르의 설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서부영화에서 백인공동체를 인디언이나 무법자들이 공격하는 설정과는 반대로 다양한 인종들의 공동체를 백인 용병들이 위협한다. 서부영화에서는 백인 영웅이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바쿠라우>에서는 순박하게 보였던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용병들을 모두 처치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장르영화를 가져왔고, 영화의 무대가 된 마을을 발견하면서(58명의 마을 주민들이 직접 출연까지 했다) 장르를 ‘서부영화’로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글라우버 로샤가 서부영화 장르를 차용해서 연출한 <죽은 자 안토니오>(1969)의 영향도 엿보인다. 또 <바쿠라우>가 한두 명의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마을의 많은 인물이 각자 주인공 역할을 수행할 때, 앞에서 언급한 “개인의 영화를 민중의 영화로”를 실천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시네마 노보’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감독의 시도를 통해, <바쿠라우>의 인물 설정과 내러티브 구성은 브라질의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시장선거를 앞두고 유세하러 마을을 찾아온 토니는 브라질의 대다수 부패한 정치가의 모습이다. 토니는 학교에 증정한다면서 트럭에 싣고 온 책을 바닥에 쓰레기처럼 뿌린다. 그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료품과 건강에 몹시 해로운 기분 억제제를 보급품으로 가져와서 온갖 생색을 낸다. 그러나 댐으로 물길이 막혀있어 바쿠라우 주민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물 문제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쿠라우 주민들이 맹렬하게 비난을 퍼붓자 토니는 앙심을 품고 미국에서 용병을 모집해 마을 사람 모두를 몰살하려고 한다.

 

바쿠라우를 지키는 선봉으로 활약하는 동성애자 룽가
바쿠라우를 지키는 선봉으로 활약하는 동성애자 룽가

현재 브라질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과격한 막말로 남미의 트럼프 또는 두테르테로 불리는 정치가이다. 보우소나루는 노골적으로 인종/성차별(“여성과 흑인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은 것이 슬프다”는 등의 발언)을 드러내고, 동성애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파괴하는 친미 성향의 극단적인 극우파이다. 바쿠라우는 보우소나루가 혐오하며 말살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다양한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곳은 흑인 여성 카르멜리타가 족장인 모계사회이며, 용병들을 물리치는 투쟁의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룽가는 동성애자이다. 또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사는 여성이며, 교사는 흑인이다.

‘나치’라는 말을 듣는 용병대장 마이클은 독일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미국이 브라질(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드러나지 않게 수많은 정치공작과 음모를 꾸며왔던 것처럼, 마이클은 바쿠라우 주민 모두를 제거하러 왔지만, “엄밀히 말해 우린 여기 없는 거야. 우리가 여기 없다는 걸 증명할 서류가 있어.”라고 말한다. 마이클의 모집에 응한 미국인들은 놀이처럼 인간 사냥을 즐기기 위해 용병을 자원했다.

바쿠라우 주민들은 예전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일치단결해 정치가 토니와 미국인 용병의 침략을 막아낸다. 그들은 마이클을 산 채로 마을 한복판에 있는 지하 감옥에 가둔다. 마이클은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되겠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볼 때마다 살아있는 마이클을 떠올리며 토니/보우소나루 같은 브라질의 정치가와 미국인 용병이 결탁해 언제든 또다시 공격해 오리라고 긴장하게 될 것이다.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처럼, 벽에 묻은 용병의 피를 “지우지 말고 그대로 두자”고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침략당한 기억과 승리의 기억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또다시 바쿠라우가 위기에 처할 때, 그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승리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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