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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절벽 위의 모녀와 벌거벗은 모성의 신화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절벽 위의 모녀와 벌거벗은 모성의 신화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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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같은 속옷, 다른 마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2022)는 같은 속옷을 입는 모녀의 이야기이다. 천 명만 넘어도 흥행인 독립영화에서 이 영화는 8,494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엄청난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2021년 47회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립스타상- 배우부문, 2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뉴 커런츠상,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 올해의 배우상, 왓챠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에 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발견-대상, 10회 무주산골영화제의 뉴비전상을 수상하였고, 2023년에 32회 부일영화상의 각본상, 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의 독립영화지원상, 영평 10선, 10회 들꽃영화상의 여우주연상, 1회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어워드의 작품상(국내), 배우상(국내), 21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의 올해의 비전상,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을 수상 등 다수의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엄마 수경을 맡은 양말복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엄마 수경(양말복)이 탄 차가 딸 이정(임지호)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 후 모녀의 갈등이 표출된다. 수경은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며 자동차의 결함을 주장하고, 이정은 자신을 죽이려고 고의적으로 사고를 냈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게 되면서 같은 속옷을 입지만 다른 마음을 보여주는 모녀의 갈등을 다룬다. 이정/수경, 이정/소희, 수경/종열, 수경/소라 등 갈등의 핵심에 이정/수경 모녀가 자리한다.

 

2. 이유 없는 학대와 관계의 이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전반부 내러티브는 이유 없는 학대와 관계의 이접을 나타낸다. 딸 이정은 엄마 수경의 이유 없는 폭언, 폭행과 살인 협박에 자동차 사건에서 반대 증언을 하게 되고,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을 원하지만 이접의 상태가 된다. 사적 갈등에서, 엄마 수경은 딸 이정을 폭행하고 자동차로 이정을 들이받아서 다치게 만들며, 블랙박스에 “죽어 버려”라는 말과 어린 시절 폭행 등으로 미루어 살인미수 의혹이 제기되고, 이정의 중고교 졸업식 불참 사실로 친구로부터 ‘불량 엄마’라는 비난을 듣는다. 공적 갈등에서, 이정은 병원 퇴원 후 부서 이동으로 동료 소희와 자리를 바꾸게 되면서 소희를 의식하게 되고, 의도적인 살인미수의 범인이 엄마라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할 때 소희의 공감하는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전반부에는 몇 가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정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속옷을 빨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와서 속옷을 벗어서 세면대에 던지고, 좌변기에 앉아 소변을 본 후 갑자기 이정이 빨고 있는 자기 속옷을 젖은 채로 입고 나간다. 이정이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수경의 자동차에 타는데 느닷없이 수경이 이정을 폭행하기 시작하고, 이정이 자동차 문을 열고 나가자 수경이 “죽어 버려”라고 욕을 하며 수경의 차가 이정을 향해 돌진한다. 수경은 친구들과 복분자를 마시며 ‘곱고 맑고 낭만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갑자기 집에 와서는 생리통 때문에 아파서 불을 켜놓고 자는 이정을 깨워서는 화를 내고는 이정의 생리통 약을 까먹은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수경은 무대 뒤(가정)의 모습과 무대 위(사회)의 모습에서 폭력적 면모와 쾌활한 면모라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수경은 애인, 친구 등 주변 인물에게는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딸 이정에게는 폭언과 폭행만 쏟아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보여준다. 수경은 생리통 때문에 아픈 이정에게 자신의 나쁜 점만 닮았다고 화를 내고, 빨리 죽으라는 말을 계속 내뱉으며, 자신의 힘든 삶에 대해서 이정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원한의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정이 계속해서 참다가 자동차 사건 이후로 엄마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이유 있는 항변으로 느껴진다. 이정은 차가 갑자기 급발진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발언, 블랙박스에 녹음된 수경이 내뱉는 “죽어 버려”라는 말, 평소의 폭언과 폭행 등으로 미루어 엄마 수경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차로 돌진했다고 확신한다. 이정이 동료들에게 사고를 낸 사람이 자신을 엄청 싫어하고 예전부터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사람이라고 하자, 동료들이 사이코라며 신고하라고 부추긴다. 이정이 그 사람이 엄마라고 밝히자, 동료들이 어색한 침묵 후 농담일 거라며 분위기를 마무리하고, 이때 소희만이 공감의 눈빛을 보낸다. 주인공은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을 원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욕망의 주체인 이정과 욕망의 대상인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의 관계는 연접이 아니라 이접의 형태를 띤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전반부 스타일은 하이앵글, 편집, 클로즈업, 눈빛을 통해 관심, 무관심, 관계, 자유, 공감을 표현한다. 수경이 베란다에서 이정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하이앵글의 시선을 통해 이정에 대한 관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정과 소희가 의자를 바꾸는 장면은 창문을 중심으로 교차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고정된 카메라로 앞으로의 관계를 암시한다. 수경과 종열이 수영장에서 노는 장면은 배영을 하는 수경의 모습을 미디엄숏에서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표현한다. 이정이 회식 자리에서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이정-소희의 마주치는 눈빛이 동료들의 썰렁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면서 이해와 공감의 시선을 강조한다.

 

3. 모녀의 적대관계와 조력자의 비조력자 변모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중반부 내러티브는 모녀의 적대관계와 조력자의 비조력자 변모를 드러낸다. 수경/이정 모녀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모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조력자에서 비조력자 혹은 적대자로 변모하면서 힘겨운 상황이 제시된다. 사적 갈등에서, 이정은 과거 무관심, 냉대, 폭언, 폭행 등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지만 수경이 거부하자 가출하고, 수경은 애인 종열의 집에서 종열의 딸 소라의 자위 기구를 비웃는 사건으로 소라와 관계가 악화되어 종열에게 사과를 요구받자 거부한다. 공적 갈등에서, 이정은 소희의 집을 찾아가 엄마의 악행을 털어놓고 소희의 조언을 듣게 되면서 유대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직 준비를 말하지 않고 동거 제안을 거부하는 소희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수경과 종열은 난폭함과 달콤함이라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수경은 이정에게는 ‘너 아니었으면 나도 진작에 잘 살았을 거야’라며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힘겨운 삶에 대해 이정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종열이 수경과 이정의 표정이 닮았다고 말하자 못생긴 애와 닮았냐며 짜증 낸다. 하지만 수경은 재혼을 앞두고 종열의 딸 소라의 엄마라는 말에 반박하고, 새집에 소라의 방을 두자는 종열의 말에 반대하며, 소라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소라를 위해 요리를 할 때 이정을 생각하며 불편해한다. 반면에, 종열은 수경에게 끊임없이 달콤한 찬사와 사랑을 쏟아낸다. 종열은 수경의 톡 쏘는 성격이 매력적이고, 예뻐서 계속 보고 싶고, 장금이보다 요리 솜씨가 좋으며, 새집을 보면서 수경이와 계속 살았던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종열은 두 집을 합치자고 새집을 함께 구하며 이정과는 마지막이라고 선을 그으며, 자신의 딸 소라의 좋은 엄마가 되도록 부드러운 말로 강요하는 등 따뜻한 말과 차가운 행동이라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수경은 딸과 애인, 즉 이정과 종열 혹은 친딸과 의붓딸, 즉 이정과 소라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며, 겉으로는 이정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이정을 내치지 못하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이정도 겉으로는 엄마 수경에게 순종하지만, 속으로는 저항한다. 이정은 수경에 대한 원망, 불만, 분노가 쌓이면 수경의 사진, 스카프, 옷을 가위로 자르며 분노를 표출한다. 소희가 왜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정은 돈이 없어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이정은 자신의 욕망, 즉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독립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의존적 면모를 보여준다. 이정과 수경은 둘 다 서로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원망하는 ‘원한의 인간’이면서,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집착의 인간’이다. 이정은 엄마의 무관심, 냉대, 폭언, 폭행을 비난하고, 수경은 이정으로 인한 생계 고민, 외로운 삶을 원망하는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적대관계를 보여준다. 두 인물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악화된다. 수경을 중심으로 애인 종열은 수경보다 소라를 더 챙겨 조력자에서 비조력자로 변모하고, 친구 애정은 수경에게 호감을 표한 남편 때문에 수경에게 싸구려, 사이코, 또라이라고 비난하면서 조력자에서 적대자로 변모한다. 이정을 중심으로 동료 소희는 공감과 유대감을 표현하지만 계속 엄마 이야기를 꺼내는 이정을 거부하며 비조력자가 되고, 다른 동료들은 소희를 감싸도는 이정을 비난하는 등 조력자에서 적대자로 변모한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중반부 스타일은 편집, 바스트숏과 옆모습, 바스트숏과 핸드헬드, 클로즈업, 풀숏과 시선을 통해 시간 경과, 공감과 유대, 흔들리는 관계, 거부, 타자화를 표현한다. 수경이 자신에게 반대 증언을 한 이정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장면은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하는 이정, 문을 열어주는 수경, 들어와서 수경을 껴안는 종열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편집을 통해 시간의 경과와 관객의 오인을 나타낸다. 소희가 이정에게 “마음대로 하게 두지 마세요”라고 조언하는 장면은 소희의 바스트숏, 이정의 옆얼굴 바스트숏을 교대로 보여주는 카메라로 공감, 유대, 의지를 표현한다. 이정이 수경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거부당하는 장면은 이정의 바스트숏, 수경의 바스트숏, 이정의 핸드헬드를 통해 흔들리는 관계를 표현한다. 이정이 소희에게 소희의 집에서 함께 동거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장면은 이불 안으로 집어넣는 소희의 손 클로즈업을 통해 동거 제안에 대한 거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종열이 수경에게 딸 소희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수경의 모습을 바라보는 종열의 풀숏과 시선을 통해 남성의 강요된 시선과 여성의 배제된 시선을 통해 타자화의 시선을 표현한다.

 

4. 수신자 주인공의 시련과 욕망 대상의 포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후반부 내러티브는 수신자 주인공의 시련과 욕망 대상의 포기를 보여준다. 수신자 주인공은 발신자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을 원하고 시련과 시험에 통과하여 적대관계에서 우호적 관계가 되지만, 발신자에게서 욕망의 대상을 획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가출한다. 사적 갈등에서, 이정은 종열·수경·소라의 졸업식 사진과 수경의 스카프를 가위로 자르고 좁혀지지 않는 관계에 실망하여 가출하고, 수경은 친구로부터 남편과의 사이를 의심받아 비난받고 소라와 화해하라는 종열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정의 가출 후 혼자 악기를 연주한다. 공적 갈등에서, 이정은 차장에게 혼나는 소희의 편을 들다가 동료들에게 비난받고 소희의 무단퇴사 소식에 방문하지만 무시당한다.

 

수경은 이정에게 욕심 많고 뒷바라지하기 힘들고 빨아먹을 것 다 빨아먹고 자신의 짜증, 잔소리, 욕은 안 들어준다고 원망하자, 이정은 그것을 다 나한테 쏟아내면 나는 어떡하냐며 힘들어한다. 수경은 이정과 있으면 피 말려 죽겠다고 말하자, 이정은 엄마가 항상 날 죽이려고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정이 차가 급발진하여 사고가 날 뻔하여 폐차시킨 후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혹을 풀게 된다. 이정이 엄마에게 왜 죽여버린다고 했냐고 질문하자, 엄마는 내가 죽여버린다고 한 게 한두 번이냐고 대답한다. 엄마가 이정에게 왜 담담하냐고 하자, 이정은 엄마가 죽여버린다고 한 게 한두 번이냐고 대답한다. 이러한 대화로 화해 국면에 접어들 때 이정이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자 수경은 침묵하고, 다음 날 이정은 침대에 돌아누워 있는 엄마를 보고는 집을 나선다.

 

이정이 원하는 엄마의 관심, 사과, 사랑을 줄 수 있는 발신자는 바로 엄마 수경이다. 수경은 이정에게 폭언, 폭행을 통해 시련을 주지만 이정은 인내하고, 나중에 자동차 사고 등 여러 가지 시험이 있지만 이정은 통과하며 마침내 화해 분위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정은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로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심은 풀었지만, 사과하라는 말에 거절하는 것, 사랑하는지 묻자 대답을 회피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영원히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해서 엄마로부터 욕망의 대상을 얻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수신자 주인공이 발신자와의 계약, 시련, 시험을 통과한 후 중도에서 수행을 포기하고 욕망이 좌절된다는 비관적 전망을 보여준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후반부 스타일은 롱숏, 바스트숏과 시선, 풀숏과 고정된 카메라, 클로즈업과 시선, 바스트숏과 롱숏을 통해 관찰자적 시선, 외면과 거부, 객관적 시선과 배신감, 관계의 회피, 거리두기를 표현한다. 이정이 자신에게 쌓인 것을 쏟아내면 자신은 어떡하냐고 묻자 수경이 딸 낳으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 수경의 롱숏, 이정의 미디엄숏을 대비시켜 수경에 대한 거리감과 관찰자적 시선을 표현한다. 이정이 수경에게 사과해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이정을 쳐다보지 않는 수경의 시선을 바스트숏으로 강조하면서 관계에 대한 외면과 거부를 표현한다. 수경이 종열과의 약속 장소에서 커플 코트를 입은 소라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풀숏의 고정된 카메라와 눈물을 글썽이는 수경의 클로즈업을 통해 애인에 대한 배신감을 객관적 시선으로 표현한다. 이정이 수경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자 수경이 대답하지 않는 장면에서 이정의 얼굴 클로즈업, 수경의 얼굴 클로즈업, 서로 마주 보는 시선과 침묵을 통해 관계에 대한 회피를 표현한다. 이정이 집을 나간 후 수경이 악기로 구슬픈 음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바스트숏에서 롱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 이정을 바라보는 고정된 카메라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한다.

 

5. 베란다와 속옷: 희망 없는 욕망의 포기와 일방적 감정 표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베란다 장면과 속옷 장면이다. 영화 전체에서 베란다 장면은 세 번 정도 인상 깊게 등장하며, 드러내지 못한 관심, 부재한 인물에 대한 연상, 욕망의 포기를 나타낸다. 우선, 전반부에 베란다에서 수경이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이정을 지켜본다. 수경은 바로 앞에 이정이 있을 때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증오의 대상처럼 폭언, 폭행을 퍼붓는다. 하지만, 수경은 이정이 멀리 보일 때 혹은 자신이 본능적으로 행동할 때 이정에게 관심을 보인다. 과거 졸업식 날에 참석하지 못하고 밤늦게 들어와 미안한 마음에 자는 이정을 깨워 사진을 찍던 날도 그러하다. 수경은 이정에게 잘해주지 못하지만, 이정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이정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잘해주지 못한다. 재혼할 예정인 종열의 딸 소라의 졸업식에서 소라의 친구들이 ‘엄마가 미인이다’라고 말하자 ‘엄마가 아니예요. 오늘 처음 봤어요.’라고 바로 부인한다. 이정의 졸업식에 못 갔기 때문에 소라의 졸업식에서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다음으로, 중반부에 재혼할 종열과 보러 간 새집의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경의 시선이다. 수경은 이정이 눈앞에 없지만 이정 때문에 재혼을 망설인다. 수경의 스카프가 떨어지면서 어딘가에 걸려 빠지지 않아서 끙끙대다가 결국 주저앉는 모습은 재혼에 대한 망설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반대로 이정은 수경의 스카프를 가위로 자름으로써 자신에게 냉대, 폭언, 폭행을 퍼붓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몰래 표출한다. 베란다에서 스카프로 이어지는 장면은 부재한 인물에 대한 연상작용을 보여준다. 수경은 이정에게는 집을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막상 이정이 떠난 후 혼자 서투른 음조로 악기를 연주하면서 상실의 슬픔을 달랜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 베란다에서 수경이 서 있던 자리에 이정이 서서 차키를 차가 없는 주차장으로 떨어뜨린다. 차는 이정과 엄마의 갈등이 표출되는 매체이며, 엄마의 무관심에 대한 상처와 소희의 거부에서 오는 상처를 함께 나타내며, 급발진으로 인한 폐차를 통해 엄마의 관심, 사랑, 돌봄이라는 희망 없는 욕망의 포기를 드러낸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제목에서도 등장하는 속옷 장면도 인상 깊게 세 번 반복된다. 전반부 첫 장면에서 수경이 화장실에 들어와 갑자기 세면대에서 속옷을 빠는 이정에게 팬티를 던지고, 좌변기에서 볼일을 본 후 빤 속옷을 다시 입고 나가면, 이정이 자신의 피 묻은 팬티를 바라본다. 중반부에서 이정은 소희에게 과거 첫 생리 때 엄마의 무관심, 냉대에 대해 고백하면서 생리가 묻은 팬티에 생리대를 채워주는 장면을 이야기한다. 후반부에서 이정은 집을 나온 후 속옷 가게에서 직원이 치수를 묻자 생각에 잠기면서 끝이 난다. 속옷에서 시작해서 속옷으로 끝이 난다. 속옷은 수경/이정 모녀에게 배려심 없는 만용, 일방적 감정 표출, 숨은 연결고리 순서로 의미의 변화를 나타낸다. 속옷은 이정과 수경을 이어주는 요소이면서 과거의 불쾌한 기억을 연상시키는 매개체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숨은 울분을 속으로 삭히는 딸과 사랑·관심을 속에 품고 있는 엄마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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