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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야생의 사랑과 영화 <와일드 투어>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야생의 사랑과 영화 <와일드 투어>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7.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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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와일드 투어>는 제목 그대로 야생을 탐험하는 것이 아닌 관광하는 영화이다. 특별한 위협도 위기도 없고 안전하게 우리 지역의 산과 숲, 자연을 들여다본다. 물론 이 관광이 단순한 여행인 것은 아니다. 지역 환경의 이해 및 지역 사회 청소년의 교육을 목적으로 우리 동네, 지역의 식물들을 관찰하고 채집하여 DNA를 수집하는 정보예술센터 워크숍의 일환이다. 한 워크숍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한다. 당연히 탐험이나 연구가 아니라 관광하듯, 놀이하듯 참여하는 수업에서 새로운 종을 찾을 일은 없다. 새로운 종을 찾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식물들의 모습과 개별 염기서열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이 워크숍을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생태와 식물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영화를 마치 지역 환경과 워크숍에 관한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했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배경과 설정을 설명한 것이다. <와일드 투어>는 이러한 배경을 거울삼아 10대와 20대 초반의 풋풋한 사랑의 구조와 지도를 그리는 픽션이다. 야생이라는 제목은 영화 속 청소년들이 돌아다니는 자연환경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과정과 관계의 축적된 시간을 겪으며 사랑에 빠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고, 섣불리 고백하고, 멀어지고, 엇갈리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야생적 이끌림으로써 사랑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랑을 그리는 데 있어서 영화는 이입하거나 누군가의 입장에 서기보다 여러 인물을 식물 채집하듯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예컨대 슌이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는 장면이나, 다케가 우메에게 고백하는 장면, 야마자키가 산 정상에서 자신이 이끄는 학생 한 명과 묘한 침묵에 빠졌을 때 카메라는 누구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투 쇼트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같은 의미에서 영화 속에는 식물을 관찰하는 시점 쇼트나 식물을 촬영하는 아이폰 화면의 시점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 인물이 짝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을 감정 묘사로 활용한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메가 야마자키에게 다시 사귀자고 하는 장면만 봐도, 슌이 그것을 몰래 지켜보고 있음을 나타내는 쇼트가 씬의 시작 부분에 나왔음에도 관음하는 그의 시점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에 가까운 화면사이즈에서 점점 넓어지며 단절되고 멀어지는 야마자키와 우메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와일드 투어>는 그럼으로써 최면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처음이기에 일방적이고 서툰 사랑의 모습을 어떤 면에선 우스우면서도 그럴만한 10대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귀엽게 담는다. 그리고 그 어리고 서툰 사랑의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그들이 촬영한 스마트폰 영상을 통해 형상화한다. 앞서 짝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감정을 묘사하는 시점 쇼트가 없다고 했지만, 그러한 효과를 지닌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다케가 우메에게 고백을 하는 동안, 편집실에서 자신들이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는 슌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는 여러 개의 섬네일을 넘기다 우메의 얼굴이 담긴 장면에서 멈춘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 그 영상을 재생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이때 영화는 그것을 슌의 시점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면 얼굴 위로 영상의 이미지를 반투명하게 겹쳐 놓는다. 우메를 기록한 영상과 그것을 사랑에 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슌이 상상하는, 그리는 환영과도 같은 사랑의 이미지를 반투명하게 형상화하면서 그것을 그의 얼굴 위에 중첩하며 가시화한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타자의 생각과 감정이 아닌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에 몰입한 얼굴을, 가시화된 환영적 이미지와 겹치며, 시점과 시점의 주체가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로 시각화된 쇼트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쇼트/역쇼트의 비대칭적 권력, 관음적 요소를 희석하고 하나의 쇼트 안에서 환영과 그것에 몰입한 얼굴을 강조하면서, 슌의 미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밉거나 징그러운 것이 아닌 순수한 야생적 감정으로 보이게 한다.

이 장면은 사랑의 대상을 실제로 마주하는, 우메에게 고백하는 다케의 모습을 그린, 전 씬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다케와 슌 모두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하는 미성숙한 짝사랑이지만, 둘의 결과는 다르다. 다케는 자신의 상상적 사랑을 고백으로 현실화하여 실패하고 우스운 대상이 되지만, 슌은 그것을 숨김으로써 순수한 감정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메가 미국에서 보낸 영상을 받고 다케는 애써 무시해버리지만, 슌은 영상을 찍어 답장하려고 한다.

<와일드 투어>에서 줄곧 다큐처럼 제시되는 이러한 스마트폰 시점의 영상물들은 내가 기록하고 나 혼자 보는 무언가에서 타인에게 보내고 공유되는 무언가로 변화한다. 오프닝에서 녹화음 소리와 함께 제시된 스마트폰 시점 쇼트는 영화의 전반부에는 그저 워크숍의 일환으로 촬영되는 설정으로서의 쇼트였다. 하지만 야마자키가 자신이 학생들과 산에서 촬영한 영상을 사무실에 있는 우메에게 보내고, 그것을 그녀가 보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한 개인의 기록물은 시간과 먼 거리의 제약을 넘어 개인의 시점이 아닌 우리의 시점이 된다. 다케는 워크숍을 통해 이것을 배우지 못했지만 슌은 영상으로 타인과 관계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우메, 다케, 슌 이 세 인물만이 아니라 워크숍에 참여하는 두 어린 남학생과 야마자키와 그가 이끄는 여학생 무리를 오가며 처음에는 다큐 같았던 영화는 슌이 정보예술센터의 출입금지라 적힌 선을 넘으며 픽션의 첫발을 딛고 엇갈리는 관계와 사랑의 모습을 통해 온전한 픽션이 된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선을 넘는 것만이 아닌 타인이 본 것 내가 보고, 내가 본 것을 타인이 보면서 그렇게 된다. 영화라는 픽션처럼 말이다.

<와일드 투어>는 각자가 보고 기록한 것들을 모으는 편집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과거가 된, 이미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메, 다케, 슌의 모습을 하나의 쇼트로 장면화한다. 기록되어 영상이 된 그들과 실제 그들이 중첩된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담는 사실적 기록이 환영적, 픽션적 즐거움으로 변모하는 카메라와 영화의 야생적 순수를 포착한 이미지가 된다. 즉 <와일드 투어>는 단순히 지역 환경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워크숍이나 청춘물이 아니라 인간과 영화에 관해 말하는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종을 찾아내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우리 현실에서 익숙하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통해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인간과 사랑, 영화의 본질로 인도하는 여행안내자로서 완벽하게 그 목적지로 우리를 안내한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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