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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그리고 능력주의
자유, 평등, 그리고 능력주의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6.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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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ou La Mort.” 

‘자유, 평등, 박애, 그것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이 과격한 문구가 프랑스의 국가적 이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죽음’ 부분은 너무 과격하다고 해서 테르미도르 반동(1) 이후 없어졌지만, 프랑스인들은 실제로 전쟁이나 국가적 혼란기마다 죽음을 불사하며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지켜왔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 헌법에도 국가적 이념으로 적시된 만큼 익숙한 용어이지만, 많은 이들이 ‘박애’로 알고 있는 ‘Fraternité’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하게 여겨진다. 이는 영어로도 ‘Fraternity’여서 형제애, 동포애가 원래의 의미에 더 가까운 해석이다. 그런데도 이 단어가 ‘박애’라고 널리 알려진 것은 일본 번역의 영향 탓일 듯싶다.

사실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개념이다. 애초에 인간 사회는 평등하지 않으며 누구나 배타적 자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데, 이 두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융합시킬 제3의 개념이 박애로 알려진 ‘Fraternité’인 셈이다.

 

1789년의 ‘인권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유와 평등을 정의한다. 

 

-‘자유’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며,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동일한 권리를 누리는 것을 보장하는 한, 모든 남녀가 타고난 권리를 누림에 있어 그 어떤 제약도 없어야 한다.   

 

-‘평등’이란 법이 모든 사람에 대해, 그것이 보호이건 처벌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하며,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모든 시민들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고위 관직 및 공직, 일자리에 있어 동일한 기회를 가지며, 그들의 덕성과 재능 외에는 그 어떤 차별도 받아선 안 된다. 

 

‘인권선언’의 정치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자유는 혁명을 통해 귀족 특권체제로부터 벗어난 부르주아들이 부와 권력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표출한 ‘공세적 이념’이며, 평등은 프롤레타리아층이 당시 욕망의 화신으로 급부상한 부르주아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이념’이었던 셈이다. 그러다보니, 자유를 만끽하려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출신 배경과 능력을 발휘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에 맞서 허울뿐인 기회의 평등이 아닌, 실질적인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이에 맞서왔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사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다 안다. 외모건 신체적 능력이건, 그리고 지적능력에서 많은 차이가 나고, 무엇보다도 출신 가정환경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눠지는 불편한 상황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부와 권력을 쉽게 손에 쥐고, 어떤 사람은 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이처럼 양립하기 힘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념 사이에, 상대방을 형제자매로 수용하는 ‘박애’를 변증법적 접착제로 사용해 자유 지상주의자들과 평등 지상주의자들, 즉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균형을 도모하려 한 것이 바로 프랑스의 국가적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의 지향점인 셈이다. 

자유와 평등은 프랑스 고유의 국가적 이념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 조항에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는 수호천사로서의 국가의 책무를 적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역시 프랑스 국민들 이상으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자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펼쳐왔다. 조선말 봉건체제에 맞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라고 외친 동학혁명부터 시작해 3·1운동, 4·19혁명, 80년 광주민주화혁명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자이건 평등주의자이건, 좌파이건 우파이건 간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을 외쳤고, 평등의 가치를 부르짖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귀중한 목숨을 내던졌던가? 

불행하게도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인 국가 이념으로 여기지도, 애써 수호해야 할 절대 가치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의 개념 사이를 메우는 변증법적 접착제로서의 박애가 아닌, 똬리를 튼 능력주의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뒤흔들고 있다. 박애와 형제애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있는 여성·청년·지역 할당제, 지역인재 할당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수자의 대체군복무, 여성들의 군의무 면제 등은 능력주의 신봉자들에겐 공정치 못한 차별적 특혜로 인식되며, 문재인 정권의 정책들은 부당함의 상징으로 도마 위에 오른다. 오로지 개인적 능력을 통해서만 성공의 과실을 따야 그게 공정한 일이다! 급기야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구호까지 채택하며, 자신들의 공정성 홍보에 나섰지만, 능력주의는 곳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평소 ‘능력주의=공정함’을 설파한 하버드대 출신의 30대 중반 정치인이 제1야당의 지도자에 오르자, 이에 청와대는 25세의 대학 휴학생을 대통령비서실의 차관급(1급) 청년 비서관에 발탁하면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각 대학의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분노의 댓글이 넘쳐난다. 같은 또래의 청년들은 취업난에 수십 장의 입사원서를 쓰며 알바와 인턴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현실 속에서, 소통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집권세력의 시각은 자유주의자들의 ‘능력주의=공정함’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주의가 희망의 사다리로 호출한 능력마저도 연줄과 세습으로 맞닿아 있는 게 현실이다. 개인의 능력도 집안 배경과 사회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상식이다(제1야당 대표와 청와대 청년비서관의 예가 그러하다!). ‘공정함’을 동일시하는 능력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정의로 치환하며 자신의 성공은 능력에 따른 당연한 보상으로, 다른 이들의 실패는 개인 역량의 부족으로 돌린다. 능력주의의 승자는 자신의 지위를 재능과 노력으로 쟁취했다며 자신만만하고, 패자는 자신의 실패에 크나큰 상실감을 겪는다. 이런 식으로 능력주의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좌절감과 이질감을 남긴다.

모두가 기회의 평등과 함께, 똑같은 사회적 조건을 지니고 출발하는 ‘진정한 능력주의’가 실현되더라도 능력주의는 결코 공정함과 동일시 될 수 없다. 능력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한 줄로 세우는 피라미드식 위계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조화롭게 잇는 제3의 이념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오를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여야 한다. 내년 3월에 실시되는 대선을 9개월여 앞두고, 큰 꿈을 꾸는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를 뽑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할 문제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1) 프랑스혁명 때 과격한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혁명력) 9일의 쿠데타(1794년 7월 27일). 반(反)로베스피에르파는 당통파의 잔당 및 지롱드 평원파와 제휴해 로베스피에르, 생 쥐스트 등을 국민공회에서 단죄했다. 테르미도르 반동의 주동자들은 쿠데타가 성공하자 공안·보안 양 위원회를 해산하고, 통제경제를 해제해(1794년 12월), 자코뱅주의와 구제도적 왕정(앙시앵 레짐)의 양 세력에 대해 강력한 억압정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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