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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미술 이야기] 기수어가 제주 바다에서 화백의 작업실로 뛰어올라온 이유
[안치용의 미술 이야기] 기수어가 제주 바다에서 화백의 작업실로 뛰어올라온 이유
  • 안치용
  • 승인 2023.09.0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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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안단테, 강창열 ‘절묘한 조화’ 9월 1~13일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안단테에서 열리고 있는 강창열 작가의 전시 절묘한 조화에서 만난 강 작가의 그림들 속 그 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시된 30개 작품 중에서 얼핏 3분의2 가량에서 특이한 점을 찾아냈다. 두 개가 찍힌 작품은 3개였다.

전시의 이름은 절묘한 조화이지만, 전시된 작품의 이름이 모두 열린 시간(OPEN TIME)’이어서 열린 시간을 전시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Chang-Yeol Kang. Open Time. Oil on canvas. 53*45cm

 

도자기처럼 보이는 흰빛에 가까운 물체의 한 가운데 자리해 특이한 점이 가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 그림은 마치 시간의 눈동자를 보여주는 듯하다. 도자기 형태의 은밀한, 혹은 구획된 중앙에 무심한 듯 쓸쓸하게 자리한 특이점은 외눈박이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두 눈을 부릅뜬 시간이 두려울 것이란 선입감을 강박하는 반면 외눈박이 시간은 슬픔과 서글서글함을 동시에 낯설게 분출한다. 특이점 옆의 물고기도 관람객에겐 외눈박이다. 저편의 눈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화폭의 관심사는 아니다. 저편의 눈은 저편 시간의 소관이다. 저편의 눈은 있는 듯 없는 듯 불확정성 속에서 외눈박이 시간의 특이점과 함께한다.

숭어인 듯 연어인 듯 이 물고기는 기수어로 보인다. 기수역에 살아가는, 담수와 해수 모두에서 살아가는 기수어는 대립의 지양과 갈등의 공존을 내포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간은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끝과 시작은 화석이 된다. 특이점은 빅뱅의 거점이다. 시간의 출발이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로 갈마든다.

시간의 도자기 병은, 빅뱅의 이 우주는 내부를 부유하는 기수어와 물질로 석화한 특이점 아래 리얼리티로 외관상 조용히, 실제로는 격렬히 타오르지만, 시간의 불꽃은 마개에 차단당한다. 정교한 병뚜껑인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물고기다. 민화에 나오는 물고기. 등으로 도자기 안의 시간이 삐져나오는 걸 막는다. 물고기의 눈이 또 다른 특이점 같다. 또 하나의 우주가 이 우주 경계 너머에서 펼쳐진 상황일까. 민화 물고기 위에서 다른 기수어와 다른 세계의 질긴 엉김이 밤바다의 파도처럼 잠결에 밀려든다.

특이점이 아닐 수 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두 개의 구멍, 즉 블랙홀과 화이트홀일까. 아니면 그저 두 개의 블랙홀. 이 그림은 유니버스 생성과 확장을 보여주는가 하면, 멀티버스의 발랄한 병존을 시사한다.

빅뱅을 바둑알처럼 던져넣은 이 그림에서 시간의 도저한 역사를 동학으로 보든 시간의 단면을 공간으로 보든, 그것은 관람객의 자유다. 예컨대 하늘로 넘쳐나는 바다의 무도함을 구름이 감춰둔다고 상상해도 좋다. 그런 상상에서도 점은 무도함의 고갱이다.

Chang-Yeol Kang. Open Time. Oil on canvas. 53*45cm

 

이번 전시 포스터에 들어간 이 그림의 이름 또한 열린 시간이다. 여기서도 특이점이 엄연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는다. 나비가 화폭을 압도한다. 위와 아래에 기수어와 민화 속 물고기가 각각 입지하며 대치한다. 특이점은 기수어의 차지다. 특이점이 만일 물고기라면 기수역에서 살아가는 게 타당하리라.

나비의 날개가 살짝 가려졌다. 오른쪽 아래 끝 날개는 바스러졌다. 어쩌면 바스러진 게 아니라 은닉된 것일 수 있다. 호접지몽의 그 나비가 거대하게 천상을 뒤덮자 구름이 몰려와 날개를 부식한다. 구름 아래 날개는 가루로 산화했을까, 아니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까. 보는 대로 보인다. 물아일체는 원래 물과 아의 분열을 전제한다. 특이점이 최초의 분열을 만든다. ‘열린 시간(OPEN TIME)’‘OPEN’이 어쩌면 동사일 수도 있겠다.

Chang-Yeol Kang. Open Time. Oil on canvas. 53*45cm

 

강 작가는 시간을 탐색하며 공간을 흩어버리고 그 비산을 신발 끈 묶듯 특정한다. 시공이 원래 하나인 데다 우리가 공간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에 시간이 익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간이 다층 공간의 옷을 입고 화폭에 정렬한다.

성석남 ab갤러리 관장은 공간에 갇혀 있는 형상으로 사물의 본질이 상징하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발언하고 더 나아가 그 위에 선 인간존재의 근원적 형상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 가능성을 자문한다고 강 작가의 작업을 평가한다.

강 작가는 공간의 고정관념을 해체해 시간의 흐름을 새롭게 구성해내며 그 흐름이 마침내 유려하게 숨쉬게 한다. 우리는 그 흐름에 올라타면 된다. 가끔 격류를 만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흐름의 주변 공간을 특이하게 소환하는 데 신경을 쓰느라 작가가 배를 전복시키는 일은 없으리라 믿어도 좋다. 작가는 이 흐름과 친하다.

 

고등학교 국어 국정교과서(창비사 발행)의 표지에 실린 그림은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 않았지만, 강 작가의 시간 탐색의 여정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 그림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기수어가 무리를 지어 헤엄을 친다. 이질적 공간의 합체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시간의 헤쳐모여가 더 본질적이다.

91~13일 열리는 이번 전시의 그림은 작가의 제주도 작업실에서 산출된 것들이다. 제주 바다를 무대로 한 그의 열린 시간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리지 않은 것을 그린다. 그리지 않은 것을 찾는 게 감상 포인트다.

Chang-Yeol Kang. Open Time. Oil on canvas. 72.7*60.6cm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평론가로 영화·미술·문학·정치·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크리티크M 발행인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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