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에선 새로운 도전이다. 특히 영상이 그렇다. <더 문(The Moon)>은 지구 밖의 공간과 달 표면을 무대로 한 한국판 최고 사양의 SF영화다. 넷플릭스에서 2021년에 공개한 <승리호>가 순수 공상에 가까운 SF영화라면 <더 문>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짐작할 만한 인간사와 인간들에 집중한 영화여서 그런지 SF물임에도 SF라는 생각이 잘 안 들 수 있다.
본격 SF이지만, SF 냄새가 덜 나는 영화
<더 문>은 본격 SF물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SF영화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지는 못할 듯하다. <더 문>이 SF영화라고 말하면, “아 그렇지~” 하고 한 박자 늦게 인식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2003년 <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신과함께> 시리즈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누적 관객 4627만 명을 달성한 흥행 감독 김용화의 색깔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김 감독은 이 영화를 “현실에 조금 더 발을 붙이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현실에 조금 더 발을 붙이고 있는 이야기”가 SF와 호응하는 표현일까. “어렸을 때부터 꿈꾸고 동경한 우주와 달”을 소재로 한 영화로 만드는 게 지금 한국 영화의 기술력이라면 도전장을 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 착수했다고도 했다. 그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겠다.
2022년 대한민국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발사돼 달 궤도에서 예정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2023년 5월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의 3차 발사까지 성공하며 우리나라는 우주 강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문>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김용화 감독)라고 볼 수 있다. 관객은 뉴스를 통해 망막에 이미 입력된 누리호 발사 장면을 바탕에 깔고 영화를 보게 되기에 약간은 다큐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의 시간 배경이 2029년으로 비교적 가까운 미래라는 점 또한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2030년으로 넘어가지 않고 2020년대에 머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극중에서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발사가 처음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5년 전에 같은 임무를 띠고 발사된 나래호는 발사 직후 공중 폭발로 산산이 부서졌다. 극중에서 5년 전이면 영화가 개봉한 바로 다음해이다. 두 번의 발사는 긴밀하게 연계되며 영화의 핵심 스토리라인을 형성한다.
확실히 한국의 우주 개발이 본격화하는 시점과 맞물려 <더 문>은 관객의 영화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기민하게 흥행 포인트를 잡은 김 감독의 감각이 돋보인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은 제대로 된 특수효과를 구현할 기술력이다. 우리 영화가 괄목할 만하게 성장하였기에 기술력 또한 우주 영화 제작을 시도해볼 만큼 높아진 상태다. 이미 다양한 우주 영화를 접한 한국 관객을, 어설픈 특수효과로 극장에 불러들이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정상급 한국 영화는 세계 수준에서 경쟁하고 있기도 하다. 감독 개인에게는 기술이라는 실질적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현실 판단이 있었고, 외부 환경으로는 한국의 우주 진출이 본궤도에 오르는 참이라는 진짜 현실이 존재했다. 그러니 <더 문>에서 SF 영화에서 두드러지기 마련인 공상의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상력이 빈곤하지는 않다. 현실적인 설정하에 상상력을 극강으로 펼친 데서 김 감독 연출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충만한 감성
개봉일로부터 6년 뒤인 2029년에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우리호가 달을 향해 출발한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달에 유인탐사선을 착륙시키려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이 우리호를 엄습해 두 대원이 지구와 달 사이에서 사망하고 황선우(도경수) 대원이 홀로 우주선에 남겨진다. 영화는 황선우가 우주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과 그를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해 애쓰는 지구 위의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결말은 사전에 확정돼 있다. 정해진 결말을 두고 과정에서만 승부를 봐야 하기에 이런 류 영화 만들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세계적 수준에 오른 특수효과 기술과 우주 개발이라는 사회 상황만으로 답을 찾아낼 수는 없다. 당연히 뭔가 <더 문>만의 특장이 필요하다.
영화에서는, 5년 전 나래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 나로 우주센터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이 황선우를 구하기 위해 호출된다. 여기에 한국인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김희애)이 황선우의 구출을 돕는다. 김재국과 윤문영이 황선우와 함께 갈등하고 협력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극이 전개되며 밝혀지듯, 김재국은 황선우ㆍ윤문영과 특별한 인연으로 묶여 있다.
영화 막판에 5년 전 나래호 발사 실패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고 마침내 예정한 결말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기까지 영화를 끌어가는 힘은 감성이다. “광활한 우주의 스펙터클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설경구), “희망과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도경수)라는 출연 배우들의 평은 이 SF 영화의 흐름을 대변한다. 김 감독도 인정한다. 그는 “감정에 ‘전, 중, 후, 말’의 단계가 있다면 배우들이 ‘후’ 단계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감정적인 층위가 높은 상태에서 지치지 않고 드라마를 끌고 가는 파워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이 말한 “감정적인 층위가 높은 상태에서”는 배우만 지칠 우려가 있는 게 아니라 관객도 그렇다. ‘말’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말이 신파의 경계에서 멈춰 섰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기에 신파로 넘어갔나 하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끔 살짝 경계를 넘었다는 판단이 든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소를 많이 깔아 놓았다. 사실 어떤 감성의 맥락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도 전체적으로 ‘후’ 단계의 감정을 극의 전개와 어쨌거나 잘 버무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흥행을 고려한 장치의 하나이겠지만, 국뽕적인 요소 또한 강하다. 대한민국 국기가 화면에 자주 보인다. 국뽕 요소가 비평가한테는 좋은 점수를 못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 관객에게는 관람의 유인이 될 법하다. 활용에 따라 국뽕은 효과적인 흥행 요소이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든다. 신파와 국뽕을 SF 형식에 버무려 유사 감동을 쥐어 짜냈다는 혹평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데 흥미로운 대목은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2시간이 넘는 짧지 않은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게 혹은 몰입하며 억지 눈물까지 흘리면서 볼 수 있었다. 대중성은 확실했다.
김 감독은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 시청각적 만족도가 높은 콘텐츠”라고 말했다. 우주 영화이니 당연하다. 이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극장에서 가능하면 아이맥스로 볼 것을 추천한다. 신파니 국뽕이니 하는 것에 선입견을 품지 않는다면 큰 화면에서 제대로 된 음향과 함께 관람하는 게 시간낭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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