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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생의 반환점에 서 있는 주희들에게-<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생의 반환점에 서 있는 주희들에게-<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2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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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회고를 해야할, 할 수 있는 적정 시점은 언제일까. 장건재 감독의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2023)40대 중반의 주희(김주령)에게 그 시간을 부여한다. 누군가에겐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는 나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는 나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게 영화는 인생의 반환점에 있는 수많은 주희들에게 멈춰서서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주희는 5시부터 7시 사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 의사로부터 유방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주희는 죽음의 가능성을 인지한다.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 오래 전 죽은 이모 역시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주희가 보내게 되는 2시간은 인위적인 회고의 시간이 아니다. 영화는 그 시간 동안 타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주희가 자연스럽게 회고할 수 있게 한다.

교수인 주희가 학교로 돌아와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은 주희의 과거를 직간접적으로 비추는 거울의 작은 조각이 된다. 주희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학생, 주희가 했던 과거 행사를 이어 맡게 돼 불평을 늘어놓는 다른 과 교수, 성적을 올려 달라는 학생,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학생 등 다양한 형태의 조각이 하나씩 생겨나고 맞춰진다.

 

또한 영화는 남편 호진(문호진)이 무대에 올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교차해 비추며, 주희의 삶을 관객이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주희와 호진은 관계가 악화되어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 연출을 하는 호진은 그 이야기를 연극에 올리려 한다. 연극에 오르는 배우들의 대사엔 주희와 호진이 나눴을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캐릭터의 감정에 대해 묻는 호진의 질문에 대한 배우들의 답변들을 듣다보면, 그동아 주희가 호진에게 내뱉었던 날카로운 말들 속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흑백으로 줄곧 전개되다, 후반에 컬러로 전환된다. 그리고 인생의 반환점에서 잊지 말고 다시 기억해야 할 순간을 컬러로 생생하게 담아낸다. 당신에게 그 순간은 언제, 어떤 장면이었는가. 영화는 주희를 통해 관객을 5시부터 7시까지로 위치시켜, 그 순간을 되새기게 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학회 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예술경영 석사, 영상학 박사.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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