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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쿠아맨, 헌터킬러, 쿠르스크의 ‘잠수함’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쿠아맨, 헌터킬러, 쿠르스크의 ‘잠수함’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1.21 09: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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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과 2019년 경계에서 연이어 본 5편 영화 중 3편의 영화(<아쿠아맨>,<헌터킬러>,<쿠르스크>)에서 ‘잠수함’이 등장하니 자연스레 나는 ‘잠수함’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나에게 ‘잠수함’은 케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K-19 위도우메이커>와 민병천 감독의 <유령> 사이에 놓인 잠수함 영화간의 편차를 되짚어 볼 수 있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15세기에 최초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잠수함은 폐쇄 공간의 전형으로써 고립된 인간의 정신이 투사될 수 있다는 것, 은밀하여 내세울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은유로 헌사되어 열강의 대립구조에 매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장치라는 것 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영화<아쿠아맨>, 영화<헌터킬러>, 영화 <쿠르스크>의 배경이자 소품이기도 한 잠수함은 어쩌면 전쟁을 입에 올리기 힘든 글로벌 지구촌 사회에서는 유대감을 강조하면서도, 가면을 벗으면서 추악한 흉터를 강제로 보여주는 괴물의 조롱처럼, 멀어지게 하는 모순이 결합돼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임을 강조할 수 있는 폐쇄적 공간으로서의 잠수함이 하필 둘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국경 어딘가에서 어떤 사고를 겪게 될 때 그 난감함은 가장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잠수함은 은밀하면서도 유대적인 인간의 공간인 동시에 열강의 이해와 대립이 얽힌 국가의 공간이기도 하여 이 둘이 대립될 때에는 끝내 어느 하나의 편에 서지 못하는 부조리를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아쿠아맨>

영화<아쿠아맨> 초반에 등장하는 잠수함은 사실 가장 타락한 동화의 궁전 같다. 크게 국가관을 언급하거나 고립된 인간의 처절함을 보이기보다 ‘아쿠아맨’의 힘을 묘사하기 적합한 대상으로 소모된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잠수함은 DC세계관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그리고 배트맨 등과 함께 아쿠아맨 역시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DC코믹스의 세계관이 영화로 옮겨 오게 되면서 그 출발점은 흥행 면으로 보나 상상적인 면으로 보나 잠수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헌터킬러>

반면 영화<헌터킬러>에서 등장하는 잠수함은 국가 간 대립의 일환으로 은밀히 수행되어야 하는 정보수집의 헤게머니를 거칠게 다루다가 어느 한 편(이를테면 미국)을 그럴싸하게 추켜세우는 도구가 된다. 여기에서 들러리는 미국과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로서 그들은 자국 내의 쿠테타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치부를 보게 된 미국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 갑작스러운 사태는 두 국가를 은밀하지만 강력한 혼란에 빠뜨리고 이 혼란을 간파한 수뇌부는 그들이 판단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수습하려 한다. 특수대원을 급파하여 러시아의 동태를 살피고, 우연히 쿠테타의 희생양이 되고 만 러시아 대통령을 구해내어 급변사태에 뛰어든다. 늘 그렇듯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도무지 어떤 판단이 옳은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를 상황 속에다가 기가 막힌 스펙타클을 더해 미국식 관점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우리는 ‘헌터킬러’라는 이름의 잠수함을 마치 사람인양, 즉 영화<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 검프’의 일생을 따라가는 것처럼 그 ‘잠수함’의 영웅 서사를 따라간다. 

*영화<쿠르스크>

사실 앞의 두 영화는 이 영화를 중심으로 놓기 위한 전제에 불과하다. 어쩌면 영화<쿠르스크>에 비해 <아쿠아맨>과 <헌터킬러>는 상상력 가득한 잠수함의 천진난만한 해석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잠수함이 가진 국가적 자부심이나, 잠수함이 상징하는 정보전쟁에 특화된 기계적 특성을 상상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상상이 과장되면 해석의 단계에서 많은 이야기가 생산된다. 잠수함은 원래 은밀한 존재이므로 은밀하다는 속성을 빌어 해석의 장치인 영화는 잠수함을 자기들 내키는 대로 버무려 낸다. 비슷한 일이 앞서 언급한 두 영화에서 벌어졌다. 이를테면 잠수함의 은밀함은 폭로되어야 존재가 드러난다. 그래서 잠수함은 슈퍼 히어로에 의해 바다위로 떠밀리기도 하고(아쿠아맨), 잠수함 바로 앞에서 미사일이 요격되어 화려한 불꽃 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헌터킬러)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깔린 적절한 복선들은 영화의 장르라는 유도질문에 따라 우리를 클라이맥스로 오차 없이 인도해준다.

잠수함을 다루는 두 영화와 <쿠르스크>는 이러한 의미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두 영화에 비해 <쿠르스크>에서 볼 수 있는 그 차이는 두 영화의 잠수함은 ‘상상’의 산물인데 비해 <쿠르스크>의 잠수함은 ‘울분’의 결과라는 것이다. 영화 <쿠르스크>는 국가의 무능을 희생의 강요로 윤색하려는 끔찍한 시도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 영화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울분을 지혜롭게 발휘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어디에서건 국가의 무능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능은 늘 누군가의 희생을 유발하여 우리의 울분을 항상 조장한다.

그러니까 <쿠르스크>의 잠수함은 무능에 의한 희생과 이를 감추려는 세력들을 폭로하고 인간의 울분을 조장한다. 이 영화는 이 상황을 개탄하며 비난할 수 있게 하지만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명분으로 꽉 찬 국가적 판단이 어떤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버리고는 이를 희생의 대의명분으로 조작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같은 것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깔고, 그 위에 국가는 언제고 그 신뢰를 무너트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허탈함을 올려놓는다.

그러므로 맥락 상 <쿠르스크>의 클라이맥스는 아이가 무능한 관료의 악수를 거부한 것과 더불어 아이가 노려보는 눈빛이 무능한 책임자에게 말없이 ‘보여 지는’ 장면에서 폭발한다. 더불어 그 아이의 눈빛과 악수 거부가 옳았다는 것은 “잘했어”라는 말을 전하는 희생된 아버지 동료들의 격려를 통해 확인된다. 그런데 이것은 슬프게도 절망적인 결론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들의 무능은 늘 누군가의 희생으로 포장될 테고 우리가 그 희생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남몰래 다가와 읊조리는 격려 한 마디뿐일 테니까. 그렇게 무능의 순간은 반드시 누군가가 희생되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무능을 향한 울분의 당위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비록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비관적인 결론을 맺는 모양새를 갖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이 모든 세상을 부정의 눈빛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국가는 개인을 언제나 희생시킬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미보다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세 편의 영화 속 잠수함은 바로 그 말을 나에게 던져주려고 나름의 힘을 모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마치 긍정적인 울분의 힘을 보여주는 <쿠르스크>를 중심으로 어느 한 개인의 의지를 보여주는 <아쿠아맨>의 상상력, 그리고 신뢰를 위한 의지의 가치를 보여주는 <헌터킬러>가 그 중심을 맴도는 것처럼.

만약 나와 같은 이해를 시도해보고자 한다면 세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고 울분과 상상력 그리고 신뢰의 가치와 이해를 새삼 되새겨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아마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재미도 재미지만 결국 영화는 이야기를 복잡하게 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여기서는 잠수함)을 중심으로 원심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우리가 처한 현실의 울분이, 사회적 신뢰의 민낯이 우리에게 포착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글·지승학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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