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Ⅰ 미션 로켓 발사가 실패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3일(현지시간) 아르테미스Ⅰ 미션 로켓인 '우주발사시스템'(SLS) 엔진 하단부에서 연료인 액체 수소가 누출되는 것을 감지해 카운트다운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은 NASA가 오는 5∼6일에 3차 시도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 한국경제신문(2022.9.4) -
달은 하늘에 떠 있는 우편배달부. 우편배달부는 색깔, 빛 그리고 소리의 은유로 다가온다. 자연을 안고 뜨며, 굴뚝을 향해 솟고, 그리고 바다를 비추며 머무른다. 자연~굴뚝~바다를 향한 달의 언어는 자아를 향해 움직이는 마음의 메타포로 꿈틀거린다. 노란 달~하얀 달로의 걷기 여행을 위한 뫼비우스의 띠는 푸른 달(Blue moon)로 뜨고 머무르며 이어진다.
내면의 / 자아 충족 / 동전과 / 달의 게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년~1965년)은 폴 고갱을 소재로 한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1919년》에서 달과 6펜스를 상징적으로 교차시킨다.
고갱과 닮은 듯 닮지 않은, 가상의 한 화가를 통해 내면의 자기를 찾아가는 열정과 광기 어린 여정을 보여준다. 찰스~에이미~스트로브와 블란치~아타, 그리고 ’나‘라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6펜스와 달의 시소게임을 들려준다. 6펜스가 상징하는 세속적 돈과 물질의 중심지인 런던의 주식 중개인으로서 일상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던 찰스 스트릭랜드. 그는 나이 40살이 되던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두 자식으로 대변되는 가족을 버린 채 무작정 화가가 되겠다며 파리로 향한다. 거기에서 만난 스트로브는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적 기질을 알아보고 호의를 보이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에게 정성을 쏟지만, 그의 부인인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며 행복했던 가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제 시소게임의 주도권은 6펜스에서 달로 기울어져 간다. 블란치의 음독 자살후 마르세유를 거쳐, 찰스는 타히티섬으로 이주하여 현지인 아타와 결혼하며 그의 예술가적 창작열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타히티 자연의 영감 넘치는 원형력과 현지인들의 무한한 생명력은 찰스의 나병과 대비되어 다가온다. 그는 고통스런 나날속에서도 아타의 헌신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함께 타히티의 자연과 삶을 화폭에 담는다. 찰스는 그의 오두막집 벽과 천장에 인생 최후의 걸작을 완성한 후, 그 그림을 모두 불태워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그 섬에서 죽는다. 그를 찾아 타히티에 온 화자인 ’나‘는 그 걸작을 발견한다.
화자인 ’나‘는 찰스의 아내인 에이미 의뢰로 파리에서 처음 만났던, 가족을 버리고 무작정 그림을 그리던 때의 그와 타히티에서 발견한 작품 속에서 드러난 그의 차이점을 통해 한 인간의 위대성에 대해 소설의 첫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그의 위대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대성이라 해서 때를 잘 만난 정치가나 성공한 군인을 수식하는, 그런 위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위대성은 그 사람의 지위에서 나오는 어떤 것이지 사람 자체가 가지는 특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찰스의 위대성과 때를 잘 만난 정치가나 성공한 군인의 위대성은 다르다. 찰스의 위대성은 자기 내면에 집중하여 진정한 자신을 캐어내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이 불타버린 걸작으로 밖에 남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외면의 가치관에 맞추어 그들의 시선에 맞게 조각하지 않고 스스로 캐내어 드러내었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자아를 꾸며주는 수식어라면, 그 특질은 다른 자아와 정체성을 구별하게 해주는 주체로서의 고유명사이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에서 달과 6펜스는 단어로써의 지위를 상실하고 그 특질만을 드러낸다. <달>과 <6펜스>는 무엇을 의미할까? 송무는 그의 번역서(민음사, 2013년)에서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라고 한다.
우리의 내면은 달과 6펜스를 이으며 하나하나 매듭을 지어간다. 내면의 자아 충족을 위한 우리의 매듭 짓기는 달과 6펜스 간의 줄다리기를 계속한다. 이상적이며 정신적인 가치 충족의 수단인 달과 실용적이며 물질적인 욕망 충족의 수단인 6펜스와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가는 게임. 창백하고 단단한 6펜스 동전은, 떠 있는 황금빛 노란 달을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의 내면을 향한 부등호는 달과 6펜스 중 어느 곳을 쳐다보고 있는 걸까?
외면의 / 양극화는 / 달을 향한 / 종이 비행
1919년에 태어난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6펜스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작은 공을 든 작가를 만난다. 발간 30주년을 맞은 2008년, 조세희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난장이(난쟁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 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라고 말한다. 달과 6펜스가 쳐다보던 부등호 게임은 공이 되어 이순(耳順)을 지나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높이와 넓이 그리고 각도를 달리하며 여전히 쏘아 올려진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작가의 연작 소설집 및 그 4번째 소설의 제목으로써 산업화에 따른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가난한 도시 빈민층인 한 가족(난쟁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난 탓에 배움을 중단한 2남 1녀)의 고통과 상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구성은 총 3부로 되어 있고, 각 부마다 서술자의 시각을 달리하며, 영수(큰아들), 영호(작은아들), 그리고 영희(막내딸)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도시 재개발 대상 지역인 낙원구 행복동에서 직접 지은 무허가 주택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가장인 백십칠 센티미터, 삼십이 킬로그램의 난쟁이 아버지는 평생 여섯 가지의 일(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그리고 가족 몰래 한 서커스)을 하며 행복을 추구하지만 새로운 노예의 틀과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가난에서 탈출하기 힘든 삶을 산다. 그의 자녀들 또한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은 피해 가지 못하며 무허가 주택의 철거로 받게 된 입주권을 둘러싼 철거민과 부동산업자와의 이해를 둘러싼 현실적 갈등은 고조된다. 아들마저 같은 노동자들의 배신으로 해고되고,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읽으며 달을 향한 작은 공을 통해 꿈과 소망을 꿈꾸던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작가는 도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또 다른 공간으로 이주해야 하는 난쟁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1970년대의 구조적 모순과 성장론적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중략)~“아버지는 어딜 가셨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불안해졌다. “애들아, 아버지를 찾아봐라.” 나는 아버지가 놓고 나간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중략)~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나는 책장을 덮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방죽 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 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년), 조세희 -
바로 한 걸음 앞에 걸려 있는 달은 종이비행기를 날린 아버지의 정신이며 이상이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은 종이비행기에 담긴 아버지의 물질이며 욕망이다. 달을 향한 종이비행기의 비상은 지식과 힘이 필요하다. 지식은 힘을 만들고 힘은 지식을 기른다. 그리고 지식은 또다시 힘으로 확장된다. 이 순환의 과정이 이상과 욕망을 향한 힘의 이원화를 더욱 굳건하게 하고 다양한 정신과 물질 추구간의 관계를 서열화한다. 서열화는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희소가치 간 복합적 위치와 특질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에 따라 지식~힘~지식의 순환적 편중도가 심해지면 6펜스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큰 공과 작은 공의 양극화 게임으로 더욱 심하게 뒤틀려간다. ”~(중략)~.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후략)~.“ 시간을 외면하며 외연을 확대해 온 달과 6펜스의 게임은 달을 향한 종이비행기의 소리 없는 비상을 통한 소수자의 외침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산층을 포함한 다수자의 외침까지 아우르며 양극화의 높이와 넓이를 키우며 더 먼 거리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간다. 6펜스와 작은 공을 통해 물질문명을 발전시켰던 굴뚝과 종이비행기는 주름진 이기심과 경쟁으로 변하여 더 큰 공을 향해 돌진한다.
해 질 무렵 도시의 영혼 같은 굴뚝은, 솟아 있는 창백하고 하얀 달을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의 외면을 향한 부등호는 달과 굴뚝 중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옥수수 / 검정 나비의 / 푸른 달을 / 향해 나네
달과 가장 친밀한 부족 집단인 인디언들은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소재로 하여 1년 12달의 명칭을 정한다. 이에 따르면 9월은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이며 검정 나비의 달이다. 9월의 달은 옥수수와 검정 나비로 떠오른다. 옥수수는 물질로써의 6펜스, 검정 나비는 죽음과 환생한 영혼으로써의 작은 공과 이어지며 바다를 비춘다. 노란 꽃밭에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거리는 감청색의 바다, 그 바다로 쏟아져 내리는 푸른 달빛. 파란 바다에 비친 9월의 달은 노란 달~하얀 달 그리고 푸른 달(Blue moon)이다.
《달과 6펜스》는 황금빛 물질을 나타내는 노란 달~《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도시 빈민층의 절망과 죽음을 통한 인간성 상실과 부재를 나타내는 하얀 달. 이제 우리는 노란 달~하얀 달을 거치며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푸른 달을 향해 걷는다. 푸른 달은 이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푸른색의 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한 절기(3개월)에 4회 뜨는 보름달 중 3번째 달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 그 두 번째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격년에 한두 번 정도 일어나는 보름달에 관한 서사로써, 아주 드문 자연 현상이다.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는 위상 수학적인 곡면으로,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2차원 도형으로써, 연작 소설집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 번째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뫼비우스 띠는 어느 지점에서 띠의 중심을 따라 이동하면 출발한 곳과 반대 면에 도달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계속 나아가면 두 바퀴를 돌아 처음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연속성에 의해 뫼비우스 띠는 단일 경계를 가지게 된다.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Artemis)’는 미국이 지난 1969년에 추진했던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약 50여 년 만에 진행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으로써, 지난 토요일(9월 3일) 로켓 발사 재도전을 앞두고 엔진 연료 누출 결함으로 연기되어 재도전을 기다린다. 마치 노란 달~하얀 달의 단계를 지나 푸른 달을 기다리는 6펜스와 난쟁이의 뫼비우스의 띠 걷기 여정과 동행하려고 하는 듯하다. 푸른 달을 향한 <Fly Me to the Moon>의 노래를 다 함께 부르며 그 꿈과 희망을 나눈다.
”Fly Me to the moon(저 달로 날아가게 해주세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목성과 화성의 봄은 어떤지 보게 해주세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달리 말하자면, 내 손을 잡아주세요)/ In other words, baby kiss me(그대여, 내게 입 맞춰 주세요)// Fill my heart with song(내 마음과 영혼까지도 노래로 가득 채워)/ And let me sing forevermore(영원히 노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내가 애타게 그리워하고 동경하며 찬미하는 건 당신뿐이에요)/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달리 말하자면, 부디 진실로 대해 주세요)/ In other words, I love you(당신을 사랑하니까)“
- <Fly Me to the Moon>(1964년), Frank Sinatra -
올 9월의 가을엔 살아 있는 은유를 찾는 자아로의 여행을 하며, 감청색 바다를 비추며 춤추는 푸른 달을 만나고 싶다. 비록 ‘Once in a blue moon’이 ‘아주 드물게’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없음보다는 있음이기에 둥글고 밝게 빛나는 옥수수와 검정 나비의 푸른 달을 안고 싶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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