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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잔인하거나 과격하거나 ― <가버나움>
[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잔인하거나 과격하거나 ― <가버나움>
  • 정동섭(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1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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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네오리얼리즘의 부활

개인적으로 쉰 번 넘게 본 영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자전거 도둑 Ladri de Biciclette>이라는 가슴 떨리는 제목과 함께 ‘1948년’이나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라는 단어들을 기억한다. 슬픈 아버지와 애처로운 아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걷는 로마의 거리와 골목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이 명작은 현실을 포착해 내는 역량뿐 아니라 길거리 캐스팅으로도 유명했다.

이제 70년이 지나 등장한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2018)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레바논의 현실과 인권을 보여준다. 주요 캐릭터에 거리에서 발견한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하고, 길거리 촬영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도 <자전거 도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세월의 간극이 말해주듯, 기법적인 면에서는 조금 더 세련되고 진보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도시 빈민가 또는 폐허 속에서 전쟁놀이하며 담배를 피우던 꼬마들을 비추던 카메라가 공중으로 올라갈 때, 자인과 그 무리의 모습은 버림받은 도시의 살풍경 속에 묻힌다. 그리고 베이루트 골목골목에서 기식하는 어린 영혼들은 그렇게 일반 명사가 되었다.

 

2. 가버나움이라는 지옥

<가버나움>은 시작부터 관객의 흥미를 끄는 미스터리 구조를 선택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당돌한 어린아이가 사력을 다해 외치는 그 ‘개새끼’를 궁금해한다. 그는 누구일까? 왜 자인은 자신의 부모를 ‘저 사람들’이라 칭하며, 그들을 고소했는가? 자인이 말하는 고소의 이유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킨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누군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겠느냐 마는 그래도 그 나이에 이런 질문을 하진 않는다. 더욱이 공론화시키지는 않는다. 베이루트 거리의 경이로운 현실은 학교에 가지 않은 그를 쇼펜하우어로 만든 것이다.

 

동생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하지만,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는 부모의 달뜬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무런 호기심도 불편함도 표현하지 않는 자인의 무덤덤한 얼굴은 그런 일상을 더욱 슬프게 만든다. 가까이서 경험하는 성(性)으로 인해 자인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여동생의 더러운 시트에 묻어난 피의 의미를 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관객의 상상력을 벗어난다. 생리가 시작되면 가난한 여자아이들은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합법적으로 매매된다. 작은 손으로 동생의 속옷을 빨아주고, 자기 셔츠를 임시 생리대로 제공한 어린 오빠. 사하르를 위해 생리대를 훔쳐 올라간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쓸쓸함. 가난한 남매는 마음 둘 곳이 없다. 사방이 폐허 혹은 빈민의 그림자. 고철통을 두드리며 어설픈 리듬을 타는 자인과 그 작은 어깨에라도 기대고 싶은 어린 여동생. 사하르의 예쁘고 큰 눈은 가난하고 희망 없는 소녀의 아픔과 절망을 차고 넘치게 표현해 낸다. 자인의 연기는 기적에 가깝고, <가버나움>이 온통 그의 연기에 기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사하르의 눈빛이 그의 연기를 극복했다. 이토록 무기력하고, 체념에 빠져든 슬픈 시선을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은 한계를 초과한 슬픔이 분노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베이루트의 밤거리는 낮보다 위험하다. 소녀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밤에도 거리에 나와 싸구려 주스를 파는 자인과 동생들. 이제 자인은 밤의 여러 위험 요소들로부터도 사하르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강한 아이가 됐다. 자기보다 덩치 크고, 나이 많은 소년들이나 청년들 앞에서도 그는 기죽지 않는다. 맞아도 울지 않고, 쓰러져도 패배하지 않는다. 거리라는 환경과 그곳에서의 체험은 적어도 생존에 있어서만큼은 학교보다 유용한 교육을 제공했다. 그래서 자인은 멘탈에서 밀리면 그곳에 발붙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울지 않는다. 부모의 품속이 아닌, 거리에서 자란 아이들, 아니 그곳에서 생존해 낸 아이들. 학교는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아닌, 부모들의 생계 또는 현재를 책임질 곳으로 전락했다.

 

<가버나움>의 내러티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이 자인과 사하르를 축으로 하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자인과 요나스 또는 라힐을 중심에 둔다. 라힐과의 만남은 불법체류자 또는 난민의 세계로 자인을 인도하며 <가버나움>에 보다 큰 프레임을 제시한다. 서류가 없는 존재는 유령과 같다는 아스프로의 말은 라힐과 요나스뿐 아니라 자인과 사하르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도시의 유령임을 깨닫게 한다. 착취의 토대 위에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 불법체류자 라힐은 임금을 착취당하고, 돈도 서류도 없는 이들은 아이들 혹은 존재 자체를 착취당한다.

 

놀이동산에서도 외롭고 무표정한 자인은 <플로리다 프로젝트>(션 베이커, 2017)의 무니와 그 친구들을 추억하게 만든다. 그가 여인상(女人像)의 가슴을 벗겨 젖가슴을 노출시키는 장면은 애어른인 자인도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려 있음을 웅변한다. 어머니 또는 돌봄의 소중함을 아는 그이기에 요나스를 버릴 수 없다. 버림받았던 자인은 자기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요나스를 더더욱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가버나움(Capharnaüm)’이라는 제목은 ‘뒤죽박죽’ 또는 ‘혼란의 도가니’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의미심장하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온 난민들과 여러 종류의 불법체류자들이 뒤엉켜 사는 레바논의 현재를 드러내는 적확한 명사(名詞)다. 그러나 이 제목은 우리를 성경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난한 자, 약한 자를 위하여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던 이스라엘의 어느 마을. 가버나움은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의 마을이자 예수 자신의 마을이기도 했다. 그러나 숱한 기적을 보고도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는 그래서 진노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 같으냐? 아니다. 지옥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3절)

 

<가버나움>의 무대인 ‘베이루트’의 현재는 지옥에까지 내려간 듯해 보인다. 예수는 어린 영혼들을 귀하다 하시며,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하셨다. 그러나 어린 자인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른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

제가 듣는 말이라곤 ‘꺼져, 개새끼야!’, ‘쌍놈의 새끼’뿐이에요.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지옥 같은 삶이에요. [...] 인생이 좆같아요.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神)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교도소에서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절을 할 때, 자인이 한쪽 구석에서 사과를 베어 물며 그 광경을 무심히 구경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마치 선악과를 먹어 지혜를 얻은 양, 당당히 신(神)을 거부하던 자인. 나딘 라바키 감독은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학대받고 희생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녀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 자인의 부모처럼, 세상을 창조하고도 돌보지 않는 신(神)에 대해 이렇게 거칠고 잔인한 방식으로 과격한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아카데미가 외면한 명작

2019년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2월 25일 월요일 오전에 거행되었다. 나는 열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 거라고 너무 뻔한(?) 예측을 했다. 그래서 개인적 주된 관심사의 하나는 과연 외국어영화상을 어떤 작품이 수상할 것인가였다. <로마>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고, 외국어영화상은 <가버나움>에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오스카는 작품상에서 <로마>를 외면했고, 외국어영화상에서 <가버나움>을 백안(白眼)시했다. <가버나움>은 2018년에 받은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사흘 후 하노이에서 벌어진 북미정상회담은 평화를 향한 구체적 성과를 바랐던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9년 2월은 그렇게 배반과 망실(亡失)의 시간이 됐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가버나움 - 포토

 

 

글: 정동섭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구자. 현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돈 후안: 치명적인 유혹의 대명사』, 『20세기 스페인 시의 이해』,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등의 저서와 『바람의 그림자 (전2권)』,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돈 후안 테노리오』, 『스페인 영화사』, 『스페인 문학의 사회사 (전5권)』 등의 번역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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