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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바이든 이후 미중러 3각관계와 한반도 上
[기획] 바이든 이후 미중러 3각관계와 한반도 上
  • 강태호 l 본지 편집위원, <한겨레> 전 외교전문기자
  • 승인 2022.03.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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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러 ‘세력 불균형’과 중러의 반 닉슨전략

70년대 초반 이래 지난 50여 년 동안 이른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포용’은 중러의 갈등 구도와 균열 속에서 미중러 3자 관계를 미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패권적 우위를 보장해주는 정책이자 수단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이러한 중국 포용의 대중 정책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 2기 행정부 때 내놓은 ‘아시아 중시전략(Pivot to Asia)’ 은 전략적 경쟁자로서의 중국 견제를 중심에 둔 정책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도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동맹이든 중국이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지만, 무역보복의 경제전쟁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미중관계는 미중의 ‘대결별(Great DeCoupling)’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그러나 이 미중의 대결별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이래 중러가 전략적 협력의 공간을 더욱 확대하고 굳건히 하도록 촉진시켰다. 바이든의 미국은 점점 더 미중러 3자의 힘의 구도에서 ‘세력 균형’의 주도적 지위가 아닌 ‘세력 불균형’의 불리한 수세적 지위로 내몰리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러 3자 관계에서 이러한 전략적 힘의 불균형을 개의치 않고 대중 대러 관계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대결구도를 계속하는 한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점점 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2022년 바이든 정부가 취임 1년을 맞이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국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중러의 미국에 대한 ‘반 닉슨전략’이다.

 

미중 관계의 ‘대결별’ (Great Decoupling)

코로나19로 심각한 지지율 하락을 보였던 트럼프는 2020년 내내 중국 때리기의 대선 전략을 추구했고,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대결과 갈등은 더욱 가속화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2020년 5월 14일 자)는 이런 미중 관계 악화가 대선 국면에서 나타난 현상이거나 트럼프 행정부에 그치는 현상이 아닌 것으로 규정했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포린 폴리시>는 이를 ‘Great DeCoupling(대결별)’으로 규정했다.

 

미중관계가 대결별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진단한 <포린 폴리시>, 2020년 5월 14일

미국 공화당의 보수 강경 주류에 있던 반공주의자 닉슨이 적대관계에 있던 공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의 문을 연 것은 아이러니지만, 오히려 그런 만큼 내부의 반발은 적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그는 미국 외교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담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자주국방 능력 강화와 미군 주둔 축소 등 동맹관계의 재조정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천명했다. 악화하고 있는 베트남 전쟁과 격화되고 있는 미국 내 반전운동, 원유가 급등의 중동쇼크 및 달러 위기 등 광범위한 미국의 지도력 약화, 중국과 소련의 국경분쟁 등이 그 배경이었다. 이 닉슨 독트린의 근간을 이루는 중국을 전략적으로 포용하는 세력균형론을 제공한 것이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은 아시아로부터의 미국의 후퇴가 아니라 중러의 갈등을 이용한 미국의 힘의 우위, 중국에 대한 개입을 통한 북베트남 견제 등 베트남전의 패배로부터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 전략이었다.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1971년 7월 9∼11일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키신저의 이 중국 여행은 마르코 폴로의 이름을 따서 <폴로>라는 암호명이 붙여졌다. 키신저는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회담을 내세워 파키스탄으로 가서 그곳에서 바로 베이징으로 떠나기로 했다. 키신저는 방문에 성공한다면 <유레카>라는 암호를 닉슨에게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키신저의 이 극비 외교는 1972년 2월 21일 역사적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길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반세기 전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큰 흐름을 대변해 온 <포린 폴리시(FP)>가 미중관계의 대결별을 선언한 것은 미중이 50년 가까이 협력을 확대해 왔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닉슨 시대 이후 지속된 이 ‘전략적 포용’(키신저의 세력균형론에 입각한 중러의 대결을 이용한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은 이미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아시아 중시전략 (Pivot to Asia)에 입각한 일본의 ‘보통 국가화’ 용인 그리고 중국의 견제 또는 포위를 위한 인도-퍼시픽 정책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모습

트럼프가 추진한 역닉슨(Reverse Nixon) 정책

트럼프 또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하려 했다. 다만 트럼프는 오바마의 정책을 모두 부정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2016년 7월 대선 후보로 <폭스뉴스>의 시사 토크쇼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수없이 들었는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했다”라고 주장하면서. 오바마와는 달리 러시아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선거 캠프 외교·안보팀의 수장이었으며, 뒤에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제프 세션스는 2016년 5월 18일 뉴욕 맨해튼에서 있은 트럼프와 키신저의 회동이 단순히 트럼프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언론 홍보용만이 아니라고 말했다.(2) 그는 “국가 방어와 외교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기본적 철학과 접근은 키신저식 모델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즉,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정통 보수주의를 이탈한 ‘신 고립주의’라기보다, 철저한 국익 중심의 ‘현실주의’라는 것이다.

이 키신저식 트럼프 외교를 ‘역닉슨(Reverse Nixon) 전략’이라고 한 것은 미국의 정치 분석가 그레그 로슨(Greg Lawson)이었다. 그는 “1970년대 초 급성장하는 소련, 제3세계 사회주의 확산, 베트남전의 패배 등 위기 속에서 닉슨은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을 받아들여 중국을 방문해 미중관계를 극적으로 반전시킴과 동시에 주한미군 등 아시아에서의 미군 철수와 방위 분담 등 동맹관계를 재편하는 ‘닉슨독트린’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오일쇼크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 미 달러위기 등에 대해 금본위제를 폐기하는 ‘닉슨쇼크’로 대응했는데 트럼프에게서 이와 유사한 행보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3)

트럼프는 이른바 이 ‘역닉슨 전략’을 보여주듯 ‘푸틴의 남자’로 불린 미국 최대 석유기업 엑슨모빌의 최고경영자인 렉스 틸러슨을 첫 국무장관으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친러시아 성향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장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발탁했다.

렉스 틸러슨을 ‘푸틴의 남자’로 표현한 것은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였다.(4) 엑손모빌에서만 41년간 일한 틸러슨은 전형적인 오일맨으로 푸틴 대통령과는 17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러시아 관료주의에 막혀 지지부진하던 170억 달러 규모의 사할린 원유 채굴 사업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의 도움으로 성사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틸러슨에게 러시아의 자원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우정 훈장’을 수여했다. 틸러슨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대응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경제제재에 반대해왔다. 따라서 틸러슨을 국무장관 자리에 앉힌 것은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틸러슨의 국무장관 발탁을 “트럼프가 러시아와 진정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걸 보여준 신호”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월 28일(현지시간) 전화통화를 통해 지난 3년의 ‘신냉전’을 끝내고 미-러 간 ‘신 시대’를 열기로 약속했다. 백악관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날 통화는 복구 필요성이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즘과 다른 중요한 관심사를 다루기 위해 양쪽이 신속하게 움직이길 희망했다”고 덧붙였다. 크렘린궁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그 국민들에게 공감하는 미국인들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행복과 번영의 소망을 전하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이전부터 터져 나왔던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스캔들은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트럼프-푸틴 협력의 발목을 잡았다. 트럼프의 외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게이트(5)의 첫 희생양이 됐다. 그는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 대사와 수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대러제재 해제를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부통령 마이크 펜스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43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단기간 재임한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이 ‘러시아 게이트’는 신임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의 위증 스캔들, 제임스 코미 FBI 국장 경질 등으로 이어지면서 트럼프 주니어, 재러드 쿠슈너 등 트럼프의 가족 등 핵심 인물 전반으로 비화했다. 무엇보다도 미 군부는 ‘전통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대러 불신 내지 러시아 위협론은 오바마 행정부 뿐만 아니라 공화 민주의 정파를 초월해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대러 강경론자들이며 오바마 정부 8년간 오히려 좀더 강력하게 러시아를 압박하지 않은 것을 비판해 왔다.(6)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새로운 대러 제재의 강화, 전략무기 증강을 둘러싼 갈등, 셰일 에너지 수출에서의 미러간 경쟁구도 등으로 미러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바이든의 외교정책-오바마와 트럼프의 사이에서

트럼프는 정파적 인식에서 벗어나 비즈니스맨의 감각에 맞는 세력균형의 전략적 인식을 받아들였으나, 정책으로 만들지 못했다. 실제 현실의 정책은 대러 대결구도는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 정책의 피해자들인 극우세력들의 포퓰리즘적 정서를 이용한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무역보복, 중국 ‘속죄양’ 삼기와 동맹무시 등 전통적인 외교로부터의 일탈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키신저의 세력균형론과는 다른 전통적인 패권국 외교로 돌아왔다. 동맹국과의 협력을 복원하고 인권 민주주의적 가치 등을 토대로 한 반중 연합전선(7)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 대량살상무기 테러 원유가격 급등 등 인플레와 같은 세계적인 현안에서는 중국 또는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관 집안 출신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의 측근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2013∼2015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2015∼2017년에는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정통관료라 할 수 있다. 그는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 3월3일 ‘미국인을 위한 외교정책’이란 주제의 연설을 통해 미국의 달라진 전략과 접근법과 함께 8대 외교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트럼프의) “지난 4년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단순히 (오바마 행정부 때) 멈췄던 지점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랬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오바마를 넘어선 외교정책을 강조한 것은 트럼프를 반대하고 오바마를 지지했던 미국의 전략가들이나 정책 전문가들조차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큰 점수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바마의 외교정책(2009-2016)은 큰 틀에서 보면 유럽에선 나토의 ‘동진정책’을 고수하고, 중동에서는 전쟁에는 발을 빼면서 최소한의 개입을 유지하고, 아시아에선 이른바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으로 중국을 견제해 패권을 유지하는 재균형 전략(Re-Balancing Strategy)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칠게 얘기하면 중동은 전쟁을 끝내지도, 발을 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란 터키 등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도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에서 보여지듯이 ‘대서양 동맹’의 균열을 막지 못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크림반도는 물론이고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의 기득권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러 제재를 유지하는 데도 급급했다.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에서는 베트남, 필리핀과의 공동전선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했다고 하지만 그 성과를 내기도 전에 물거품이 될 지경에 처했다. 한반도에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4번에 걸친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등 북핵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인내의 한계’만 보여줬다. 아베의 일본마저 이미 오바마의 반대에도 대러 제재를 넘어 푸틴과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러시아와의 협력에 나섰으며, 남중국해의 최전방에 섰던 필리핀은 터키가 친러 정책으로 180도 정책 전환을 보인 것처럼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등을 돌렸다. 오바마는 중동의 전략 요충인 시리아와, 남중국해 핵심 국가인 필리핀 모두에서 러시아,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교두보를 잃었다. 한미일 동맹에 묶어두려한 한국마저도 일본과의 협력 강화 보다는 그들이 보기엔 ‘불안한 미래’로 갔다. 미국의 전략가 키신저가 ‘오바마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트럼프가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던 이유도 이런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의 브링컨 국무장관이 제시한 8대 외교정책 과제는 새롭지 않다. 8대 과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경제위기 해결 △민주주의 회복, △효과적인 이민체제 마련 △동맹과 파트너와의 관계 활성화 △기후변화 대응 △신기술 선도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이었다. 트럼프가 훼손한 동맹관계 이민정책 기후변화 협약 등을 복원하겠다는 것이고 민주주의적 가치 회복을 포함해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외교정책 기조다. 역시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최측근이었다가 힐러리와 오바마의 재촉을 받아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 담당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블링컨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제이크 설리번이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합류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오바마의 정책기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설리번 보좌관이 대북 정책에 대해 표현한 것이지만 ‘트럼프와 오바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 연설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설명하는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건 외교정책의 필수 과제’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은 민주주의의 강점에 의구심을 심을 모든 기회를 엿보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적대국과 경쟁국들의 손에 놀아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중국 문제를 미국이 직면한 ‘21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시험’으로 규정했다. 역시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은 중국의 팽창에 맞서도록 국제사회를 집결시킬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8)

실제로 지난 1년여 바이든의 이런 외교정책은 홍콩 보안법 강화와 신장 웨이얼 자치구 등 인권 민족문제 그리고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 등 민주주의 가치 수호 등으로 중국 러시아와 갈등과 대결 양상을 보였다.

 

중러의 전략적 협력 강화와 미국 리더십의 한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링컨은 또 이 연설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경쟁적이고 또 협력적일 수 있지만, 적대적일 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뜻대로 어떤 때는 협력적이고 어떤 때는 적대적일 수가 있을까? 현실은 미국의 힘과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2022년 1월 27일 왕이 외교부장과 블링컨 국무장관의 전화회담은 외교적으로 중국이 미국에 모멸감 내지 좌절감을 안겨준 회담으로 기억될 것이다.(9) 이 전화 회담은 미국이 요청한 것이다. 미국은 이 회담 전날인 1월 26일 존 설리번 주러 미 대사를 통해 2021년 12월 15일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나토쪽에 각각 보낸 러시아 미국, 러시아 나토간 안전확보 조치에 관한 협정 문서 초안에 대한 답변을 전달했다. 미국의 답변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열어놓은 것으로 러시아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국무부의 극히 짧은 보도자료가 (이 전화 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공격이 제기하는 세계 안보와 경제적 위험을 강조하면서 긴장 완화와 외교만이 책임 있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듯이, 미국은 이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구하려 했다. 이 보도자료는 또한 두 장관이 “2021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화상 회담에서 논의했던 전략적 위험(strategic risk)’ 관리, 기후변화 등에 대한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두 장관의 전화 회담에 대한 미국의 발표는 이게 전부였다.

반면에 중국 외교부는 보란듯이 블링컨 장관의 발언 내용까지 포함해 매우 자세히 회담 내용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왕 부장은 “각 관련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정세 긴장을 자극하거나 위기를 조장하는 일을 하지 말기”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한 국가의 안보는 다른 국가의 안보를 훼손하는 것을 대가로 해서는 안 되며 지역의 안보는 군사 집단을 강화하거나 확장하는 것으로 보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21세기의 오늘날 각국은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협상을 통해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유럽 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는 중시되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조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위기를 부추기는 듯한 미국의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왕 부장은 또한 “올해가 ‘상하이 공보(上海公報∙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합의한 상하이 공동 커뮤니케)’를 발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중미가 상대방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의 전제이자 중미 간 미래의 평화공존을 보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새로운 정세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대국간 경쟁이 이 세계의 주제는 아니며 미국과 각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압박은 중국 국민을 더욱 단결시킬 뿐이고 대립은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급선무는 미국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방해하는 것을 멈추고 타이완 문제에서 불장난과 카드놀이를 중단하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각종 반중(反中) ‘소그룹’을 만드는 것을 멈추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미 국무부는 이런 회담 내용에 대해 사실상 침묵했기에 블링컨 장관이 어떻게 반박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중국쪽 외교부가 밝힌 내용을 보면 블링컨 장관은 “미중은 이익이 겹치는 부분도 있고 이견차도 있다. 미국은 책임지는 자세로 이견을 통제할 것”이라며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미국 선수들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을 응원할 것이라며 중국 국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것으로 돼 있다.

미국이 어떻게 보든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과거의 그들이 아니었다. 어찌보면 미국이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 보니,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술 표준과 통상 규칙을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춘 기술 강국으로 거듭나 있었다. 러시아도 소련 해체 뒤 만신창이였던 러시아는 더 이상 아니다. 체첸 조지아(그루지야) 전쟁을 거쳐 크림반도 합병과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준 대국으로서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가스 석유 등 자원 강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이란 인도 파키스탄을 비롯해 과거 소연방체제 아래에 편입돼 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유라시아 경제연합 등)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 이상 미국의 압력(제재)과 요구에 개의치 않고 이른바 ‘마이웨이’를 보여줬다. 중러는 2011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던 두나라 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의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편입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2014년 5월엔 두 정상이 400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산 천연가스(38 bcm=380억 입방미터)를 30년간 도입하는 세기의 빅딜(시베리아의 힘 1 가스관 프로젝트)을 비롯해 석유화학, 고속철, 중형 항공기, 원자력 발전 등 거대 협력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특히 2015년 5월 중국과 러시아는 시진핑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과 푸틴의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서로 연계해 협력하기로 결정하는 등 우호적인 정치적 관계를 전면적이고 심화된 실질적 협력 관계로 전환해 왔다. 또한 중·러는 북핵 문제와 사드 문제, 시리아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요 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2020년 7월 1일엔 중국이 전 세계적 반발 속에 ‘홍콩판 국가 보안법’(홍콩 보안법) 발효를 강행했으며 같은 날, 러시아는 국민투표를 치러 푸틴 대통령이 2036년까지 30년 이상 집권할 길을 열어주는 헌법 개정안을 78%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시 주석 또한 홍콩에 대한 보안법 강행과 함께 이미 2018년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 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나아가 시진핑 주석은 그 직후인 7월 8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홍콩보안법에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에 맞서 다자주의를 수호하기를 원한다”며 “양국이 서로 굳건히 지지하면서 외부의 간섭에 단호히 반대하자"고 제안했으며,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도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을 환영하면서 "중국 주권을 훼손하는 어떤 도발 행위도 반대한다”고 동의했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 죌릭(Robert Zoelick 옆 사진) 전 세계은행 총재는 중국과의 ‘대결별’ 정책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10) 그건 ‘중국(러시아)의 협력 없는 미국 리더쉽의 한계’다. 그는 중국과의 협력(세계의 공장)에 바탕해 미국 등 선진국들이 성장을 이뤄온 과거와 같은 세계화는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미국 내의 대중 결별 정책의 흐름이 미국의 지도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선 그는 ‘중국의 협력 없는 세계는 이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닉슨이 중국을 전략적으로 포용한 것도 미국의 힘만으로는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결별한다는 게 본질적으로 (미국이 기대하고 있듯이) 중국의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은 그냥 미국이 요구하는 질서에 덜 신경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죌릭은 “‘중국과의 갈라서기’는 코로나19 시대의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만약 또 다른 팬데믹이나, 환경이나 금융 문제, 이란이나 북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중국과 (정상) 작동하는 관계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글·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한겨레 평화연구소장


(1) “The Great Decoupling” <Foreign Policy>, 2020년 5월 14일.
(2) <폭스뉴스>와의 인터뷰. 2016년 5월 22일.
(3) 미 정치 전문지 <더힐> 기고문 2016년 12월 3일. 이정훈 국제팀장, “트럼프의 대외정책, 제2의 닉슨 독트린”, 현장 언론 <민플러스> 2016년 12월 20일.
(4) 오언 매튜스(Owen Matthews) “트럼프가 주목한 푸틴의 남자”, <뉴스위크> 한국판 2016년 12월 26일.
(5) 러시아 게이트 스캔들의 기원은 ‘공모’였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어떤 식으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6년 대선을 조종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공모했다는 주장이 첫 출발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뮬러 특별 검사는 러시아 정부와 공모 또는 결탁한 혐의로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그의 특검 보고서는 2019년 3월 “수사 결과 최종적으로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이 대선에 개입할 목적으로 러시아 정부와 공모 또는 결탁했다는 혐의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6)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트럼프 당선과 미러관계 변화 전망”, <정책 브리핑>, 2016년 12월 13일.
(7) 미국·영국·호주가 2021년 9월 창설한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든 4자(일본·호주·인도 포함) 안보 협의체 '쿼드'(Quad).
(8) 60여 년 만에 최연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직후인 정치전문매체 <Politco(폴리티코)>와의 회견, 2020년 11월 27일.
(9) “왕이 부장, 블링컨 美 국무장관과 전화통화”, 중국 <신화망> 2020년 1월 28일.
(10) “The Great Decoupling”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2020년 5월 14일.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그는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 2기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미국의 대중정책을 둘러싼 봉쇄냐 관여냐의 논쟁에서 ‘조건부 관여(’reponsible stake holder‘ 책임 있는 이해 상관자라는 개념)’를 제시해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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