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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아름다움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 <러브 온 더 스펙트럼Love on the Spectrum>
[이주라의 문화톡톡] 아름다움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 <러브 온 더 스펙트럼Love on the Spectrum>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2.05.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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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스펙트럼Love on the Spectrum>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을 조명한 리얼리티쇼이다. 호주의 제작사인 노던픽쳐스(nothern pictures)가 만들었으며, 2019년에 ABC에서 방영된 이후 2020년 7월에 넷플릭스에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시즌2까지 제작되었다. 시즌2는 2021년 5월에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2022년 5월 18일에는 미국판 <러브 온 더 스펙트럼 U.S.>도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Love on the SpectrumⒸNetflix
Love on the SpectrumⒸNetflix

자폐 스펙트럼은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 발달 장애의 한 범주이다. 고기능 자폐 장애인 경우에는 지적인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학습에서의 성취가 두드러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즉,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들을 만나고 사귀고 그 관계를 지속해 내는 것이 어렵다.

애초에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관계 맺기의 최고 난도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관계 맺기, 즉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연애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겪는 연애와 데이트의 혼란스러운 과정은 우리가 겪는 그 경험과 명백하게 동일한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 찾기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유사하다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보편적 인간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특성과 손쉽게 동일화할 수는 없다. 그들은 명백히 신경 기능 및 발달에 있어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반추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감정 소통의 어려움이 어느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신경 발달에 ‘기능적’ 이상이 없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정 소통의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님으로 대표되는 주된 양육자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주변의 또래들과 상호 교류하면서, 주변 분위기 파악, 상대의 감정 읽기, 나를 넘어선 너에 대한 배려 등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성장 과정 속에서 이러한 감정 소통의 중요도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소통보다는 성취가 중심이 된 우리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지 못하니,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관계 진전을 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은 나의 감정이 너무 앞서서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어느 순간은 나의 감정을 너무 자제하는 바람에 기다리는 상대를 지치게 만든다. 혹은 나의 표현법이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다가가기도 해서 상대를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상대는 물론 나 또한 상처를 받으며 점점 감정을 표현하고 읽어내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친밀한 관계에만 접근하지만 않는다면, 공적인 공간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는, 인맥 관리의 매뉴얼을 하나에서 열까지 코칭해 주는 자기계발서의 지침을 따르기만 해도 기본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감정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상황을 알기 때문에, 감정 소통의 방법을 차근차근 배운다.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는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주인공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조디라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연애 코칭 전문가가 나온다. 그녀는 주인공들과 만나 데이트에서 상대방을 만났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 코칭의 장면을 보다 보면,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서, 우리에게는 상식과 같은 내용이라서, 너무 쉬워서 살짝 유치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저런 상식을 나는 과연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놀라운 의문이 드는 순간들이 생기는 것이다. 코칭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선생님이 주인공들에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항상 상대의 눈을 쳐다보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상대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모든 것을 맞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애의 기본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이 기본적 소통의 기법을 들으면서 이런 의문들이 드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가, 즉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하면 편안해 지는지 잘 파악하고 있는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상대의 외모, 직업, 문화적 취향에 대한 선호도 등에 대한 조건 목록 리스트는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상대가 어떤 품성, 성격, 특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관계 맺기의 과정에서 상대방을 바라봐 주고, 상대의 상태를 물어봐 주는가. 언제나 나 혼자 짐작하고 추측한 대로 상대의 마음을 해석해 버린 후 나만의 판단으로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열 받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을 보다 보면, 기능적 이상을 가지지 못한 우리가 감정 소통에 대한 배움에 소홀한 나머지, 오히려 우리의 감정 소통의 능력을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금쪽같은 내 새끼>나 <금쪽 상담소>와 같이 ‘금쪽 시리즈’를 통해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오은영 박사에 대한 열광이 한 놀라운 개인에 대한 팬덤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감정 표현과 분석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짜 상담소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TV프로그램과 유튜브를 나홀로 시청하면서 자기 분석을 해 내는 이 현상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지적 능력의 성취를 경제적 부로 전환시키는 능력주의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케이티와 로넌이 춤추는 장면
케이티와 로넌이 춤추는 장면

개인적으로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의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시즌2의 3화에 나왔던 로넌과 케이티의 데이트 장면이었다. 로넌은 케이티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케이티는 춤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로넌은 자신도 춤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실 자폐 스펙트럼에 익숙지 않은 시선으로 이들의 대화 상황을 보면, 그들의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아서, 정말 이 두 명이 춤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인지 잘 파악이 안 된다. 그런데 데이트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바닷가 옆 작은 광장에서 누군가 버스킹을 하며 음악 연주를 하고 있다. 그 음악을 듣고 케이티는 로넌에게 춤을 추자고 권한다. 조심스럽게 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 또한 그리 멋진 춤은 아니다. 그저 팔과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엉거주춤한 움직임이라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은 상대의 동작에 자신을 맞춰 가며 같은 춤을 춘다. 그리고 웃는다. 두 사람의 웃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능력 중심주의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새 사랑도 스펙이라 여겨, 상대의 외모와 조건과 능력을 내가 성취한 성과의 정도에 완벽하게 맞추려고 한다. 그렇게 점점 완벽함만을 추구하게 된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나도 완벽해야 하고, 내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 좋은 조건을 갖춘 이상 상대도 그 정도에 맞는 완벽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완벽함이 아님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도 부족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서로의 부족함을 함께 하는 것임을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을 통해 깨닫게 된다.

 

· 이주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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