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출신의 의회주의자 조 바이든이 미 대통령이 되면, 도널드 트럼프의 극우적 이기주의가 뿌려놓은 전 지구적인 포퓰리즘이 곧 종식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그칠 전망이다. 바이든 정권출범이후 지난달 17일 처음 가진 한미 외교장관회담, 18일의 한미 2+2회의(외교·국방장관)에서 쏟아낸 미국의 대중, 대북 메시지는 우리 정부의 지향과 ‘적잖은 괴리’를 보여준다. 세련된 외교적 수사에 담긴 그들의 발언을 곰곰 되새겨보면, 한반도 상황을 긴장 및 갈등 국면으로 끌고 갔던 조지 부시 2세의 네오콘 세력을 연상시킨다.
‘악의 축’이라는 극단적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대중 시각은 국제 민주주의 질서를 해치는 ‘악의 무리’다. 미국측은 북한과 중국에 대해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독재국가들로서 미국, 한국, 일본 등 민주주의 동맹들이 연합훈련·연습 등 양국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민주주의적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측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평화를 담보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측이 한반도 내 자국의 핵무장 해제를 배제한 ‘북의 비핵화’만 강조한 것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노선을 근본적으로 불신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중국문제에 대해서도 “홍콩, 대만, 신장, 티베트, 남중국해에서 벌이고 있는 중국의 강압적 태도를 지적하며, 중국의 반(反)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밝힌 것은 우리에게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른 트럼프의 편가르기를 연상시킨다. 인권문제를 놓고 보면, 역으로 중국이 반박하는 미국의 유색인종 차별은 너무 뿌리 깊어 미국 민주주의의 위상을 의심케 할 정도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유색인종에 대한 미 경찰들의 폭력과 살인행위, 백인들의 총기난사 등 증오범죄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은 동맹국 편가르기 압박카드로 상대국 기업들을 겁박하고, 수출·수입 규제 같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분파인 장사꾼 트럼프의 저돌적인 ‘솔직함’이 오히려 우리로서는 ‘플러스(+)’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이른바 인권 제국주의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지만, 한국 땅을 밟은 바이든 입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향후 한반도의 고단한 미래를 예측해본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바이든의 미국이 문재인의 남한을 비롯해 시진핑의 중국, 김정은의 북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스가 요시히데의 일본과 손을 마주 잡고 동북아 평화, 더 나아가 지구촌 평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지만, 바이든의 내각 인사들이 협상 상대국들에 대해 내뱉은 혐오의 발언들은 극단적 보수주의인 네오콘을 방불케 한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오는 4월 7일에 치러지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선을 앞두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의 유력 후보들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정상회담의 동력을 바탕으로, 남은 임기에 종전선언과 함께 획기적인 남북평화의 전기를 마련해주기를 기대하는 한편, 국제사회 속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 의지가 차기 대통령의 조건과 자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이든 시대의 네오콘 데자뷔를 목도하면서, 부시 정권의 네오콘과 흡사한 뉴라이트가 활개를 친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이 자꾸 평행이론의 악몽처럼 떠오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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