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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구원의 문을 여는 진짜 열쇠는-<더 웨일>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구원의 문을 여는 진짜 열쇠는-<더 웨일>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4.17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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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집, 그곳엔 272kg에 달하는 거구의 남성 찰리(브렌든 프레이저)가 있다. 찰리는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폐쇄성은 그가 온라 대학 강의를 하면서도,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오프닝으로 잘 드러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웨일>은 그렇게 까맣게 처리된 온라인 강의 속 얼굴 화면으로 찰리의 삶을 단숨에 정의해 버린다. 그런데 이후 영화는 폐쇄성과 정반대되는 행위들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찰리의 집 문이 수차례 열리고, 여러 인물이 이 문을 통해 오간다. 먼저 그의 집 문이 벌컥 열리고 ‘새생명교회’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가 들어오고, 이후 간호사 리즈(홍 차우)와 찰리의 딸 엘리(세이디 싱크) 등이 연이어 들어온다. 이들은 “이대로라면 주말쯤엔 죽을 것이 뻔하다”라는 리즈의 얘기처럼 곧 죽음을 맞이할 찰리의 앞에 각각의 목적을 갖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렇게 영화는 찰리의 집 문에서 시작돼 문 앞에서 끝난다. 문 자체가 가진 개방성에도, 이 문을 통과해 찾아온 인물들과 찰리의 만남은 전혀 열려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문뿐 아니라 찰리의 부엌 창문을 통해 이 인물들이 오고 가는 그림자를 반복적으로 비춘다. 그러나 이 그림자들은 형체조차 모호하다. 그저 찰리의 주변을 부유하고 있는 망령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구원’이다. 토마스가 등장한 순간부터 영화에선 구원이란 단어 자체가 자주 언급되며, 인물들이 추구하는 바도 각자 자신의 구원이다. 그런데 구원을 향한 행위는 모두 자기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찰리는 결혼을 하고 8살 딸까지 뒀지만, 남성 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가족들을 떠났다. 하지만 제자는 새생명교회로부터 버림받고 먹지 않음을 택함으로써 죽어갔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찰리는 정반대의 과잉적 행위, 즉 지나친 폭식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찰리뿐만 아니다. 찰리를 찾아온 토마스는 고향에서 있었던 과거를 숨긴 채 선교로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 찰리의 딸 엘리는 오히려 과도한 반항과 악행으로 찰리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한다. 리즈는 세상을 떠난 자신의 오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찰리의 곁에 머무는 것으로 떨쳐내려 한다.

인물들의 자학과 같은 행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구원은 애초에 요원하고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자신 스스로는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구원도 하지 못한다. 인물들 사이에선 수많은 대화가 오가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각자의 견고한 생각의 장벽 안에 갇혀있을 뿐이다.

찰리는 그런 주변 인물들을 향해 자신이 역겹냐고 반복적으로 묻는다. 이 질문은 지나치게 자기비하적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도록 한다. 토마스 등은 그 질문을 듣고 이를 부정하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여기에 담긴 찰리의 의도는 따로 있다. 각자 포장이 아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도 반복해서 솔직함을 강조한다. 에세이를 쓸 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물론 찰리의 주변 인물들도 자신에게 또는 상대에게 끝까지 솔직하게 대하지 못한다. 이후에도 찰리의 집 문이 수차례 열리고 닫히지만, 그의 집은 막혀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고 인물들은 서로의 곁을 부유하는 망령에 머문다.
 

하지만 끝까지 찰리는 솔직함에 천착한다. 특히 엘리의 솔직함을 되찾아주려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날을 잔뜩 세우고 있는 엘리의 어긋난 허물을 벗겨줌으로써, 엘리도 자신도 구원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를 통해 마침내 문 앞에서 구원에 가까워진다. 소설 <모비 딕>에 대한 엘리의 에세이는 이들을 연결시켜주고 새롭게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가 된다. 이를 통해 영화의 클로징엔 문이 활짝 열리고, 빛이 그 문을 통해 쏟아진다. 그리고 찰리는 가까스로 빛 앞에 서게 된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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