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10년 만에 재개된 순간, 남북의 정상이 손을 꼭 잡고 경계선을 넘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리고 성명서를 통해 연내 종전 선언합의라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웃다가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사실, 솔직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왔지만 진심으로 통일을 기원하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는 세대들이다. 휴전이라는 상황을 알고 매번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에도, 종전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상상 밖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간첩 리철진>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간첩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 <공조> 등 분단 상황을 빗대어 영화적 상상력을 펼치는 영화는 많았지만, 통일 이후나 종전 상황을 상상하는 영화가 없었던 것도 이런 정서적 한계 때문인지 모르겠다.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전제로,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통일이라는 가장 극적인 상상력에 이르지는 못했다.
어쩌면 악마의 손톱을 지닌 북한군이라는 소재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북한 지도자를 돼지로 묘사하는데 서슴없었던 <똘이장군>에 세뇌된 전후 세대들은 ’공산당이 싫은’ 이승복 어린이를 모두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잠깐 한반도가 하나가 되는 상상의 시간을 뒤로 한 채, 2018년 그날 이후,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팬데믹의 시대와 더불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보고 있자면, 정말 현실이 영화의 상상력을 앞서고 있다고 할만하다. 얼마 전 10년간 내전을 이끌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시민들의 대탈주가 벌어졌다. 오직 생존을 위해 날아오르려는 비행기를 향해 달려드는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모습은 21세기에도 멈추지 않는 정치적 폭력과 독재의 핏빛 상징이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코로나19 확산 직전 촬영을 끝낸 <모가디슈>가 그리는 ‘대탈주’는 아프가니스탄 공항을 질주하는 생사를 건 시민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2021년 현재. 막연하던 통일, 혹은 종전의 기대는 금방 사그라지고 남북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로 회귀해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소원한 사이가 됐다. 그런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듯 남북의 이야기는 다시 과거 속에 담긴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과 그 속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나눈 감정의 소통을 그린다.
대한민국이 UN 회원국에 가입하지 못했던 시기,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세계화를 목표로 달리던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방법은 UN 가입이라 믿고 회원국의 표를 얻기 위해 현지에서 외교 총력전을 벌인다. 대한민국의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안기부 출신의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은 대한민국을 홍보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하루빨리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그때, 바레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는 내전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대한민국 대사관은 전기, 식량 등 기본적인 자원뿐 아니라 이웃나라와의 연락마저 끊어진 상태에 놓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및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구조를 요청하면서 남북의 국민들이 함께 하는 불안한 동행이 시작된다.
<모가디슈>는 국가와 이념을 뛰어넘어 오직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낸다. 역사적 사건 속에 남북관계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만큼 류승완 감독은 역사적 고증에 최선을 다했다. 소말리아 국영TV 사장의 서적 자료, 종군 기자의 사진, 한국 교환 학생으로 와 있는 소말리아 대학생, 군사전문가, 아프리카 관련 학과 교수 등 사전 인터뷰와 연구를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심지어 내전에 사용한 총기까지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실 <모가디슈>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들 중 하나는 ‘모가디슈’ 자체, 그 공간이다. 촬영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소말리아에서 진행할 수 없기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진행됐다.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모로코의 건물 위에 소말리아 스타일의 외형을 덧입혔다. 그래서 관객들은 마치 당시, 소말리아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독립영화로 장편 데뷔한 류승완 감독의 등장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후 류승완 감독은 줄곧 자기 의지를 벗어난 삶,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왔다. 그리고 집요하게 사람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가지는데, 이는 감독만의 특유한 정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상업영화를 찍지만, 일반적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류승완 특유의 색깔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욕심을 부리면서도, ‘달라져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매끈하게 벗어나, ‘있어 보임직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질주하는 영화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늘 달리지만 그 속도를 마냥 신나게 즐길 수 없다. 그는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말리아의 내전 위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사건들과 그 이미지를 겹쳐둔다. 지독했던 남북전쟁과 독재에 맞선 학생운동과 항쟁까지,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려온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먹먹한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모가디슈>는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 혹은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상상할 법한 감동을 위해 억지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사실 다른 영화들처럼 사건 이후의 후일담을 영화의 말미에 넣어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훈훈한 감동을 줄 수도 있고,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두 손을 잡고 달려왔지만 그 끝에서 끝내 서로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남북의 정치적, 역사적 갈등과 이념 논쟁을 현실 속으로 냉정하게 끌어다 놓는다. 그렇다고 <모가디슈>가 악화된 남북관계에 대한 이슈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줄곧 알면서 모르는 척 했거나, 몰라서 관심이 없었던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 그리고 내전의 통증 속에 있는 사람들 개개인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현실에서의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도리 역시 생존이라는 사실을 어떤 신파나 감정적 학대 없이 밀어붙인다.
역사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됐고, 3년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남한과 북한이 두 동강 나, 한반도의 허리에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설치한 후, 70년이 더 흘렀다. 아주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세대와 고향을 잃은 세대, 전후 세대, 민주화 항쟁 세대, IMF 세대, 촛불집회 세대가 모두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다. 팬데믹 시대를 거치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디론가 탈출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모가디슈>가 그려낸 20세기는 똑같은 풍경, 똑같은 상황, 똑같은 정서 그대로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소말리아는 30년이 넘게 내전 중이고, 남북은 여전히 갈라져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저 혼자 살겠다고 국민의 손대신 돈가방을 잡고 달아났다. <모가디슈>의 사람들이 도착한 공항은 종착역이 아니라,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 이 지독한 현실 속 이야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2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_ 모가디슈 _ 보도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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