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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음의 가시 L'epine Dans Le Coeur> - 떨쳐낼 수 없는 슬픔.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음의 가시 L'epine Dans Le Coeur> - 떨쳐낼 수 없는 슬픔.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02.07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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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시> 포스터

 간혹 이겨낼 수 없는 것만 같은 슬픔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병에 있어 시간은 약이라, 망각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탈출구를 열어준다. 우리는 이를 애도의 과정이라고도 부른다. 언제나 애도가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못 박힌 듯 평생에 걸쳐 마음 한구석에 남는 아픔. 영화 <마음의 가시>는 그러한 상처를 가늠한다. <마음의 가시>에서 갈등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원인이 된다. 오래된 상흔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재인된다. 어설픈 망각은 서로에게 수렁을 만들기도 한다.

미셸 공드리라는 이름은 한국 관객에게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무드 인디고 L'ecume des jours, 2014>, <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et Gasoil, 2015> 등 그의 대표작은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미셸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 중 하나는 그의 독특한 영상 미학이다. 미셸은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키는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데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마음의 가시>는 여러모로 미셸 공드리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 근무한 학교를 다시 찾은 수제트

 <마음의 가시>는 미셸의 고모 수제트 공드리의 일생을 추적한다. 수제트 공드리는 1952년에서 1986년까지 프랑스에서 교사로 일했다. 미셸은 퇴직한 수제트와 함께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들을 찾는다. 그곳에서 미셸은 수제트의 지인들과 학생들을 만나며 수제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묻는다. 여기서 장소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미니어처 기차는 수제트가 언제 어디서 살아왔는지를 기록하는 표지로서 활용된다. 그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제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제트는 학생들에게 엄격하지만, 동시에 존경받는 교사였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내전을 피해 온 알제리 학생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했다. 노년에는 딱딱한 정규 수업을 대체해 학생들을 수영장으로 이끈 강단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수제트는 남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엔 도저히 뺄 수 없는 ‘마음의 가시’가 존재한다.

 

공드리 일가의 저녁 식사

 미셸은 수제트와의 인터뷰와 8mm로 촬영된 가족 영상을 교차시키며 수제트의 사적인 삶을 돌아본다. <마음의 가시>는 수제트가 남편인 장 기에 대한 추억을 가족들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제트는 이웃에게 허세를 부리다가 과식을 하게 된 장 기의 이야기를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며 이야기한다. 별것도 아닌 남편의 일화에 웃고 우는 그녀는, 아직도 사별한 남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장 기의 죽음에는 한 가지 사건이 얽혀있다. 수제트는 남편의 사망 당시 이를 이틀 늦게 세상에 알렸다. 시험을 보고 있는 자식과 심약한 아들이 받을 충격을 걱정해서이다. 이 사건은 뜻하지 않게 모자지간에 깊은 수렁을 만든다.

 

이브와 수제트

 수제트에게 아들 장 이브는 아픈 손가락이다. 어린 시절 이브에게 수제트는 어머니이자 학교의 선생님이었다. 이브는 낙제학생으로 눈총을 받으며 자랐다. 심약한 그에게 수제트와의 이중적인 관계는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브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미달을 이유로 부모에게 반대당하고, 아버지의 목재소에서 일하게 된다. 이브는 이후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이브는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본인이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혼한다. 세월이 갈수록 이브와 부모의 골을 더욱 깊어져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브는 아버지 장 기의 죽음 이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과대망상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부모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망상에 사로잡힌 이브는 수제트가 자신을 해칠 것이라고 여기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의 인식과 기억에는 명백한 왜곡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제트가 이브를 대하는 태도 역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미셸에게 항상 인자한 고모였던 수제트가 단 한번 화를 냈던 사건은 미셸을 이브로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애증이 존재한다.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공드리 일가

그러나 영화는 수제트의 삶을 표지하던 미니어처의 주인이 이브라는 것을 공지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감각을 전달한다. 싫던 좋던 그들의 삶은 긴밀히 교착되어 있다. 수제트에게 장 기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물을 때 이브는 끼어들며 “죄책감”이라고 답한다. 수제트는 이브의 집요함에 진절머리를 낸다. 두 사람의 애도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브는 곧이어 작게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이브의 죄책감이 무엇인지는 끝내 알 수 없다. 먼저 아버지를 찾지 않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향한 끝없는 원망에 대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본인도 모를지 모른다.

<마음의 가시>는 미셸이 가족에게 바치는 송가와 같은 영화이다. 영화에는 화해에 대한 염원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는 직접적인 개입보다 영상을 통해 자신의 바람을 담는다. 그 전언은 수제트와 가족의 역사를 담은 8mm 영상에 있다. 행복한 일상이 담긴 8mm 영상을 찍은 이가 이브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부터 영화는 넌지시 묻는다. ‘마음의 가시’에 꽃은 필 수 없는가? 혹은 피지 않았던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조한기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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