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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백설공주-이상 그리고 모란
[최양국의 문화톡톡] 백설공주-이상 그리고 모란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2.05.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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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花王)이 처음 이 세상에 전래 되었을 때, 이를 향기로운 정원에 심고 비취색 장막을 둘러 보호하자 봄 내내 그 색깔의 고움을 발산하니 온갖 꽃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과 먼 곳 가리지 않고 아름답고 고운 꽃들이 달려와 찾아 뵙고 오직 자기가 여기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하략)~”

- 화왕계(花王戒), 설총 -

 화왕은 장미와 할미꽃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을 찾는다. 거울의 방은 천장의 화려한 프레스코화, 황금빛 내부 장식과 좌우 대칭형 대형 유리로 인해 빛으로 넘쳐나며,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져 있다. 화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말한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예쁘니?" 거울 속에서는 소리가 없다. 소리의 자아를 향한 문학 여행을 떠난다. 동화와 시 세계의 거울은 우리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거울 속 / 백설공주 / 자아는 / 타자 지향

 첫 여행지인 독일의 어느 성에서 그림(Grimm) 형제의 ”백설공주(Snow White)“를 만난다.

 

* 백설공주(Snow White), 그림형제(Brothers Grimm), Google
* 백설공주(Snow White), 그림형제(Brothers Grimm), Google

동화 속 백설공주의 계모인 왕비는 매우 아름답지만, 오만하고 질투가 심해서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마녀인 왕비에게는 마법의 거울이 있는데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그러자 거울은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요.”라고 대답한다. 순간 왕비는 행복감을 느낀다. 거울이 자신이 기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가 끊임없는 욕망의 선으로써, 그 굴곡진 역사적 현장을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 남기고 있듯이 거울의 한마디가 이어진다. “그러나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 곧 왕비는 분노에 휩싸인다. 거울이 자신이 얻고자 한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속 거울은 우리를 향해 두 가지 속성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이성적 판단을 위한 객관적 진실의 주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인식을 위한 주관적 자기만족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거울은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 자체로 반영하며, 보는 자의 신체적 한계에 따라 볼 수 없는 부분까지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거울은 올바른 깨달음과 그 확장을 향한 분별과 진실의 주체적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울은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 서로에게 교차적으로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물리적 시간, 공간 및 댄디즘(Dandyism)적 의지에 따라 진실을 왜곡한다. 이러한 거울을 통해 나타나는 모습은 모두 실제가 아니며 실제를 모방한 의도된 오류일 수 있다. 그래서 거울은 자기 인식의 확장을 향한 무분별과 거짓의 대상적 매개물이 되기도 한다.

왕비가 진실과 거짓의 유희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타자 지향적 아름다움이다. ‘자기 속 자아가 아닌 또 다른 자아“를 통해 ’보이는 모습‘ 보다는 ’보고 싶은 모습‘ 대로 듣고자 한다. 이는 비너스를 소재로 하는 다수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비너스 효과(Venus effect)’로 확장된다. 이는 17세기 바로크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년~1640년),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년~1660년) 등이 거울을 보는 비너스 그림을 그릴 때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고 싶은 대로’ 그리는 의도된 오류로 나타난다. 진실과 거짓이라는 거울의 양면적 상징성을 활용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보이고 싶은 거짓을 진실로 희화화하며, 새로운 우화를 만들어 내고 그려 내는 신 바로크(Baroque)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백설공주-거울‘은 타자적 자아를 향한 아름다움을 좇는다.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자아 DNA를 주입하고 자동변속기로 주행하며 시의 거울을 향해 떠난다.

 

이상(李箱)의 / 시(詩)속 자아 / 본연 자기 / 내재 지향

 시 세계 속 거울을 찾아 떠나온 여행. 이상(1910년~1937년)과 ”거울“을 보고 마주하며 자동차를 멈춘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 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중략)~/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 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오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하략)~”

- 거울(1933년), 이상 -

김흥규는 <한국의 현대시, 1996년>에서 “이 작품은 한 사람 내부의 자아와 자아 사이의 분열을 다루고 있다. 두 개의 자아란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와 그것을 의식하는 반성적 자아로서의 ’나‘이다. 이 두 자아는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맞부딪힌다. 이 경우 거울 밖에 있는 ’나‘가 현실적 자아이며,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반성적 자아에 해당된다.”고 한다. “거울” 속 거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아를 무언으로 드러낸다. 거울을 통한 자기 인식에 대한 성찰은 대상(me)을 향한 타자적 자아를 떠나, 주체(I)를 향한 내재적 자아로 향하게 한다. 내재적 자아는 제도와 규칙을 내면화하며 주어진 사회 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며 성장해 가는 사회화와는 반대 주로를 걷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주체적 자아를 향한 개성화와 연결된다. 거울이 ’거꾸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거구루‘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거울을 통한 자아의 대칭적 양면성이 대조를 이루며 다가온다. 현실적 자아인 ’거울 밖의 나‘와 자의식적 반성적 자아인 ’거울 속의 나‘는 행간의 띄어쓰기 없는 것과 같이, 자아의 연결 또는 영원한 혼재로써의 자아의 정체성 없음을 경계하며 응시한다. 거울은 자아를 향한 단절과 소통의 이중성을 함의하며 ‘주체적 자아’(I)와 ‘대상적 자아’(me)의 유기적 통합을 통한 개인과 자아, 그리고 자아와 세상과의 통합과 공존 과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거울효과(Mirror Effect)'. 내 앞에 있는 상대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내가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면 나에게 친근감을 느껴 더욱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거울의 단절과 소통이라는 이중성이 잘못된 거울효과로 빛나며, 우리의 자아를 투시하며 다가온다. 우리는 물질 DNA(DATA-NETWORK-AI)의 팬옵티콘(Panopticon)화에 동조하며 신 빅브라더(Big Brother)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 잘못된 거울(The False Mirror, 1928년), 르네 마그리트(R.Magritte), Google
* 잘못된 거울(The False Mirror, 1928년), 르네 마그리트(R.Magritte), Google

“이상-거울”은 내재적 자아를 향한 본연의 자기를 좇도록 한다. 꽃비가 소리 없이 흩날린다. 자아 RNA를 주입하고 수동변속기로 주행하며 모란의 거울을 찾아간다.

 

모란은 / 우리 존재의 / 거울 같은 / 매개체네

 소리의 자아를 찾아온 남도 여행길에 김영랑(1903년~1950년)을 만난다. 영랑은 삼백 예순 날 섭섭해하면서도 모란을 피워 낸다.

 

* 김영랑 생가 앞 모란(2022년)
* 김영랑 생가 앞 모란(2022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중략)~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1934년),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 버린 뒤의 ‘절망감’이라는 이중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문학파를 대표하는 서정시이다. 이에 대해 김재홍은 <한국 현대 시인 연구, 1986년>에서 ”~(전략)~.하지만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시가 생각하는 시, 즉 존재론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중략)~.시 내부에서 화자는 모란이 개화하는 ‘찬란한 봄’을 기다리지만 그 순간은 낙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슬픔의 봄’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상대적인 원리를 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삶의 양상은, 생에 대한 인식을 하강적·부정적으로 이끈다. 모란의 낙화는 생의 존재가 가지는 숙명적 한계이지만 여기에 절망만이 머무르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시는 생의 양면성·모순성·비극성을 투시함으로써 존재의 원상을 발견하고, 그 근원적 모순성과 비극성을 뛰어넘으려는 ‘초극의 시’ 또는 ‘존재론의 시’로 이해될 수 있다.~(하략)~“라고 하며 존재론적 시로써의 의미를 부각한다.

남도의 푸석거리는 가뭄을 뒤로 하고 비가 내린다. 아침나절 빗살이 퍼지며 세상이 납작 엎드려 온다. 빨간 장미와 하얀 할미꽃이 나름의 키로 순서를 정하고 모란을 알현하며 흔들거린다. 모란의 꽃이 그 원형의 무게를 견디어 내며 하늘을 바라본다. 모란은 우리들 존재의 타자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를 향한 매개체로써의 거울로 열려 있다. 모란이 떨어지면 우리들 자아를 위한 거울 여행도, 시인처럼 삼백 예순 날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들 모란이 욕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지 않길 바라며 설총에게 방문 편지를 띄운다. 진실과 거짓을 향한 또 다른 5년의 유희가 시작되는 5월의 어느 날, 설총의 얘기 소리가 모란의 향기처럼 들려 온다. 화왕(花王, 모란)은 가인(佳人, 장미)과 백두옹(白頭翁, 할미꽃)과 함께 거울의 방을 찾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되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진실하니?" 거울 속에서 소리가 난다. 뚝뚝.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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