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로운 가족영화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주로 ‘가족’을 테마로 한 영화를 연출해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어느 가족>(2018) 등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와 같은 영화를 통해 두 가지 방식으로 가족을 다룬다. 하나는 혈연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가족끼리 서로 주고받는 상처를 들여다본다. 그런 다음 봉합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나간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가족이 점점 해체되어 가는 시대에 혈연 이외의 관계 또는 법적인 테두리 밖에 있는 이들이 가족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런 다음 관객에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가능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브로커>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 소영(이지은)은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다. 교회 직원 동수(강동원)는 아기를 유기아로 등록하는 대신 세탁소를 하는 상현(송강호)에게 넘긴다. 상현과 동수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를 물색해 아기를 판매하는 브로커들이다. 그들이 입양을 원하는 이들을 찾고 있을 때, 소영이 아기를 찾으러 교회에 나타난다. 난감해진 두 사람은 좋은 부모를 찾아주려는 목적으로 아기를 빼돌렸다고 변명하지만, 소영은 그들의 정체를 금방 눈치챈다. 그녀는 아기를 매매한 돈을 나누는 조건으로 그들의 브로커 일에 동참하게 된다. 소영은 비록 자신이 키우기를 포기했지만, 아기가 최대한 좋은 조건의 부모를 만나기를 원한다. 따라서 동수, 상현 그리고 소영은 아기의 좋은 부모를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여기에 보육원에서 탈출한 해진까지 얼떨결에 합류한다.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부는 계속 나타나지만, 소영의 마음에 드는 이들은 없는 상황에서, 남들에게는 가족처럼 보이는 상현 일행은 봉고차를 타고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장르는 (유사) 가족 멜로드라마이면서, 한편으로는 길을 따라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다.
기구한 사연의 인물들
소영은 열악한 환경에서 매춘을 하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임신하고 우성을 출산했다. 낙태를 종용하던 남자가 자신의 아이이기도 한 우성을 하찮은 물건처럼 취급하자 격분한 소영은 그를 살해한다. 형사 수진(배두나)은 후배 형사(이주영)와 함께 아기를 매매 하는 현장에서 상현과 동수를 체포하기 위해 상현 일행을 계속 감시하며 따라다니다 소영의 범죄를 알게 된다. 여기에 죽은 남자의 아내가 자신이 우성을 키우겠다며 깡패를 동원해 상현 일행을 찾아다니면서, 영화 전반에 약간의 서스펜스가 만들어진다.
이혼한 상현은 딸을 그리워하지만 자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현이 돈이 궁한 처지에서도 우성을 살갑게 돌보는 이유는 딸을 키워봤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동수는 찾으러 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며 입양까지 거부했으나 결국 배신당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소영이 떠나보내야 하는 우성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접촉을 멀리할 때, 동수는 소영을 비난하며 우성을 자식처럼 돌본다. 축구선수가 꿈인 해진은 누구에게라도 입양되고 싶어한다. 그들 모두는 애타게 가족을 원하지만, 그들 곁에는 가족이 하나도 없다.
아기를 위한 최선의 선택
영화는 전반적으로 느린 리듬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각자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감정선이 끊임없이 얽혀든다. 갈등의 중심에는 ‘아기의 운명’이 놓여 있다. 소영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 계속 충돌한다. 형사 수진이 “왜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낳았냐?”고 힐난하자, 소영은 “낙태가 더 낫다는 말이냐?”고 응수하는 식이다.
최선의 양부모를 찾는 여정이 길어지면서, 인물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소영이 우성을 돌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난다. 그들은 우성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가족을 생각하면서 은연중에 서로 가족 같은 느낌을 갖는다. 상현과 동수를 체포하는 임무에만 매달렸던 수진도 소영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우성의 안위를 고민하게 된다. 그들의 만남이 인신매매라는 범죄를 매개로 했다는 점을 돌아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각각에게 적절한 배역을 설정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러한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물들의 감정을 변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만들어내어 관객을 설득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물리적인 시간을 부여한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르고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는 나쁜 인물이라 해도 인간적인 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아이를 버리거나 매매하는 인간들이 알고 보니 다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설정 따위가 때로는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메마른 시대에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이 감독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우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이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그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이라면, 비록 희생이 따르더라도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 속에서, 소영은 수진에게 우성을 맡기고 자수하는 선택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러한 선택을 통해 “인물들이 피를 나누지도 않았고 법적인 테두리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우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형성된다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각자 흩어져 살아가던 인물들은 모두 우성을 만나러 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보여주지 않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따라서 영화의 최종 결론, ‘우성의 운명’은 관객에게 주어진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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