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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식민주의적 시선에 갇힌 근대 초기 한국
[이병국의 문화톡톡] 식민주의적 시선에 갇힌 근대 초기 한국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12.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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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거틀로서의 서구

2000년대 이후 한국은 K-Pop 열풍과 드라마의 영향으로 정부 주도적인 한류 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수 싸이가 뉴욕과 파리 한가운데에서 말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을 뉴스와 연예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생중계하다시피 방영하는 태도와 그래미어워드 4대 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BTS를 보며 아쉬워하는 모습,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타자의식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세계적 추세’, ‘OECD 기준’이라는 말이 뉴스에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도 우리의 삶에 고착화된 인정 욕망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것을 식민지 담론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대주의적 인식의 영속으로 봐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를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서구 중심주의적인 주체 인식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호미 바바(Homi K. Bhabha)가 식민지 담론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타자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착성을 언급하는데 이 고착성은 타자가 자신을 야만적인 상태에 놓고 서구의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고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1) 이러한 시도는 실질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주체화 과정을 타자에게 전가시키고 욕망의 대상이며 조소의 대상으로, 기원과 동일성의 환상 속에 억압된 차이로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서구의 유럽 중심주의적 사고는 신적 중심에서 이성 중심의 세계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성은 인간을, 자연과 구분하여 일종의 보편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한다. 이성의 범주로 설명 불가능한 것들 혹은 상징적 언어의 체계 속으로 사유될 수 없는 것들은 배제하거나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성/인간이 중심이 되는 ‘안’과 차이로 존재하는 야만/자연의 ‘밖’은 알려지지 않은 것, 낯선 것이 된다. 그것은 이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밖’이라는 관념 자체만으로도 불안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밖’을 ‘안’으로 포섭하는 이성의 작용이 계몽이란 이름의 근대 세계를 형성하였다고 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식에 기반한 이성은 ‘밖’에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간주할 뿐,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2) 도구적 이성은 오직 자기 유지의 강압적 성격에서 유래한 배타성만을 강요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배제와 억압은 이성 중심적인 지배 권력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보편성이라는 유럽 중심적 인식을 확정하였다.

 

잭 런던이 호텔에서 바라본 제물포

주체로서의 서구/유럽과 타자로서의 동양을 표상하는 것은 유럽 중심주의적 사고에 의해서이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인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서구인의 관점에서 동양인을 타자로 놓고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동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오리엔탈리즘’의 세계 인식이 오늘날까지 굳건한 인식틀로 작용한다. 또한 세계가 서구화되어 가는 형편은 자유기업과 시장, 세속주의와 다원주의적 선거민주주의를 채택하도록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요당하는 상황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서구적 모델이 제3세계의 체제 모델로 수용되면서 상징적인 측면에서의 아버지/아들의 관계처럼 서구/동양의 구조가 재정립되고 있는 상황이 현재의 세계정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동양, 게다가 서구와 동일자의 자리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동양의 노력이 눈물겹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 부는 한류 바람은 식민주의 담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인해 비판적 인식이 생긴 지도 오래되었으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예속 관계와 문화적 인정 욕망 등이 동양, 특히 한국으로 하여금 서구를 모방하고 준거로 삼음으로써 이에 뒤처지지 않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를 모방하고자 하는 인식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근대라는 개념이 생긴 조선 말기의 상황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1882년의 조미수호조약 이후 문호를 개방한 조선은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과정을 밟게 된다. 이 무렵 한국은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서구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근대 초기 한국을 방문한 서구 외국인들에게 조선은 타자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혹은 계몽이 되지 않은 타자는 낯설고 매혹적이지만 위험스러운 존재이다. 그들은 주체로서의 자신과 타자로서의 한국을 구분함으로써 분석적인 자세로 조선을 대했다. 여기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했던 서구 여행자를 통해 한국이 어떻게 그들에게 인식되었으며 규정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식민주의적 담론으로 본 타자 - 버튼 홈스, 잭 런던

1901년에 한국을 방문한 버튼 홈스(Burton Holmes)는 한국에서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사람으로 또한 최초로 영화를 촬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행기(travelogue)를 쓰고 강연을 하였다. 그는 비교적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대상을 관찰하고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영화를 찍는, 기록자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삶은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연구 과제이다. 왜냐하면 모든 삶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다. 삶을 묘사하는 것이 예술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전기(傳記 삶의 기록)는 문학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한 사람 또는 많은 사람의 제스처, 활동 그리고 표현을 임의로 재현할 수 있게 삶을 기록하는 것, 그리고 한 사람 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재생하고 재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이것이 활동사진이라는 예술 과학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활동사진은 가장 진실한 전기(傳記)이다.4)

활동사진, 즉 영화를 삶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버튼 홈스의 인식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여행기를 관통하는 중심이기도 하다. “미래의 사람들이 실제로 100년 전에 같은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활동사진으로 보게”(123쪽) 될 순간에 대한 그의 바람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객관적 기록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사진과 영화 매체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안다. 그것은 사각형의 프레임이라는 매체 공간적 한계에 의하여 대상의 선택, 배제를 수행한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배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카메라 뒤에 있는 주체의 몫이다. 주체가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카메라에 찍혀 있는 것 역시 객관적 기록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홈스는 자신의 영화를 가지고 강연을 했다. 그는 관중들의 시각적 스펙터클에 복무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아시아를 여행한 타이밍5)은 그가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홈스가 재현하고 있는 기록은 동양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 즉 전통과 근대화가 맞물리는 지점에 시선을 둔다.

서울 도로는 대조적인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파리의 넓은 대로처럼 넓은 도로도 있고, 캔톤(canton; 읍, 면)의 뒷골목처럼 좁은 길도 있다. 주요 간선 도로의 훌륭한 상태는 코리아의 고문관으로 활동하면서 워싱턴에서 본 것을 본국에 실현하고자 한 관료의 노력 때문이다. (중략) 그는 통로를 포장하고 도로의 보수와 유지를 위한 법령을 만들고 시행하였다.(131쪽)

전차의 가공선과 전차는 중세풍의 아치를 통과하고 있고, 아치 너머로 전신과 전화선이 이어져 있다. 근대 기업이라는 거미가 이 잠자는 동양의 거대 도시에 철로 된 거미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중략) 이것들(가마-인용자)은 전기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서울, 이 기묘한 도시에 중세의 생활 풍속과 방식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대조는 정말로 극적이다.(47쪽)

홈스는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며 중세와 근대가 공존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가 긍정하고 있는 것은 근대화된 현재임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근대화를 서구의 기술과 서구인의 노력에 의해 구축된 것으로,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토대로 인식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서울의 근대화는 불가피한 일”(70쪽)이라고 말한다. 버튼 홈스의 시선은 근대화를 지향하는 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6) “미국의 충고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미신에 사로잡혀 있”(207쪽) 한국의 근대화란 결국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며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을 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미래를 형성하는 것으로 버튼 홈스는 네 가지 요소를 드는데 미국 기업과 선교사들의 활동, 일본의 상업적이며 반정치적인 침략, 러시아의 외교가 그것이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세를 분석하지만, 기업의 실용주의적 측면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결국 서구의 입장에서 근대화를 이루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버튼 홈스에게 한국은 근대화가 막 시작된 타자이며 전통과 근대가 뒤섞여 있어 낯선 호기심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공간이며 미국의 영향력이 실용적 차원에서 발휘되는 공간이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식민주의 담론을 재생산한다. 그가 생각하는 ‘떠오르는 태양’은 일본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용감하고 능력 있고 예술적인 일본의 자손들에 의해”(207쪽) 근대화를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버튼 홈스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말하면서 언급한 러시아와 일본은 각자 대양과 대륙의 교두보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1904년에 전쟁을 시작한다. 이 시기 미국의 사회주의 작가로 유명한 잭 런던(Jack London)이 취재차 방문하게 된다. 그의 기록을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으나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룰 가치가 있다.

잭 런던의 사회주의적 인식은 한국을 바라볼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의 사고는 절대적으로 오리엔탈리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데에서 비롯된다.

한국인은 섬세한 용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힘이다. 더 씩씩한 인종과 비교해보면 한국인은 매가리가 없고 여성스럽다. (중략) 정말로 한국인은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중에서도 의지와 진취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장 비능률적인 민족이다. 그 중에서도 딱 한 가지 뛰어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짐을 지는 것이다. 짐 끄는 동물처럼 완벽하게 일을 해낸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 민족이 이들을 능가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은 짐을 지고도 일하고 걷고 짐을 나르기 때문이다.7)

잭 런던이 본 한국인은 여성적이거나 동물적이다. 일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명명으로 여성과 동물은 빠지지 않는다.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서 보면 남성/여성의 이분법은 몸/정신의 이분법과 연결되어 여성을 사유하지 못하는 존재로 평가절하하며 타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남성은 초월·이성·합리성의 영역을 전유하며 확장되지만, 여성은 생물학적인 몸의 영역에 제한된다. 합리적 영혼을 지닌 남성은 초월적 의식주체이며 비합리적인 몸을 구속된 열등한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로 작용한다.8) 동물 역시 마찬가지로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야만적인 존재로 타자화된다. 여성/동물은 타자의 표상으로서 주체의 바깥에 존재하며 주체의 우월을 증명하며 교화되거나 지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잭 런던에게 한국은 여성적이고 동물적인 나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식민주의적 담론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본인이 아무리 동양의 영국인이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며 그 근거로 “그들 역시 결국은 아시아인”(46쪽)이라는 점을 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언술은 조랑말에 편자를 박을 때 짐승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모습을 비판하면서 나온다는 점이다. 덧붙여 이때 잭 런던은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와 “자살하고 싶은 욕구”을 느낀다. 상황의 정합성을 판단하기 이전에 감정적으로 대하는 주체의 편견은 타자를 절대적으로 구분지은 다음 그것이 주체를 반영하든 그렇지 않든 타자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주체의 우월 의식은 스스로를 반성하지 못하며 성급하게 타자를 판단하고 지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잭 런던에게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기 표상의 우월함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권리에 대한 문제이다. 특히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뒤에 살펴볼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과 마찬가지로 잭 런던이 한국인들과 접촉을 통해 한국 관료의 부정에 대해 언급한 것은 새겨들어야 한다.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반감보다는 중간에 돈을 착복하는 관료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가는 것에 대해 돈으로 지불을 해왔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제야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에는 일본 관료들이 마을의 수송을 맡았던 ‘일인자’, 즉 중개인을 통해서 물건을 사들였는데 바로 그가 이익을 가로챈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받은 돈의 3할은 백성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는 자기가 챙긴 것이다.

만영이가 말하는 ‘일인자’는 ‘군수’를 말한다. 그는 박순성이라고 불리는 악명높은 ‘양반’으로서, 이를테면 귀족이면서 도둑놈인 것이다. 양반들은 모두가 도둑이었다.(130~131쪽)

전쟁 통에 일본이 한국인에게 물건값을 지불하였는데 그것을 관료들이 착복한 것에 대한 불만을 듣는 장면이다. 잭 런던은 박순성에게 백성들의 돈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라고 말하며 비숍 부인이 이것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순성이 돈을 돌려주는 일이 이루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당시 권력자의 부패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벨라의 기록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외국인이 체감할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다른 기록을 살펴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다만 그것을 기록하는 외국인의 시선이 그러한 부조리 역시 근대화되지 않은 타자의 무능력으로 표상하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권력자의 부정, 부패를 한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의 비능률성에 대입하여 사고하는 것은 결국 실용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서구 중심적 인식을 그 배면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식민주의적 담론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잭 런던의 동양에 대한 인식은 중국과 대면할 때는 사뭇 달라진다. 일본의 경우 “서양으로부터 모든 기술발전을 도입해 왔는데 윤리적 발전은 무시”(236쪽)하고 있다며 그들의 가볍게 본다. 정신/육체의 이분법적 사고의 전통은 여기에서도 나타나는데 기술적인 면은 모방할 수 있을지언정 정신적인 면은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일본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잭 런던은 전망한다. 이에 반해 중국은 “서방세계가 위협을 느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잭 런던은 중국인이 근면하며 겁이 없다고 본다. 또한 보수주의 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며 새로운 사상과 방법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중국인의 발명정신과 모험정신”이 잠자고 있을 뿐이라는 것. 잭 런던의 입장에서 중국은 위협적인 타자이다. 언젠가 서구를 침범해 올, 혹은 자신의 세계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중국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는데 그것은 역시 서구적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때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일본이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중국을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잡아만 준다면 급속도로 크게 성장할 것이다. 일본은 이 기능을 수행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일본은 백인들의 물질문명을 흉내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며 성실한 일꾼이며 유능한 경영인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을 지휘하는 데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중략) 서양문명이 일본을 깨우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였고 일본인 고유의 정신으로 일본화된 근대 서양문명이 중국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촉진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233~234쪽)

서양문명이라는 식민주의 담론을 수용하고 비로소 동양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잭 런던의 판단 기초이다. 결국 서구 식민주의적 담론을 내면화한 타자가 주체를 모방해야만 주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주체 닮은꼴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것을 경계하는 서구는 식민주의 담론을 고착시키는 방식으로 동양의 근대를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3. 비참과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엠마 크뢰벨

버튼 홈스와 잭 런던보다 십수 년 앞서 한국을 찾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여행기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1898년 1월에 런던과 뉴욕에서 출간되어 그녀가 생존해 있을 당시까지 11판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9) 그만큼 한국에 대해 외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잭 런던이 박순성을 만나면서 이사벨라를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한국을 정확하게 연구하고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이유로 이사벨라의 기록은 구체적이며 실증적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사유의 기록만은 아니다. 한국에 관한 연구와 실증적 자료는 서구의 식민주의적 담론에 의한 필요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것은 서구/주체가 동양/타자를 전략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일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한국을 바라보는 이사벨라의 시선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선의 권력은 표상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위계를 설정하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 우월한 위치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행위는 그것이 프레임의 시계로 들어오는 순간 환상적인 타자로 의미화된다. 버튼 홈스가 영화로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100년 후의 사람들이 100년 전의 삶을 ‘보면서’ 느낄 어떤 감정이었다. 그것은 미래로 상징되는 근대화된 서구와 과거로 상징되는 동양의 시/공간 맥락에서 비롯된다. 이사벨라가 처음 부산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한국의 인상은 ‘비참’이다.

좁은 거리는 초라한 오두막집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오두막집들은 창문이 없는, 진흙으로 된 담벽과 짚으로 된 지붕의 깊숙한 처마를 가졌다. (중략) 오두막집들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쓰레기들이 버려진 불규칙한 도랑이 있었다. 도랑 옆에는 옴이 오르고 털이 빠진 개들과 눈이 짓무르고 때가 비늘처럼 벗겨지는 아이들이 있었다.(35~36쪽)

더럽고 악취나는 수챗도랑은 때가 꼬질꼬질한 반라(半裸)의 어린아이들과 수채의 걸쭉한 점액속에 뒹굴다 나온 크고 옴이 오른, 눈이 흐릿한 개들의 즐거운 놀이터이다.(53쪽)

이사벨라의 시야에 들어온 비참은 부산뿐만이 아니라 서울 등 한국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더럽고 악취나는” 한국의 풍경은 그것이 비록 객관적인 기록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근대화가 덜 된, 즉 야만의 상태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화될 수 없는 타자는 야만적인 형태로 근대화된 서구인의 시선을 통해 ‘비참’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이사벨라의 애정은 여행이 지속될수록 강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것이 주체의 시선에 들어온 타자를 주체와 동일시하는 형태의 애정은 아니다. 서구의 시선에서 볼 때 근대화는 자국(영국 중심의 유럽)이거나 일본의 모델을 긍정한다.

넓고 잘 다듬어진 거리들과 깨끗한 부두, 일본 본토의 그 깨끗하면서도 우아한 일본적인 미의식을 보여주는 깔끔하고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한 저택들, 거대해서 매우 눈에 잘 띄는 영국과 일본의 스타일이 혼합된 일본 영사관, (중략) 발을 절면서 걷는 우아한 일본여인 등은 활기찬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를 상징하고 있다.(201쪽)

이사벨라의 눈에 비친 원산의 일본인 집단 거주지는 일본 본토의 근대화와 동일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곳은 한국의 여타 지역과 차이를 이루며 근대화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한다. 그녀가 보기에 한국은 “반쯤 조는 두 눈을 문지르며 몽롱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어리둥절해 하는”(79쪽) 타자이다. 미몽에서 깨어나 근대화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존재가 한국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사벨라는 한국을 서구나 일본과는 다른, 근대화를 아직 이루지 못한 야만의 타자로 차이화한다.

근대화하지 못한 한국을 형상화하는 데 이사벨라는 착취의 구조를 차용한다. 이 구조는 명백하게 한국의 전근대적인 혹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양반들의 기득권이다. 이사벨라가 관아를 찾아갔을 때의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잭 런던의 글에서도 인용되고 있듯이 상당히 유명하다.

밀러씨는 우린 단지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고 한다고 방문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자 퉁명스런 대답이 나왔는데, 마치 대단한 영웅이 그의 심복에게 하는 식으로 말을 시작했고, 무례한 평가들이 저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우린 공손의 표시로 하는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어떤 답례도 없었다.(110쪽)

이사벨라 일행이 관아에서 겪은 일은 지배층의 무례함이었다. 자신들을 하인처럼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또한 이러한 지배층의 모습은 수탈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이사벨라가 한국 사람들을 게으르게 보았던 일도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한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중략) 억압의 유형은 합법적 세금의 두세 배인 부역, 소송의 경우에 강요되는 뇌물, 강제되는 대부 등이다. 만일 한 사람이 얼마의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면 관리는 그것을 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을 들어주면 빌려준 사람은 원금 또는 이자를 결코 받지 못한다.(389~390쪽)

이사벨라는 “관리들의 악행”만 없다면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관습적인 것으로 여기고 수용하는 한국인의 모습이야말로 이사벨라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타자의 어리석음으로 느껴진다.

전근대적인 착취의 구조의 다른 하나는 여성을 바라보는 이사벨라의 시선을 통해 나타난다. 이사벨라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착취는 여행기 곳곳에 제시된다. 버튼 홈스의 여행기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 여성의 주된 일은 빨래로 제시된다. 이사벨라 역시 빨래가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60쪽)이라고 본다. 그녀가 보기에 한국 여성의 “대부분은 가정의 노예”이며 “다른 어떤 나라의 여성들보다도 더 철저히 예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최하층계급의 일원”(63쪽)이다.

여성들은 어떠한 지적 교육도 받지 않고 모든 계층에서 열등한 지위를 갖는다. (중략) 한국 남성들이 생각하는 자연(自然)은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서 남성에 부속된 상태이다.(394쪽)

이사벨라는 이러한 여성의 예속에 대해 “격리는 모든 나라들의 관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구 여성들이 갖는 자유에 비해 한국의 여성들이 갖는 자유의 차이를 인식하며 그것이 교정되어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법도 중요하지만, 관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법의 강제력보다 더한 관습에 의해 집의 안뜰에 격리되어 있”(394쪽)는 여성이 이사벨라를 보며 “남편이 당신을 너무 구박하고 보살피지 않는다고 생각”(395쪽)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피지배자들이 지배들로부터 부과된 도덕을 지배자들보다도 더 진지하게 받아들”10)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전통적 관습을 타파하지 않는다면 개혁은 요원하다. 그러나 “한국은 개혁을 수행하고 변화를 위한 조화로운 계획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경험이 없어 보인다”(389쪽)고 판단한다. 일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개혁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한국의 주체적인 개혁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유보한다. 이 시기의 한국은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제국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그러한 정치적 지형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애정이 담긴 한국에 대한 조언을 여행기에 담았다. 다만 비숍의 조언이 한국에서 수용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버튼 홈스, 잭 런던이 한국을 다녀간 이후 한국 황실에 온 여성이 있다. 그녀는 엠마 크뢰벨(Emma Kroebel)로, 1905년부터 1년간 대한제국 황실에서 서양 전례관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독일 출생의 엠마 크뢰벨은 손탁(Sontag)의 추천으로 황실에 머물면서 당시 정세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녀 역시 서구의 다른 여행자들과 같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하며 한반도 주변의 세 열강의 대결장으로서의 한국을 바라본다. 특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이 폭풍 전야의 긴장으로 휩싸여 있다고 판단한다.

 

그녀는 이사벨라에 비해 근대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럽고 악취나는” 서울의 풍경이 아니라 전근대와 근대가 뒤섞인 풍경을 보게 된다.

서울은 세계에서 특이한 도시이다. 고대와 현대, 그리고 구문화와 신문화가 서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상호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서양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와 과거의 필수적인 생활시설들이 고도(古都)인 서울 안에 서로 뒤엉켜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11)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던 한국의 모습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뒤엉켜 있는 형태로 형상화된다. 이것이 버튼 홈스의 기록처럼 서구의 기술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필요를 자각하는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다. 엠마 크뢰벨은 전기의 필요성을 한국인이 재빨리 인식했으며 전력개발에 앞장섰다고 표현한다. 전기의 필리성을 빠르게 터득한 한국인의 모습을 인식하는 시선이야말로 버튼 홈스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시선일 것이다.

엠마 크뢰벨의 중요한 업무는 궁 안의 예절, 특히 외국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지도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 황제를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직접 접하게 되는데 그녀는 고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녀는 국제 정세에 휘둘린 나약한 모습을 황제는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덕으로써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있는 황제의 마음을 잘 아는 백성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187쪽)한다고 평가한다. 엠마 크뢰벨도 이사벨라처럼 관료의 문제를 지적하며 황제가 그들 욕망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자기들의 이익만 챙기는 탐관오리들은 국왕과 백성 사이의 신의를 방해했고, 백성에게서 혈세를 거두어들이는 게 자기들의 권한이라고 여기고 있었다.(187쪽)

또한 궁궐 안의 연회 모습에 대한 비판도 날카로운데, 비판의 핵심에는 “조선식의 풍속은 아예 흔적조차 없고 서구식 ‘파티’가 지배”(199쪽)한다는 데 있다.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이 여전한 한국에서 외래풍속이 연회를 지배한다는 점을 문화인류학적 차이를 없애려는 문화 개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서구식이 근대화의 모범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복고적인 것에 대한 옹호라는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엠마 크뢰벨이 황실의 주체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엠마 크뢰벨의 비판의식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에만 한정될 뿐, 국제 정세를 한국의 당시 상황과 연계하여 객관화하지는 못한다. 그녀는 한국의 결혼 문화나 여성의 지위, 한국인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는 있지만,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주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미신에 대한, 특히 장례 행사에 대한 미신적 요소에 대해서는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 버튼 홈스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지관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하게 엠마 크뢰벨로 미신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 때문에 경제적 파탄의 지경까지 이를 수 있음을 비판한다.

그녀의 비판적 시선은 그러나 자신이 언급한 문화인류학적 차이에 대한 무지의 소산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서구의 시선으로 통합해야 할 동양은 문화적 차이 역시 무시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열등한 타자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일본의 정치적 움직임을 바라보는 엠마 크뢰벨의 시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방문하여 일본에 유리한 협상을 얻어낸 이토의 정치 능력은 외교가로서의 자질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외모만 보아도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중략) 지휘관으로서 사태를 감지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어떤 적장이라도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 위압적이었고, 기세가 등등했다.(241~242쪽)

따라서 조선인들은 일본의 속국이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선의 민법과 형법이 실효를 발휘하고, 차후 경찰의 개혁, 세금에 관한 법이 확정되고, 또한 현대식 교육제도에 이르기까지 그 기반을 닦게 되면,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을 혁신적인 법치국가로 만든 것에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251쪽)

타자를 근대화해야 한다는 서구의 인식은 뿌리 깊게 작용한다. 근대화, 문명화된 존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못한 존재는 독자적으로 취급되지 못한다. 엠마 크뢰벨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형적인 식민주의적 담론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 대한 분석은 그녀의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문화적 차이, 즉 ‘다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저 복고적인 취향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궁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그 안에서 첨예하게 갈등 중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끌어안지는 못한다.

황실 가족의 묘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얼굴 찌그리게 한’ 행동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미국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는 단면이었다.(237쪽)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방한했을 때, 고종 황제의 영접 행사에 무례를 범한 그녀를 비판하던 엠마 크뢰벨의 시선은 한국과 서구의 정치적 관계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비판은 유럽의 우월한 문화적 입장에서 미국의 저열한 문화적 예의없음에 천착한다. 그녀의 유럽 중심적 사고는 같은 서구 사회이지만 문화적으로 열등한 미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은 엘리스 루스벨트의 행동을 미국인의 저열함으로 확대하여 비판하는 것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유럽 중심주의적 식민주의 담론을 체화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일 것이다.

 

4. 나가며

엠마 크뢰벨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 후기에서 언급하면서 일본인 권력자의 냉정한 행동을 촉구한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식민주의적 담론은 지배층의 결단과 시혜를 피지배층에게 베푸는 것에 주의를 둔다.

거대 담론으로서의 식민주의적 담론은 개별 주체의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비록 무의식적인 방식일지라도 개별적 주체는 영향을 노출하게 마련이다. 영화와 신문이라는 매체적 접근으로 객관적이고 사실주의적으로 관찰한다고 해도 그 안에는 이미 편집과 프레임화된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지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수집의 차원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정보를 이용할 주체의 작용이 대상을 파악하는 데 영향을 준다.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여성 여행자들의 경우 공동체 내에서 타자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시선 안에 들어온 타자를 주체의 위치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그들이 취하는 관찰자의 특권적 시점은 근대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성격이 투사되어 있음은 명확하다. 야만적인 타자로서의 동양, 미개한 지역을 계몽해야 한다는 식민주의적 담론은 타자를 관찰, 기록하는 개별적 주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오리엔탈리즘의 ‘외재(外在)적 성격’이 ‘객관적인’ 대상화를 수행하는 관찰자의 특권적인 시점을 통해서 대상에게 강요된다. 동양은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표상되어야만 하고, 관찰자는 자유롭게 동양이라는 무대에 그 구성원리를 강제할 수 있다.12) 이러한 시선의 권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유럽중심주의의 규율을 내면화한 개별 주체에 의해 퍼져나간다.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여겨지던 여행자들의 기록조차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텍스트임을 우리는 안다. 그 안에 나타난 모순들을 극복하기란 요원할 수 있지만, 그것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반성함으로써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타자를 주체의 하위로 두려고 하는 무의식적 시도를 밝혀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고착된 식민주의적 담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부는 한류 바람이 식민주의 담론의 재현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 주체적인 문화를 생성하고 발전시키는 가능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나타난 서구와의 경제적 예속 관계를 극복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주체/타자의 구별을 무화시켜야 할 것이다. 파농(Frantz Omar Fanon)이 말한 것처럼 “이 세계가 나와 더불어 활짝 열린 모든 종류의 의식의 문을 느낄 수 있”13)게 되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자기규정의 준거를 지니고 주체와 타자의 구별이 아닌 다양한 주체의 자기 증명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글 ㆍ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1) 호미 바바, 『문화의 위치』, 나병철 옮김, 소명출판, 2002, 145~147쪽 참고.

2)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올바른 이성이 단순히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규제하는 것을 넘어 목적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도구라면, 도구적 이성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이성이 자기 유지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도구적 이성에 의해 미메시스적 계기는 축출되고 경험과 사유의 빈곤이 초래되며 사유는 실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62쪽.

3) 사미르 아민, 『유럽중심주의』, 김용규 옮김, 세종출판사, 2000, 122쪽.

4) 버튼 홈스, 『1901년 서울을 걷다』,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123~124쪽. 이후 인용 시 쪽수만 표기.

5) 백문임의 글을 보면 제넷 로언이 버튼 홈스를 분석한 것이 인용되는데 그녀의 분석은 홈스가 “1898년 하와의 병합시 하와이를, 필리핀 마닐라만 전쟁 직후인 1899년 필리핀을, 의화단 사건 직후 서구 군대가 베이징을 점령하여 자금성이 외부인에게 잠깐 공개되었던 1901년에 자금성을 방문했던 타이밍”이 결국 미국의 파워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것을 기록한 것이었다는 점을 말한다. 백문임, 「버튼 홈즈의서울 여행기와 영화」, 『현대문학의 연구』47집,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 10쪽.

6) 조강석, 「근대 초기 외국인 방문기에 나타난 세 가지 시선」, 『한국학연구』37집, 2015, 629쪽.

7) 잭 런던,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윤미기 옮김, 한울, 1995, 40~41쪽. 이후 인용 시 쪽수만 표기.

8) 김진아, 「몸주체와 세계」,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의 몸』, 창비, 2005, 21~23쪽.

9)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이인화 옮김, 살림, 1994, 539쪽. 이후 인용 시 쪽수만 표기.

10)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앞의 책, 227쪽.

11) 엠마 크뢰벨,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김영자 옮김, 민속원, 2015, 166쪽. 이후 인용 시 쪽수만 표기.

12) 강상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경덕, 임성모 옮김, 이산, 1997, 83쪽.

13) 프란츠 파농, 『검은피부, 하얀가면』, 이석호 옮김, 인간사랑, 1998, 292쪽.

* 사진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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