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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애플TV+는 왜 <파친코>를 선택하였을까
[김민정의 문화톡톡] 애플TV+는 왜 <파친코>를 선택하였을까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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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친코 공식포스터
드라마 파친코 공식포스터

어떤 드라마는 방영되기 전부터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입소문이 나기도 한다. 애플 TV+가 제작한 드라마 <파친코>에 대한 이야기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가 OTT 양대 산맥으로 자리한 가운데 한참 늦은 후발주자로 나선 애플TV+가 자그마치 천억을 제작비로 투자한 작품, 그것이 바로 드라마 <파친코>다. 유튜브로 무료 공개한 첫 회는 일주일 만에 조회수 600만을 기록하며 OTT 통합 순위 1위를 차지하였다. 첫 회 시청률(혹은 조회수)이 드라마에 대한 실제적인 평가가 아닌 앞으로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파친코>는 이미 그 존재만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등극한 셈이다.

 

<파친코>는 미드인가 한드인가

 

지난 봄. 드라마 <파친코>의 흥행 청신호에 제작사인 애플TV+ 못지않게 한국 시청자들도 한껏 고무된 듯하였다. <오징어 게임> 이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이 또 한 번 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행복한 예감 덕분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 시청자들이 <파친코>를 보는 내내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한국드라마인가 미국드라마인가. 선뜻 드라마의 국적을 규정짓기 어렵다.

드라마의 주요 출연진이 아카데미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과 K-로맨스의 대표 배우 이민호라는 점에서 ‘한드’에 마음이 가더라도 세계적인 OTT 기업 애플TV+가 직접 투자·제작·배급을 맡았다는 점에서 다시 ‘미드’로 마음이 기운다.

드라마 밖이 아닌 안을 살펴봐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는 여전히 어렵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가 원작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4대의 역경이 주요 스토리다. 드라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원작자와 원작의 공간적 배경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 넓게 걸쳐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한민족의 이민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온전히 한국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드라마 <파친코>는 작품 안팎과 관련해서 모두 경계에 있는 혹은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드라마에서 공간의 전환을 알리는 자막도 세 개의 언어로 나온다. 영어, 한자, 그리고 한국어. 한국어를 제일 뒤에 배치한 점에서 <파친코>는 한국 배우가 등장하고 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과 한국인만을 타겟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파친코>에 내재한 경계성은 국적의 불확실성이나 애매성이 아닌 국적의 무의미성 혹은 무국적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 부여라고 해석할 수 있다. <파친코>는 <파친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는 선언이다.

 

K-드라마와 브랜드 ‘K’

 

OTT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OTT는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여 대중들 앞에 내보낸다. 2018년 넷플릭스는 OTT계의 선두플랫폼답게 당시에는 다소 낯선 장르였던 인터랙티브 콘텐츠에 도전하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5 중 한 편인 <밴더스내치>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넷플릭스가 OTT 업계를 주도하는 리딩 브랜드임을 확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애플TV+는 왜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시대극을 자기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였을까. <파친코>는 한드인지 미드인지 명확히 규정짓긴 어렵지만 분명 대중들이 보기에는 ‘한국 드라마’로 인식할 소지가 다분하다. 즉, 애플TV+는 브랜드 ‘K’를 표방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여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공략한 셈이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신한류 열풍을 분석한 글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대부분 글은 사회적 이슈를 모티프로 활용하여 현실을 반영한 점을 한국 드라마의 성공 요인으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도 꾸준히 사회 불평등과 불공정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해왔다. 부조리한 현실 반영과 시대 담론을 한국 드라마 특유의 성격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한국 드라마의 임팩트가 유독 큰 것일까. 그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K-드라마 안 한국은 갑과 을의 수직적 세계관에 관한 비판적 현실 인식과 전복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가장 역동적으로 실현하는 나라다. 그리고 K-드라마 밖 한국은 일제 식민지, 한국 전쟁, 군부 독재 정권 등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경험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온 저항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가 세상을 구원하는 세계를 우리는 K-드라마의 안과 밖에서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동은 K-드라마를 보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전 세계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K’는 단순히 한국이란 나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K는 한국 안에 내재한 저항의 역사, 즉 현실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

 

한국의 ’K’에서 ‘K’의 한국으로

 

브랜드 ‘K’의 핵심은 아름답고 단단한 비극의 역사, 즉 저항의 역사다. 드라마 <파친코>가 그려낸 것 또한 한국의 ’K’가 아닌 ‘K’의 한국이다.

드라마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식민지 조선인이란 이유로 무시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무식하고 가난하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식민지 조선의 여자다.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한 조선인 한수가 일본 오사카가 얼마나 번화했는지 세계 지도를 그려가며 자랑하듯 말하자 선자는 ‘우리도 겁낼 필요가 없겠네요, 이길 수 있겠네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주눅 드는 기색 하나 없는 선자를 보고 한수는 감탄하듯 혼잣말을 한다.

“이 나라가 이렇게 멋진 줄 잊고 있었네.”

극 중 선자는 한 명의 조선인인 동시에 조선이란 작은 식민지 나라, 나아가 핍박받는 세상 모든 작은 것들의 은유로 그려진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조선을 핍박하는 일본 제국주의는 가해자 일본의 얼굴인 동시에 전 세계에 짙은 그늘을 만들었던 세계 제국주의의 얼굴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파친코>는 일본 강점기의 조선인 순자의 이야기이면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인간의 의지와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드라마 <파친코>를 보다 보면, 한국의 슬픔과 고통의 역사가 세계의 슬픔과 고통의 역사로 확장되고 전 세계가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가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드라마의 첫 대사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인의 자리에 나, 너, 그리고 그 누구를 대입해도 마음에 큰 파장이 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빈칸에 세계적인 기업 애플을 넣어도 작은 울림이 생겨난다. 넷플릭스 독과점 상태인 OTT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애플TV+의 미비한 존재감은 소수자와 다름없다. 마치 유럽과 미국이 걸었던 근대화의 길을 가장 늦게 뒤쫓은, 그래서 패권주의와 약육강식의 질서에 시달리며 소수자의 절박한 인정투쟁을 절감한 지난 세기의 한국이 연상되는 것, 그것 또한 애플TV+의 빅픽쳐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리하여 애플TV+가 선택한 것은 ‘한국 드라마’도 ‘파친코’도 아니다. 한국의 역사가 가진 문화 영향력, 바로 저항과 변화, 그리고 새로움으로 이어지는 ‘K’란 이름의 브랜드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에서 막강한 콘텐츠 장악력을 가진 일본 홍보를 포기하면서까지 드라마 <파친코> 제작을 감행했던 애플TV+의 자본주의적 진정성이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홍보용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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