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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용돌이 치는 나르시시즘의 서사
[김경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용돌이 치는 나르시시즘의 서사
  • 김경수(영화평론가)
  • 승인 2023.07.0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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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에스터에 대한 단상
보 이즈 어프레이드 포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 포스터_출처: 네이버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은 보(호아킨 피닉스)가 로저(네이선 레인)와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의 집에서 정체불명의 채널을 트는 장면이다. 보는 부상으로 인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못 갈까 봐 두려워 벌벌 떨고 있다. 그레이스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그에게 급작스레 한 채널을 틀라고 지시한다. 브라운관에는 CCTV로 실시간으로 감시되고 있는 그 자신이 있다. 보는 화들짝 놀라서 빨리 감기를 누른다. 그때 브라운관에는 보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는 그의 전작인 <미드소마>(2019)의 오프닝과도, <유전>(2015)의 일부와도 이어진다. 영화 속 인물이 프레임 너머의 미래를 마주하는 것은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 반복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미드소마>(2019)이다. 오프닝 타이틀이 등장하기 전, 몽타주로 여러 그림이 교차되어서 스크린에 나온다. 호르가의 풍경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출처를 알 수 없는데 대니(플로렌스 퓨)의 방에 걸려있다. 그림에는 앞으로 영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암시된다. 다만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은 사전 정보가 없으므로, 그 그림을 단지 분위기를 자아내는 맥거핀으로만 보게 된다. 호르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시피 한 대니가 무슨 수로 그림을 입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영화는 대니가 호르가 공동체의 일원에 속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대니는 가족이 가스사고로 죽고 남자친구는 그녀가 우울증에 걸렸다면서 떠나려고 한다.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애인의 스웨덴 여행에 합류하고 호르가로 들어가게끔 된다. 호르가는 히피 공동체가 연상되는 마을이다. 저만의 시간과 자연관을 지니고 있다. 호르가 주민은 한 명도 빠짐없이 금발 백인이다. 흑인 등 타인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니 일행 중에서 금발에다가 백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가 대니 뿐이라는 것도 단서가 된다. 이 공동체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대니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러 이미지를 외적으로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이미지가 대니의 무의식이 아닐 경우, 대니가 머무르면서 위안받을 수 있는 세계가 순혈의 아리아인만 허용되는 전체주의적 세계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대니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는 그 자신과 동질 집단에 불과하다.

대니는 호르가에서 그 마을의 규율에 따른 온갖 일을 경험하되 마치 감정이 마비된 듯이 기이한 표정을 짓는다. 호르가에서 마을의 여왕이 되기까지, 혹은 호르가 마을 축제의 제물이 되기까지 대니는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무기력한 대니는 애도 작업이라 보기에 애매한 감정을 지닌다. 그녀는 슬픔을 다른 슬픔으로 채우려 한다든지, 극단적 무기력마저 느끼지 않는다. 되려 반복되는 타인의 죽음을 강박적으로만 보고 있는다. 또 제 탓을 하지도 않는다. <미드소마>는 트라우마를 해소한다기보다 그 트라우마를 반복해 경험하고, 무뎌지면서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표정을 포착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상실이 무뎌지고 해소되기까지의 과정을 힐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종종 힐링 영화로도 밈화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애도 작업으로 인한 힐링이라기보다는 애도 작업의 불가능성을 전면에 드러낸다. 즉 어떤 대상의 상실이 잊히기보단 상처가 무뎌진 것에 가깝다.

 

영화 미드소마 일부 캡처
영화 미드소마 일부 캡처

아리 에스터 영화에서의 애도의 불가능성은 그의 서사와도 이어진다. 그림 속 서사를 다시 그림 바깥의 서사로 반복함으로 영화에 이중의 레이어를 만든다. 그의 데뷔작 <유전>을 생각해보자. 이 영화에서의 사건은 주인공이 만든 미니어처 집에서 예언된다. 관객은 이미 미니어처 집에서 사건을 본 뒤, 외부에서 다시 그 사건을 마주한다. 그의 영화 속에는 하나의 사건이 반복될 뿐이지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소용돌이의 구조와 같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이는 그 패턴을 감지하지 못한다. 되려 소용돌이 바깥에 있는 관객에게만 이 구조가 감지된다. <미드소마>는 소용돌이로 그려지는 서사의 구조로 대니가 경험하는 트라우마의 반복을 관객에게도 경험하게 만든다. 이는 다른 두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카메라에서도 드러난다. <미드소마>에서 아리 에스터는 점프스퀘어를 배제한다. 대신 관객이 공포를 느껴야 하는 대상을 미리 지정한다. 벽에서 한 남자가 떨어지고 난 뒤 호르가 주민들은 그 모습에 기뻐한다. 그때 대니의 시점에서 현기증을 비춘 뒤, 감독은 시체에 다가가 뭉개진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이는 미니어처 집에서 원경으로 보이던 이야기를 영화 전체에서 근경으로 보여주면서 반복하는 구도와 같다. 이 충격에 대한 대니와 호르가 주민의 반응은 기이하다. 가까이서 그 사건을 마주할 때 울기 시작해서다. 그들은 함께 울고, 하나의 감정만을 느끼면서 그 주민의 얼굴을 망치로 부순다. 아리 에스터는 이 반복으로 트라우마의 원경과 근경을 그려냄으로 그것을 물질화하려고 한다.

다만 이 방식이 새롭지는 않다. 아리 에스터는 데이비드 린치나 페데리코 펠리니, 요르고스 란티모스 등 선배 감독의 영향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포함한 그의 필모에서 반복되는 외재화된 미래는 아리 에스터의 것이 아니다. 그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는 찰리 카우프만의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2007)의 일부가 정확히 이 구도를 그리고 있다. 케이든(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방에 재생되는 TV 브라운관에는 한 노인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그 노인이 케이든이라는 것을 되돌아본다. 다만 케이든은 그 미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 마치 타인의 삶인 듯이 관조하기까지 한다. 찰리 카우프만의 세계와 정반대라고도 볼 수 있다. 찰리 카우프만은 미래를 스크린에 그려내더라도 그 인물이 미래를 보지 못하게끔 하는 데에서 자기연민을 피해간다. 내 운명은 이럴 거야라는 한탄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편, 아리 에스터는 인물이 미래를 공포로 마주하게끔 한다. 그 운명을 마주함으로 자신을 갱신하려는 것이다. 이는 자의식을 마주하고 치유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문제는 찰리 카우프만과 달리 아리 에스터의 세계는 그리 폭넓지가 않다. 아리 에스터의 인물은 살아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인형이다. 모든 캐릭터의 표정이 인위적으로 굳어 있는 데에는 모든 캐릭터가 감독의 내면의 한 부분을 그려내는 인형에 불과해서다. 찰리 카우프만이 자신을 퀴어나 트렌스젠더 등등 자신도 모르는 무수한 자아가 담긴 우주로 그려내는 데에 비해, 아리 에스터는 결국 자신과 동일한 누군가를 등장시키는 데에 그친다. 아리 에스터의 영화는 자기 정신분석의 과정이기도 하나 그 자신이 자신을 위로하고야 마는 자위에 그치고 만다. <미드소마><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서사 전개가 무엇인지, 거기서 오는 의미가 무엇인지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아리 에스터의 자폐적 세계는 타인이 내면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로 거부한다. <미드소마><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이미지가 휘황찬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리 에스터는 동일한 이미지를 무한정 반복한다. , 여러 이미지의 충돌이 없다. 소쉬르는 언어의 의미가 단어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영화로 나와 나의 무의식을 대결 구도를 그리는 듯하지만, 사실 나의 무의식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나와 과거의 나의 대결인 나르시시즘에 그치고 만다.

 
 
글·김경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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