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 교회는 건성으로 다녔지만 교회 성가대엔 열심이었고, 대학 시절에도 4년 내내 노래패를 했었다. 거기 살 때도, 여기 살면서도 고장 난 라디오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내왔다. 물론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하여, ‘싱어게인3’를 손꼽아 기다리며 봤다. 천재적인 가수들이 들끓는 이 나라에 또 어떤 이들이 나와서 내 마음에 단비를 적셔줄까 기대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매번 감탄하고 감사하며, 선물 상자를 열어보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얼굴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냥 노래를 즐기기엔 괴로운 점들이 적지 않았다. 무명이어서 서러운 가수들을 본선에 이르기 전까진 이름을 가리는 것도, 본선 이후론 매번 억지스럽게 조를 이뤄서 둘 중 하나를 떨어뜨리는 방식도 여전했다. 매번 더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그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즉 절대 평가를 하면 될 일이다. 왜 굳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구조”를 만드는 걸까. 그렇게 하면 특별히 재미가 있나? 누군가가 더 즐거운가?
마지막 회에 가서는 출연자 7명을 세워놓고, 7등부터 1등까지 낱낱이 발표했다. 그 대목에선 제작진의 잔인함에 기가 찼다. 그 7명의 뛰어난 가수 중 누가 꼴등인지를 우리가 왜 알아야 하며 굳이 그 점수까지 세세히 밝혀져야 하는가?
탑 7에 오른 사람과 거기에 오르지 못한 채 들러리를 선 6명 사이에도 명확한 실력 차이를 말할 수 없다. 전자가 좀 더 운이 좋았을 뿐. 그런데 우승을 차지한 출연자에게는 3억, 2등과 3등에게는 3,000만 원씩 상금이 수여됐다. 10배나 되는 상금의 차이는 무엇을 웅변하는 걸까?
만인이 만인을 향해 죽도록 싸워야만 하며,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여 행복한 공존을 이루는 건 금물인 바로 그 지점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 이상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기 싫은 시대를 만드는 게 아닐까. 인류는 적자생존보다 협업과 공생을 통해 지금까지 번성해왔다. 그게 린 마굴리스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의 존재를 통해 밝힌 공생진화론이다. 그녀의 학설이 정설로 굳어진 지도 20년이 넘었다.
어디에서나 1등은 한 명뿐이고, 그 한 명의 영광을 위해 나머지는 엑스트라로 만들어 버리는 한국 사회를 싱어게인 제작진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스타가 아니면 루저가 돼버리는 세상을 오늘도 열심히 만들면서, 우리는 여전히 왜 출산율이 ‘0’을 향해 전력질주하는지 궁금해하는가?
글·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 겸 번역가. 주요 저서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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