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구매하기
마틴 스코세이지의 <플라워 킬링 문>, “악의 길은 너무나 넓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플라워 킬링 문>, “악의 길은 너무나 넓다”
  • 김경욱 | 영화평론가
  • 승인 2024.05.31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 백인들이 연쇄 살해한 ‘붉은 피부의 백만장자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에서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 역의 릴리 글래드스턴과 그녀와 결혼한 어니스트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플라워 문>을 영화로 각색

1870년대 초, 오세이지족은 미국 캔자스주의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북동부의 인디언 보호구역 그레이스 호스로 이주했다. 1894년, 아무 가치도 없어 보였던 땅이 미국 최대의 석유 매장지의 일부로 밝혀지면서, 오세이지족에게 어마어마한 행운이 찾아왔다. 석유 채굴업자들은 오세이지족에게 임대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고, 석유 채굴량이 늘어나면서 오세이지족에 지급되는 돈도 점점 늘어나 수천 달러에 이르렀다. 

그들은 ‘붉은 피부의 백만장자들’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알려졌다.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와 함께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돈을 쫓아 그레이스 호스와 페어팩스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악한 어둠의 그림자가 그 지역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오세이지족 사람들이 차례로 석연치 않은 사고로, 자살로, 병으로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꽃을 죽이는 달(플라워 킬링 문)’의 시기가 도래한 것처럼. 오세이지족이 사는 지역은 4월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초원과 산을 뒤덮은 다음 5월이 되면 키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 위로 번져나간다. 키 큰 식물들에게 빛과 물을 빼앗긴 작은 꽃들은 목이 부러지고 꽃잎들이 흩어져 결국 땅속에 묻히게 된다.

 

1921년부터 4년 동안 오세이족 24명 살해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플라워 킬링 문>(2023)은 1921년부터 4년여 동안 24명의 오세이지족과 수사에 나섰던 3명의 백인이 살해된 사건을 다룬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플라워 문>을 각색한 영화이다. 이 무시무시한 비극의 중심에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턴)가 있다. 몰리에게는 어머니와 세 명의 자매가 있었는데, 엄마와 여동생은 ‘소모성 질환’(사실은 독살)으로, 언니는 총에 맞아서, 또 다른 여동생과 남편은 집의 폭발로 인해 차례로 죽어간다.

가족들이 모두 사망하자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오세이지족의 석유 로열티(‘인두권(headrights)’)는 모두 몰리에게 상속된다. 몰리마저 죽게 된다면, 그녀의 모든 재산은 백인 남편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상속될 것이다. 그런데 어니스트는 당뇨병에 시달리는 몰리에게 인슐린에 독을 탄 주사를 놔주면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중이다.

몰리와 오세이지족에게 벌어진 이 모든 비극은 어니스트의 삼촌이자 ‘오세이지 힐의 왕’으로 불리는 목축업자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이 주도해서 꾸민 음모였다. 인두권(headrights)은 상속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헤일은 어니스트에게 몰리와 결혼하라고 종용하고 그녀의 가족을 차례로 제거한 것이다.

오세이지족의 말을 할 줄 아는 헤일은 오세이지족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다. 오세이지족 대표가 잇따른 사망 사건을 부족 차원에서 조사하려고 하자, 헤일은 선뜻 살인 관련한 제보자에게 보상금 천 달러를 추가로 주겠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몰리와 오세이지족은 헤일을 의심하거나 헤일을 중심으로 한 백인들이 조직적으로 부족인들을 살해하고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를 알아채지 못한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더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다정하고 친절한 ‘친구’의 모습으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헤일은 오세이지족이 “내 인생 최고의 친구”라고 말한다.

 

백인들은 오세이지 인디언들을 학살한 뒤에 그들의 고유문화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기념관을 세웠다. 그레이 댄스홀 앞의 유색인 주민들.

헤일의 범행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백인이 그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유색인종에게 느끼는 시기심이다. 백인은 유색인종보다 항상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오세이지족은 백인보다 훨씬 더 부유하게 살면서 백인을 하녀로 두는 경우까지 있었다. 온종일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백인들이 즐비한데, 오세이지족은 무위도식해도 나날이 늘어가는 석유로열티 덕분에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같은 백인이라도 시기심이 발동할 상황인데, ‘열등한’ 유색인종이 그렇다는 건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헤일은 경멸 어린 어조로 유색인종을 야만인으로, 오세이지족 여성을 ‘담요’라고 부른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열악한 상태의 백인들은 헤일의 사주에 따라 별다른 망설임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러한 백인들의 시기심을 합리화하는 바탕에는 기독교의 선민의식이 깔려있다. 자신이 ‘32등급 프리메이슨’이라고 말하는 헤일은 살인 교사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는 범행이 드러난 다음에도 “오세이지족에게 학교와 병원을 지어줬고, 위대한 20세기를 안겨줬다”며 억울함을 내비친다. 선민의식의 또 다른 바탕에는 야만인들에게 수혜를 베풀었다는 제국주의의 합리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기심 많은 백인들의 집단 광기 

또 다른 범행 동기는 헤일이 자본주의의 화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헤일은 더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다 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갈구하는 허기진 상태의 좀비같은 인물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본질에 너무나 충실한 그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어쩌면 헤일보다 더 사악한 인물은 이름만 정직한 어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헤일이 꾸미는 범죄를 알고 있거나 직접 가담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는 듯한 모호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잔인하고 사악한 헤일의 겁박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계속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몰리가 인슐린 주사를 거부하자 어르고 달래다가 격노하며 결국 자신의 목표를 관철한다. 그는 몰리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주장하지만, 독살하려던 범죄를 정직하게 털어놓고 속죄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몰리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다음에도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그는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형사 장르를 좋아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수사를 맡은 FBI 요원이 아니라 어니스트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효과는 몰리의 가족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고 그녀 또한 어니스트의 손아귀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스릴러 장르적인 설정을 통해 서스펜스를 극대화한 것이다. 또 어니스트, 몰리, 헤일을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함으로써, 범죄가 드러나고 범인을 추적하는 상투적인 형사 영화와는 다른 영화가 연출될 수 있었다.

 

“옳은 길은 좁다!”

반면 수사관이 내러티브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사건의 전모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헤일이 학살의 주범이라 해도, 조력자들과 방관자들 그리고 은폐한 자들이 없었다면 몇 년 동안 그 많은 범죄가 계속 저질러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는 오세이지족을 치료하면서 독극물을 주입해 범죄에 가담했다.

또 헤일이 감옥에 수감된 이후에도 오세이지족에 대한 살인이 있었다는 것은 조직적인 범죄를 암시한다. FBI의 수사에 따르면, 백인 권력층을 중심으로 오세이지족을 살해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 백인들은 살인 이외에도 오세이지족 소유의 자산을 그들의 통제하에 두고 합법적으로 잠식하기 위해 후견인 제도를 만들었다.

오세이지족을 금치산자로 취급해 후견인의 허락이 있어야 자신의 돈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업가, 목장주, 의사, 변호사, 정치인 등의 백인 권력자들은 온갖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 오세이지족의 돈을 도둑질하고, 치안관, 검사, 판사 등 또 다른 백인 권력자들은 그들의 범죄를 묵인하거나 은폐한 것이다. “옳은 길은 좁다”는 영화의 대사를 그들에게 적용하면 “악의 길은 너무나 넓다.”

영화는 헤일과 어니스트가 감옥에 가는 지점에서 멈춘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무게와는 달리 너무나 쉽게 가석방으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냉소적인 방식으로 알리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다룬 사건과 인물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유사한 지점이 많아 너무나 씁쓸하다. 특히 헤일이 자신 있게 떠들어댄 대사는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한동안 대중들은 목소리 높여 나를 비난하겠지. 하지만 그러다 곧 잊어버려. 기억도 안 하고 신경도 안 써. 그냥 또 하나의 흔한 비극일 뿐이야!”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본지 온라인에 정기적으로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