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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 24. 무용지물
[바람이 켠 촛불] - 24. 무용지물
  • 지속가능 바람
  • 승인 2016.12.2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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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국립극장에서 3·1절 기념행사를 마친 뒤 팽목항으로 내려가 세월호 참사 현장을 다녀왔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그 형체도 찾지 못하는 유가족들의 핏발선 눈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해감내 자욱한 항구 곳곳에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망자들의 온갖 아름답고 슬픈 사연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담한 심정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일찍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개인의 운명과 성스러운 실존적 삶이 관료들이 앉은 책상들과 서류더미 사이로 내던져지고 결정되어지는 관료주의의 거대한 성(城)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카프카의 뛰어난 상상력으로도 수백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폐기연도가 한참 지난 여객선 안에 갇힌 채 살려달라고 소리치다 그대로 수장되어 버린 그 무시무시한 묵시록적인 광경을 감히 상상해낼 순 없었을 것입니다.


그 무고한 피해자들은 오늘 합동분향소의 영정사진으로, 또는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호소문 속에 남아 있는데,


가해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가해자들의 맨 앞에는 자신이 이 사회를 집권하고 있다고, 아무도 자신의 무능한 통치에 반문을 제기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뒤틀리고 왜곡된 심사의 한 초라한 대통령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뒤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다른 가해자들은 마치 흐릿한 그림자처럼 이름도 얼굴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 얼굴 흐릿한 익명의 가해자들 중에 ‘나’도 끼어 있다는 사실을 모든 공직자들은 뼈아프게 자인해야만 합니다.


사고가 난 뒤 전에도 늘 그랬듯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부산하게 재점검하고 있습니다. 재난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정부는 재난방지청의 신설을 준비하고 있고, 각종의 안전에 관한 매뉴얼도 만들고자 합니다. 물론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시스템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2003.3.14. 이창동 前 문화관광부 장관 취임사 中,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 관련어를 4·16세월호참사 관련어로 각색
(원문주소: http://www.mcst.go.kr/usr/context/dataCourt/minAddressView.jsp?pSeq=370)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정윤하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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