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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K-콘텐츠
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K-콘텐츠
  • 이현재 | 영화평론가
  • 승인 2024.07.31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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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버려진, K-콘텐츠의 딜레마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  ⓒ 뉴스1

한류와 K-콘텐츠는 여러 해 동안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의 주요한 대외 성과로 소개되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정부 4년간 ‘한류’는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굳건히 했다”며 2020년 ‘한류협력위원회’와 ‘신한류 진흥정책 추진계획’을 통해 한류 산업을 고도화시켰다고 홍보했다.(1)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국제무대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커지면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며 문체부를 통해 ‘글로벌 문화 중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을 마련해 국제문화정책 지원체계를 혁신하겠다고 공표했다.(2)

정부가 나서서 문화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는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실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한류 정책의 성과로 뽑히는 분야는 크게 세 분야가 있다. 하나는 <BTS>, <블랙핑크> 등의 수많은 그룹을 배출해낸 음악산업 분야가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인지도는 낮지만 <PUBG>,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등의 걸작을 내놓은 게임산업 분야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으로 대변되는 영상산업 분야가 있다.

이 셋 중 ‘팬덤 산업’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일반적이며 대중적인 파급력을 생산한 분야는 영상산업 분야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영상산업 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의 진원에는 넷플릭스가 있다. 넷플릭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K-콘텐츠 성공 신화를 만든 바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K-콘텐츠를 은밀하게 장악한 정복자이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의 영상산업 시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던 배경은 단순히 넷플릭스의 자본력만으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다. 넷플릭스가 한국의 생산과 소비 채널 모두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소프트웨어 생태의 특징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넷플릭스의 플랫폼 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생태를 바탕으로 한다.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기능이 아니거나 특출하게 뛰어난 품질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가격이 낮은 서비스로 빠르게 대체되는 특징이 있는 서비스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용자의 경로 의존성을 형성해 서비스 간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승자와 패자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는다. 독과점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라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생태에 최적화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시장 독점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는 넷플릭스의 독점 전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는커녕, 당장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넷플릭스를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제작비 인플레를 불러들인 콘텐츠 버블

넷플릭스가 성공적인 독점 전략을 구사하며 투자금을 늘려나갈수록 한국의 영상산업 시장은 과열을 피하지 못했고, 시장의 자정력과 자생력을 잃어갔다. 창작자에게 최고의 자유를 부여하겠다는 넷플릭스의 투자 정책은 영상산업의 생산자와 공급자들에게 매력적인 미끼가 아닐 수 없었다.

최고의 자본을 줄 테니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달라는 넷플릭스의 미끼를 물기 위해 수많은 영상산업 생산자들이 달려들었고, 미끼를 문 창작자들은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최고의 성과’를 위해 넷플릭스의 압도적인 자본을 자기 것인 양 마음껏 휘둘렀다. 이 공모의 장에는 프로덕션들의 탐욕 또한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제도의 한계를 벗어난 자본은 압도적인 협상력을 발휘하지만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인플레이션은 스타뿐만이 아니라 스탭들 전반에 해당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제작비 상승을 불러 일으켰다. SKT의 Wavve, CJ ENM의 TVING 등 국내 OTT 서비스 사업자들도 뒤늦게 콘텐츠 수급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규모 자체가 다른 넷플릭스의 자본력을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내 OTT들이 수급 경쟁에서 밀리며 콘텐츠 생산을 감산하는 사이, 넷플릭스는 자연스럽게 한국 영상산업의 소비와 생산 채널을 모두 장악했다.

이제 한국 영상산업은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유통 플랫폼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뿌리에는 K-콘텐츠라는 성공 신화의 이면에 가려진 위험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그간 개선되지 못했던 영상산업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상산업 생애주기의 특성상 스태프들은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된다. 이는 기업이 제공하는 비가시적 인프라에서 제외된다는 의미이며, 멀게는 평판을 포함한 사회적 압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태프에 대한 정규 임금이 정해지지 않아 임금의 상한선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과열에 쉽게 노출된다.

정리되지 않은 한국 영상산업 내 스태프들의 처우는 넷플릭스 이전에도 꾸준히 지적되어왔던 사안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지금의 윤석열 정부도 한국 영상산업의 성과가 정책적인 수혜의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가장 취약한 부분은 시장의 몫이라며 그 책임을 방기해왔고, 여전히 방기하는 중이다.

오히려 한국 영상산업의 취약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태프들을 꾸준히 착취해온 대기업의 몫으로 남아 이런저런 방법으로 돌려막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K-콘텐츠라는 브랜드 뒤로 무능을 감추는 사이, CJ ENM을 비롯한 대기업은 한국 영상산업의 가해자이자 해결사인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딜레마에 빠진 K-콘텐츠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한국 영상산업 생태계는 큰 딜레마에 빠졌다. 매체 생태계의 건전함을 위해 유지되어야 할 다양성 확보에 큰 위기가 온 것이다. 무엇보다 발 빠른 자본은 구시대의 매체를 빠르게 폐기처분 해나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21세기의 공간을 창출했다.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감상 환경을 제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공간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영화관이라는 20세기의 공간에 근본적인 위기를 불러들였다. 공간에 갈 수 없으니 수익이 창출될 수 없었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게 된 공간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잃어갔으며, 자본주의적 가치를 잃은 공간은 장소의 의의를 상실해갔다.

영화관이 장소의 의의를 상실해가는 사이, 영상산업은 자신 생산품을 공급할 채널을 하나 잃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에서 영화관을 방문한 관객 수는 총 3,730만 명이다. 그리고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범죄도시4>, <파묘>)가 나왔다.

문제는 그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가 상반기 총 관객수의 60%을 넘게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상산업의 큰 기둥 중 하나인 영화 산업의 쇠퇴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행히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콘텐츠는 세계인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영화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넷플릭스는 높아져가는 한국의 콘텐츠 생산 단가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대체할만한 또다른 콘텐츠 생산국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지난 6월 넷플릭스는 인도네시아 페이몬트 자카르타 호텔에서 아시아 태평양(APAC)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동남아시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늘려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인도네시아의 <Cigarette Girl>과 태국의 <Hunger> 등 동남아시아에서 현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 시장의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K-콘텐츠는 단순히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도 그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의 대외적인 성공이 정부의 무능을 가리는 사이에 K-콘텐츠는 이제 딜레마에 빠졌다. 넷플릭스라는 콘텐츠 유통 공룡이 K-콘텐츠 성공 신화의 바탕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넷플릭스는 한국 영상산업의 가장 큰 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정부와 현 정부 모두 K-콘텐츠라는 국가적 브랜드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었고,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숙고해봐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K-콘텐츠의 편이 아니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콘텐츠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1) “[문재인정부 4년] 문화강국 실현, 코로나 팬데미 속에서도 한류는 더욱 빛났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1.05.17.
(2) “케이-컬처 확산 위해 ‘코리아시즌’ 확대…한류 비즈니스센터도 신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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