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오락영화이다. 소재, 구성, 구현, 음악 등 오락성을 전반적으로 고려한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오락영화로 그렇다는 뜻이다. 그 이상을 감독이나 관객이 기대하지 않을 테니 성공적인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오락성에 최적화한 연출
횟감이 좋으면 회가 좋을 수밖에 없듯이, 영화나 문학에서 소재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본에 해당한다. 소재가 훌륭하거나 참신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전작 <모가디슈>(2021년)처럼 <밀수> 또한 실화에 바탕했다. 상세한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모가디슈>와 달리 <밀수>의 주요 내용은 거의 새로 구성됐다. “그때 해녀가 밀수에 가담했다고 하더라” 하는 수준이 확정된 내용이고 나머지는 연출과 각본의 몫으로 넘어온 듯하다.
그러다 보니 <모가디슈>보다 <밀수>에서 상상의 재량이 커진다. 재량은 양날의 칼이어서, 잘못 쓰면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베인다. 다행히 류승완이 한국의 대표적인 실력파 감독이다 보니, 그가 기대대로 재량을 잘 활용하여 극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밀수를 소재로 하더라도 전개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국경과 세관이 생긴 이래 밀수가 근절된 적이 없다. 문익점이 관점에 따라 밀수꾼일 수 있다. 밀수도 어떤 밀수이냐가 중요하다. 범죄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약 밀수와 영화 <밀수>의 1970년대 어촌 ‘군천’을 배경으로 펼쳐진 밀수가 다르다.
실재하는 듯 가상인 듯한 군천은 주변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며 어장이 황폐화 초입에 접어들고 어촌은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한 곳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임해공업단지라는 것이 개발연대에 전국 도처에 만들어졌는데, 임해(臨海)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공장은 바닷가, 그것도 이미 어느 정도 물류기반이 갖춰진 어촌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극중에서 군천으로 명명된 그곳이다.
1970년대는, 류 감독이 직접 선곡했다고 하는 그 시절 인기 대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잘 표현된다. 복장이나 풍경 또한 기여하기는 하지만, 음악이 너무 압도적이다. 그 시절 감성이 물씬 풍기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감각적인 그 노래들은 영화에서 열일한다. 레트로로 퉁치기엔 존재감이 너무 크다. 전개, 전환, 연결 등 음악이 해낸 일이 많다. 선곡 감각이 핵심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판단이다.
공장의 높다란 굴뚝에서 품어나오는 연기는 어촌의 몰락을 선언한다. 공업화가 개시된 1970년대 어촌에서 어업에서 밀려나게 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존 방식을 탈피한 새롭고 혁신적인 어업에 종사하거나,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 상상할 수 있는 경로이며, 서울 등 대도시로 많이 떠났다. 혁신적 어업과 같은 일은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체로 실제로 일어나기 힘들었고, 주민들은 포식자에 쫓기는 초식동물처럼 거의 바다에서 밀려났다.
197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류 감독은 “70년대 배경이라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 기억 속 사람들의 행동들, 그들의 비주얼, 대중스타들의 모습 등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모든 기억을 총망라해 타임머신 여행하듯 관객들이 빠져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 자신감이 영화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해녀가 필요했다. 물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해녀라면 화학공장이 들어서 소도시로 변하기 시작한 ‘익숙하지만 낯선’ 그곳에서 어떤 경로를 선택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해녀이기 때문에 추가로 주어질 수 있는 선택지가 밀수이다.
아마 당시에 해녀가 밀수에 동원된 이유가, 해녀의 가담으로 밀수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지 싶다. 세관을 통하지 않고 해외 물품을 들여오는 입장에서 일단 밀수품을 바다에 부려놓고 원하는 시간에 꺼내올 수 있는 건 그 작업에서 큰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전반에 흩어져 있는 코믹 요소는 재미를 배가한다. 금괴나 다이아몬드가 있기는 하지만 밀수품이 대개 생활용품이어서 정색하고 범죄를 그리지 않아도 된다. 지금이라면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사안이기에 시종일관 웃음으로 영화를 끌어나가도 무방하다. 내용과 형식에 괴리가 없다는 뜻이다.
코믹 연기에서는 장도리 역의 박정민과 고옥분 역의 고민시가 단연 흐름을 압도했다. 웃음의 다른 한 축인 조춘자 역의 김혜수 또한 제몫을 감당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웃음이 배우와 합체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게 흠잡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액션이 들어온다. 비장한 액션이 아니라 만화 같은 액션이어야 하고 실제로 그랬다. 박정민이 코믹과 액션에서 큰 비중을 생동감 있게 소화해서 고민시와 함께 단연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였다. 염정아 김혜수가 극의 주요 흐름을 끌고 가지만, 보조하는 고민시 박정민이 관객에게는 더 크게 보였을 것 같다.
이어 핵심적인 선과 악의 대립 구도와 반전, 위기, 그리고 해피엔딩이면 이런 유의 영화가 갖추어야 할 것을 다 갖추게 된다. <밀수>가 이런 도식에 잘 맞아떨어진다.
해녀
해녀의 역할이 <밀수>에서 사활적이었다. 전개나 스토리라인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물론 해녀라는 직업을 연기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류 감독은 “해녀라는 직업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드문 직업이기에 이들의 세계를 프로페셔널하게 그려내는 것을 고심했다”고 말했다. 김혜수, 염정아를 비롯해 해녀 역할을 맡은 박준면, 김재화, 박경혜, 주보비 같은 연기자가 스크린에서 해녀처럼 보이기 위해 치른 노력은 관객이 평가하겠지만, 해녀 세계를 자세히는 모르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수중 액션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비교적 잘 소화한 듯하다. 김혜수, 염정아가 수영할 줄 모르는 데다 물에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어서 이들이 해녀 연기를 해내는 건 제작진이나 배우나 큰 도전이었지 싶다. 수중 촬영은 6M 수심의 수조 세트에서 진행됐다.
영화의 스토리를 해녀들이 끌어가기에 일각에서는 이 영화에 여성서사라는 명칭을 붙이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여성이 복잡한 갈등과 음모 속에서 연대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니 여성서사라고 해야할까.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시비를 걸지야 않겠지만 만일 정말 그런다면 조금 민망할 것 같기는 하다. 여성서사가 되려면 젠더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사회성에 관한 성찰 속에서 여성 문제를 긴박하게 짚어내며 연대와 긍정적인 전망 속에서 아름다운 상을 잡아내야 하지 않을까. 한마음으로 뭉친 여성들이 사악한 남성들을 물리쳤다는 식의 만화 같은 설정으로는 그런 표현까지 내세울 건 없지 않을까.
진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그저 재미를 극대화한 이런 유형의 영화에서 굳이 여성서사를 찾을 이유가 없다. 재미있으면 됐지 않은가.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락서사이다. 남성과 여성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과도하게 전형적인 캐릭터와 보기에 따라 식상한 플롯이 어떤 관객에게는 다소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중의 기호를 고려하면 이것보다 더 나가 조금 더 비트는 건 무리였을 것 같기는 하다. “앉은 자리에서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는 류 감독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아마 이 목표에서 감독이 예민하게 의식한 것은 무엇보다 대중일 것이다.
글 안치용,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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