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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앵그리 영 맨'은 피부를 팔아서 어떻게 자유를 얻었나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앵그리 영 맨'은 피부를 팔아서 어떻게 자유를 얻었나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10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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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영화리뷰) <피부를 판 남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피부를 판 남자>의 기승전결 중 ‘승’이 시작하는 대목에서 영화의 두 주인공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와 제프리(코엔 드 보우)가 처음으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이 문구를 떠올렸다. 대화는 제법 심오하고, 마무리가 힘 있다.

인간의 본질 같은 걸 논하던 두 사람은 샘이 “화난 젊은이(angry young man)”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본다. 샘이 사랑하는 여자 아비르(디아 리앤)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 벨기에에 있지만 레바논에 불법체류하는 시리아 난민인 샘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가기는커녕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재치있는 공방전으로 흐른다.

샘이 말한다. 괴물에게서 (아비르를) 구해 내어야 하는데 말[馬]이 없다고. 제프리가 답한다. 말이 아니라 양탄자가 필요한 게 아니냐고. 이어 그럼 “당신이 지니라도 되냐”고 묻고 제프리는 자신이 메피스토텔레스에 가깝다는 식으로 응답한다. 다시 “내 영혼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네) 등이 필요하다”고 받는다.

홍보자료는 “악마 같은 예술가에게 자신의 피부를 팔아 자유, 돈, 명예를 얻지만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평생 전시되는 ‘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은 웰메이드 아트 스릴러”로 <피부를 판 남자>를 소개한다. 많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악마 같은 예술가’라는 설명은 영화와 부합하지 않는다. 제프리가 일종의 메피스토텔레스 역할을 수행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에게 부여된 범주는 ‘악마’와는 다른 것이다. NPR은 이 영화를 두고 “자유, 돈, 예술, 국경, 단 4개 키워드로 완성된 미친 세계관”이라고 평했는데, 매우 적절하다.

샘은 돈, 예술, 국경이라는 한계를 넘어 사랑을 찾으려다가 좌초하고 다시 한번 세 개 키워드가 표상하는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포기한 자유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는다. 제프리는 돈, 예술, 국경을 활용하여 원하는 바를 얻고, 그 결과 샘은 자유를 잃는다. 샘이 자유를 되찾는 반전은 제프리를 내세운 수미상관과 맞물리는데, 제프리는 다시 한번 돈, 예술, 국경이란 키워드를 활용한다.

 

정치를 직접 다루지 않은 매우 정치적인 영화

클리셰가 적은 흥미로운 내러티브가 돋보인다. 우선 작품의 소재가 독특한데, 실제로 특이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와 프로듀서 필립 로기는 세계적인 예술가 빔 델보예가 팀이라는 사람의 등 피부에 타투를 작업하여 미술관에서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전시하고 사후에는 그의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는 계약을 맺은 이색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피부를 판 남자>를 만들었다. 빔 델보예와 팀에게서 영화화를 허락받았고, 두 사람은 카메오로 깜짝 출연했다.

영화는 실화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자유, 돈, 예술, 국경이란 4개 키워드 중 돈(자본)과 국경은 세계화와 관련한 말이다. 영화는 실화로 밑그림을 그리고는 세계화와 난민 문제를 예술과 사랑의 사건과 혼합하여 교묘하게 직조한다. 세계화는, 또 키워드로 돈은 당연히 자본주의와 연결된다. 지금 세계인에게 자본주의는 공기와 같아서 자본주의를 숨 쉬지 않고선 곧 질식하게 된다. 기이함이 두드러지는 얼핏 비정치적인 소재를 가장 첨예하고 보편적인 정치적인 풍자와 결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에 감독의 재능이 두드러진다. ‘미친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전혀 정색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또한 감독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튀니지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아프리카의 독창성과 유럽 영화의 예술성을 함께 갖춘 촉망받는 감독이다. 오디션을 통해 샘 배역을 거머쥔 야흐야 마하이니는 폭 넓은 연기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샘의 매니저 소라야 역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의 원숙한 모습은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의 하나이다.

 

메피스토텔레스 대 피그말리온

 

복선을 깐 대사가 많은데 관객의 기억에 남을 다음 대사가 대표적이지 싶다.

 

제프리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사랑하고 살아 숨 쉬길 원했던 예술가 '피그말리온' 알아요?"

샘 "그런데요?"

제프리 "우리는 정반대 얘기죠"

샘 "날 석상으로 만들고 싶나요?"

제프리 "아뇨, 능력도 없어요"

샘 "내가 죽었으면 해요?"

제프리 "인간은 다 죽죠"

 

사실 제프리는 언명과 달리 피그말리온에 가깝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사랑하고 살아 숨 쉬길 원했고 소망을 이루었다. 그는 작품을 구했고 샘을 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한편으론 샘의 방황을 부추기고 결과론으로 그의 구원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제프리는 메피스토텔레스와 닮았다. 피그말리온과 메피스토텔레스의 관점에 서면 이 영화가 꼭 ‘미친 세계관’을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고전적 세계관에 가깝다. 방황을 통해 인간이 인간이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죽었으면 해요?"와 "인간은 다 죽죠"라는 문답은 최종적인 반전의 중요한 복선이다.

말마따나 인간은 다 죽는다. 그러니 살아서 잘 살아야 할 텐데, ‘잘’이라는 게 정의하기 쉽지 않다. <피부를 판 남자>는 ‘잘’의 특이한 방법론을 기이한 서사를 통해 영화적으로 잘 형상화하였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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