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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을 타고 유럽을 흘러다녔다
선율을 타고 유럽을 흘러다녔다
  • 안세희/대학원생
  • 승인 2010.11.05 19: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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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는 세계 예술여행의 일환으로 지난여름 ‘유럽 음악여행’과 ‘유럽 미술여행’을 주관했다. 이 ‘특별한 여행’에는 콘셉트에 어울리는 여행지가 대거 포함됐고, 음악과 미술에 정통한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 여행의 깊이를 더했다. 이 글은 ‘유럽 음악여행’에 참가한 독자가 보내온 기행문이다.

런던 웨스트엔드

▲ <라이온 킹>을 공연 중인 런던 웨스트엔드의 라이시엄 극장.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을 공부해온 나는, 그 본고장인 유럽의 음악도시 순회를 꿈꿨다. 그 꿈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알림’을 본 순간 현실로 다가왔다. 융프라우·피사·로마·피렌체·베네치아 등 이름난 관광지 외에 런던 웨스트엔드, 밀라노 스칼라 극장, 크레모나 스트라디바리 악기 박물관,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 빈 숀브룬 궁전 음악회 등으로 짜인 프로그램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12시간을 날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은 여름치고는 차가운 밤공기였다. 런던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서 마주친 삼성 스마트폰 대형 광고판이 떠나온 서울을 잠시 생각나게 했지만, 금세 이국적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런던에 싫증나면 인생에 싫증난 것”

이튿날 시내관광을 하면서 느낀 런던의 분위기는 왠지 설렘의 공기로 가득한 듯했다. 외양은 보수적이고 전통을 고수하는 듯하면서도, 도시를 감도는 공기는 자못 진보적이고 창의성을 함께 호흡하는 듯했다. 하긴 런던은 보수주의와 보수당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도시인 동시에,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가 잠들어 있는 도시가 아니던가?

여행객은 런던의 우아한 외양에 매료되었다가 이내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적 분위기에 감염된다. 영화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의 배경이 된 곳, 복잡하면서도 절도와 매너가 있는 도시, 런던은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런던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뭔가 퍼포먼스를 보고 싶은 여행객은 웨스트엔드에 들러 뮤지컬을 관람한다. 웨스트엔드는 런던 한가운데 위치한 극장 밀집구역이다. 왕이 지배하던 웨스트민스터 지역과 별도로 신흥 상공인을 중심으로 시티즌(시민)이 그들의 도시 ‘더 시티’를 건설했는데, 시티의 동·서쪽 끝을 이스트엔드와 웨스트엔드로 불렀다. 이스트엔드가 도심의 빈민구역으로 전락한 반면, 웨스트엔드는 시티의 자유로운 정신을 이어받아 뮤지컬의 중심지가 됐다. 웨스트엔드는 지난해 22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우리는 코벤트 가든의 라이시엄 극장에서 <라이온 킹>을 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일요일이라 공연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 위주로 공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어린이 뮤지컬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해다.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래 세계 각국에서 크게 성공한 뮤지컬 <라이온 킹>은 우리나라에서만 11만 명이 넘게 관람했다. 한국 공연시장을 감안하면 ‘대박’이었다. 작품성과 상품성을 고루 갖췄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로 화려함과 생동감이 넘치는 멋진 공연이었다.

우리나라 뮤지컬은 초대형 뮤지컬 또는 대학로 소극장에 올라가는 창작 뮤지컬로 크게 양분되지만, 이곳은 100개 가까운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다양한 작품을 올린다. 극장은 그리 크지 않아 세종문화회관의 소극장과 대극장 중간쯤 되는 규모다. 원작이 애니메이션인지라 만화 속 다양한 효과를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뮤지컬은 갖가지 방법으로 효과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1층 맨 뒷줄에 자리잡았다. 티켓 가격은 38.5파운드(약 7만 원)였는데 영국의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편은 아니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음악이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쓰인 배경음악에 3곡이 더 추가됐다. 극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를 2층 앞쪽 좌우에 배치해, 흑인 연주자들이 빠른 리듬으로 쉴 새 없이 연주했다. 무대 밑 오케스트라의 선율과도 무리 없이 어우러졌으며, 배우들 노래 또한 음악에 잘 스며들었다. 흑인 배우들의 풍부한 성량은 아프리카의 강인한 기운을 생생히 전했다.

웨스트엔드, 뮤지컬 양대 본산

영국의 웨스트엔드는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의 양대 본산이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다이내믹한 전개, 생동감 넘치는 퍼포먼스 등 무한한 볼거리를 갖춘 뮤지컬은 오페라보다 재미있고 연극보다 신난다. 음악, 춤, 연기 등 모든 것을 한무대에서 볼 수 있는 종합예술 장르인 뮤지컬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무엇이 다를까?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형태를 갖췄다는 점에서 교류가 활발하고 그만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웨스트엔드는 브로드웨이보다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런던에는 100개에 이르는 공연장이 있고, 200~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도 많다. 우리가 방문한 라이시엄 극장은 1772년에 개관했다. 이 극장은 1999년 이후 <라이온 킹>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전용극장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작 빅3가 탄생할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캣츠>가 그것이다. <레 미제라블>은 1984년 시작돼 1만 회 이상,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시작돼 9500회 이상 공연됐지만 아직까지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 이후 <라이온 킹>이 인기를 모았고, <라이온 킹>은 <맘마미아>에 바통을 넘겼다.

레스터 스퀘어에는 뮤지컬 티켓을 파는 부스가 여러 개 있는데, 공연 전날 반환돼 반값에 파는 표나 간혹 보이는 입석표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웨스트엔드에는 소규모의 실험적 작품이 주로 공연되는 ‘프린지’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한국의 <난타>와 <점프> 등을 공연해 눈길을 끌었다. ‘주변·가장자리’라는 뜻의 프린지를 통해 신인 발굴과 문화 유입의 통로를 열어놓았기에 웨스트엔드의 명성이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

층간 로비에서는 맥주와 칵테일은 물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사탕이나 젤리 등 군것질거리를 판매한다. 1막이 끝난 뒤 들뜬 마음에 평소엔 너무 달아 먹지 않던 마시멜로와 젤리를 사버렸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뒷자리의 네 살짜리 아이에게 주고 말았다. 공연장에는 아이들이 많이 찾았다.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란 이유도 있지만, 이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뮤지컬과 음악회 등 공연을 자주 접한다. 온통 학원이나 시험으로 내몰려 힘겨워하는 한국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크레모나

▲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있는 스트라디바리 박물관 뒤편 골목 풍경. 멀리 공방의 모습이 보인다.
크레모나는 명성과 달리 아주 소박한 소도시였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알프스의 인터라켄에서 잘 차린 ‘유럽식 정찬’을 즐겼다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있는 대로 차려주어도 맛있는 ‘집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널브러진 거리 조형물,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더미는 런던에선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질펀하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모습은 우리를 덩달아 편안하게 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동남쪽으로 70km를 달리면 크레모나에 도착한다. 날것 그대로 소박함이 살아 있는 크레모나는 우리를 방문객이 아닌 고향 사람처럼 대하는 듯했다. 이 소도시가 세계를 흥분시키는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그리고 ‘아마티’의 본고장이라니! 시골 마을처럼 차가 진입하지 못해 입구에서 내려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갔다. 나지막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건물들, 야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피자 먹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여행객 티를 팍팍 냈다. 아기자기한 상점에서 호들갑을 떨고, 보도블록 대신 멋스러운 돌이 깔린 길에 감탄사를 자아내는 것은 여행객의 특권 아니던가?

걸출한 장인들의 현악기에 매료

몇만 명에 불과한 인구에, 자전거로 몇십 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을 듯한 작은 도시를 찾는 여행객 대부분은 현악기에 매료된 이들이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아마티 등 걸출한 장인들을 배출해낸 크레모나는 고급 수제 현악기의 본향이다. 좋은 악기를 사러 오는 이부터 악기 제작을 배우거나 공방을 둘러보는 이까지, 현악기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크레모나를 성지순례하듯 방문한다. 이들이 크레모나에서 쓰는 돈이 한 해 1억 유로 이상이라니 줄잡아 약 1500억 원이 이 도시에 떨어지는 셈이다.

멋스러운 골목을 걸으며 차창 너머로 엿보는 악기 공방, 거리마다 느껴지는 장인의 숨결과 들려오는 악기 소리는 크레모나가 관광지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로마나 베네치아처럼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중소도시의 여유를 맛보고 싶다면, 세계 음악인을 흥분시키는 악기와 제작자를 만나보고 싶다면 하루 정도 크레모나에서 시간을 갖는다.

마을 입구에서 일단 두오모로 향했다. 성당의 ‘돔’을 뜻하는 두오모는 이탈리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결정하는 랜드마크인 동시에 이곳 사람들의 종교와 생활의 중심이다. 두오모를 등지고 돌아서면 크레모나 시청이 보이는데, 그곳에 딸린 조그만 별관이 현악기 제조의 거장 스트라디바리를 기념하는 악기 박물관이 있다. 흔히 말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혹은 ‘스트라드’는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현악기의 통칭이다. 17~18세기 70여 년에 걸쳐 1100여 대의 스라디바리우스가 생산됐는데, 현존하는 것은 바이올린 540여 대, 비올라 12대, 첼로 50여 대로 추산된다.

연간 3만여 명이 찾는 박물관인데, 특히 악기가 보관된 방은 매우 작다. 몇 명씩 나눠야 입장할 수 있고, 기다리는 방문객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사람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거장의 숨결을 접할 준비를 한다. 상주 경찰관과 동행해 방으로 들어가자 유리관 속에 고이 보관된 현악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악기 발전에 지대한 공을 한 아마티의 것부터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드디어 만났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기쁨은 없었다. 몇백 년 전에 생산된 초고가 악기와 조우하면서도, ‘이게 스트라디바리우스고 저게 과르네리구나’ 그게 다였다. 내 눈으로는 늘 봐오던 바이올린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관 속에 얌전히 걸려 있는 악기를 보며 그저 ‘이 악기의 실제 음색은 어떨까’라는 공상을 해볼 뿐이다.

어떤 것이든 제자리에 있을 때, 제 주인을 만났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법이다. 300년 역사를 품고 수십억 원의 몸값을 자랑한대도 울림을 전할 때 악기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로 악기는 가만히 두는 것보다 꾸준히 연주해야 수명이 연장된다. 작은 방에 모셔진 10개 남짓한 스트라디바리우스·과르네리·아마티는 비슷해 보였고, 오히려 오는 길에 본 크레모나 거리악사의 바이올린이 더 값져 보였다. 관계자에게 보관된 바이올린들은 연주에 쓰이지 않는지 물었더니 특별한 경우 심사를 거쳐 대여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대형 악기상인 ‘바인 앤 푸시’는 비영리단체인 스트라디바리협회를 운영하며 세계의 명기 수집가들과 연주자들을 연결해준다. 연주자는 좋은 악기로 연주하고, 청중은 그 음색을 즐기고, 소유자는 악기가 연주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악기 상태를 더욱 좋게 만드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다. 명연주자의 손을 거치며 그 명기는 더욱 전설이 된다.

거리악사 바이올린이 더 값져 보여

전세계 연주자들이 그토록 좋은 악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뛰어난 음색이겠지만 악기의 전통과 가치에도 큰 매력을 느낀다. 수백 년간 여러 연주자의 손을 거치며 악기에 새겨진 이름들은 연주자와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음악 이상의 감동을 자아낸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구입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화제였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에 출연해 배경음악을 담당한 그가 악기를 손에 넣게 된 과정이 영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바이올린이 3세기 동안 겪는 운명을 그린 영화에 나온 바이올린은, 벨의 것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정경화가 1967년 리벤트리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극적인 공동 우승을 차지할 때 한국에 연락해 집을 팔아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나, 필립 퀸트가 자신의 악기를 찾아준 택시기사를 위해 공항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는 사연 등은 이미 유명하다.

악기의 울림이 주는 분위기, 지나치게 ‘고가’라는 것이 주는 경외심,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도도함 등이 합쳐져 고가의 현악기는 대단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에도 비싼 악기가 종종 소재로 등장해, 의뭉스럽거나 비밀스러운 뒷얘기를 지닌 오묘한 실체로 묘사된다. 그것은 흔히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대표된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에 비견할 장인이 바로 ‘주세페 과르네리 델 제수’다. 역시 탁월한 제작자로 자신의 악기에 십자가와 함께 예수를 뜻하는 ‘I.H.S’(iota-eta-sigma)라는 표식을 새겨 ‘델 제수’란 별명을 갖게 됐다.

지난 7월 사상 최고가(약 210억 원)의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됐던 바이올린이 델 제수의 작품이고, 이미 팔린 악기 중 가장 비싼 것(115억 원)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0억 원에 낙찰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훌쩍 앞선다. 과르네리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몸값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희귀성’ 때문이다.

현존하는 과르네리는 150대 정도로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해 적다. 일단 과르네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수명이 짧았다. 일설에 따르면 과르네리는 불성실한 제작자였다. 술을 너무 좋아했고, 악기의 제작 완성도에 기복이 심했다고 한다. 감옥을 여러 번 다녀왔다는 설도 있다. 천재의 이미지가,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한 소문이라 할지라도 정교한 설계로 성실하게 제작한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해 과르네리가 직관적이고 자유로운 제작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남아 있는 악기 수량이 적고, 몸값은 올라갔다. 성실함의 가치를 깨뜨려버린 역설적 상황이 악기 세계에는 존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를 각각 ‘고고한 귀부인’과 ‘솔직한 농부’로 비유한 적이 있다. 그녀는 “둘 다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맛이 느껴지는 과르네리만 사용한다”고 했다.

연주자마다 선호하는 음색이 다르고, 그에 따라 악기가 다르기에 무엇이 더 낫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특징을 읽어낼 수 있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여성스럽고 우아하다면, 과르네리는 남성적이고 거칠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미 가진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네리는 조금 덜 다듬어진 보석 같아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특징은 외형에서도 드러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섬세하게 다듬어진 반면, 과르네리는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거칠게 손질돼 있다. 재미있게 비유하면 요즘 말하는 ‘초식남’과 ‘짐승남’ 정도로 대비할 수 있을까? 각각 뛰어난 매력 덕분에 음악가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두 장인이 나고 자라서 활동한 곳이 바로 크레모나다.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전통은 16세기 중반에 시작된다. 현존하는 최초의 바이올린은 이곳 출신인 안드레아 아마티(1505~77)가 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크레모나의 악기 제조 전통은 공방과 가업을 통해 맥을 이어왔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역시 아마티 공방의 문하생이었다.

크레모나에서 생산되는 악기가 더 깊은 울림을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 중 가장 많이 나온 분석은 재료의 특별함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가 생산된 17~18세기는 소빙하기로 나뭇결의 밀도가 높고 나이테가 촘촘했다. 그 때문에 균일하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화학물질인 도료의 역할에 가치를 뒀다. 북이탈리아 숲에 서식하는 벌레로부터 바이올린을 보호하려고 발라놓은 도료가 잡음을 제거했다는 주장이다.

정확한 이유는 현대 기술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수많은 모조품이 제작됐지만 어떤 것도 원악기와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깎고 다듬었을 장인의 정성이 빠졌기 때문은 아닐까? 현악기는 400년간 진화하고 400년간 퇴화한다고 한다. 오래된 현악기라야 대부분 1700년대 제작된 것들이니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오스트리아 빈

▲ 오스트리아 빈의 숀브룬 궁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거쳐 이번 음악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빈(비엔나)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물었다. “여러분, 비엔나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비엔나소시지요, 큭큭.”

“비엔나커피!”

“빈 필하모닉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이드가 말했다. “대부분 비엔나 소시지나 커피를 이야기하죠. 가끔 빈 필하모닉도 나오고요. 그렇지만 비엔나엔 비엔나 소시지와 커피는 없어요. 이곳 소시지는 우리처럼 작지 않고 길쭉해요. 비엔나커피처럼 크림을 올린 게 있지만 비엔나커피라고 부르지 않아요. 빈 필하모닉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우리나라 지휘자로는 정명훈씨가 빈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지요.”

빈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도시다. 작곡가만 하더라도 잘츠부르크 하면 모차르트가 떠오르지만, 빈 하면 많은 대가들이 떠올라 거장도 평범해지는 음악도시다. 베토벤·슈베르트·슈트라우스·브람스 등 많은 거장이 빈에서 활동하다가 빈에 잠들어 있다. 생활비조차 없어 비참하게 죽은 모차르트 역시 빈의 한 공동묘지에 위치도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다. 거리 곳곳에 그들이 살던 집과 그들의 음악이 연주되던 명소가 즐비하다. 음악도시로서 빈의 위상은 “이곳에 온 한국 유학생의 90% 이상이 음악 전공자”라는 현지 유학생 말에서도 나타난다.

거장도 평범해지는 음악도시

빈은 전세계에 중계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1년 내내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리는 세계 음악의 수도이다. 한편, 그런 연주가 가능한 것은 관객의 수준 때문이다. 여행객뿐 아니라 빈 시민은 생활의 일부로서 공연을 즐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도 모차르트 교향곡은 알아차린다고 한다.

관객 수준이 높기에 연주자가 실력을 높여야 한다. 두꺼운 음악 애호층 덕분에 연주자는 연주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 연주는 물론 레슨과 강의까지 해야 하는 우리나라 음악인이 부러워할 만한 대목이다. 거닐기만 해도 영감이 솟는 곳,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곳인 빈에 머무는 것은 예술가로서 큰 축복이다. 유럽 음악여행단 또한 빈을 방문한 것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밤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쓰던 숀브룬 궁전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기다리는 동안 빈에서 유명하다는 호이리게 정식을 먹기로 했다. ‘호이리게’란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처럼 그해 오스트리아산 햇포도주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호이리게를 취급하는 음식점을 통칭하는데, 그린칭이란 마을에 밀집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도 거장들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쓰인 곳이었다. 다른 여행객들에겐 그저 그런 베토벤 유적지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특별한 감회를 자아냈다. 음대 재학 시절, 그의 유서를 50번 베껴 쓴 적이 있다. 과제 중 하나였는데, “직접 써보며 서른두 살 베토벤의 절망을 느껴보라”고 하시던 교수님이 너무 야속했었다.

50번 베껴 쓰는 동안 뭔가 느꼈다. 음악가로서 중요한 청력을 잃어가며 느꼈을 절망감과 두려움, 아직 다 불사르지 못한 음악에 대한 열정과 미련, 죽음을 예감하고 유서를 써 내려가던 베토벤의 심정이 조금은 전해지는 듯했다. 그 모든 것이 구구절절 그의 유서 속에 담겨 있었다. 다행인 것은, 사후에 발견된 유서의 뒷부분에 적힌 ‘작곡을 위해 더 살아야겠다’는 구절이었다.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가듯 베토벤은 유서를 쓴 뒤 30년을 더 살았고, 음악의 형식과 표현에 큰 변화를 보이며 <전원교향곡> 같은 숱한 대작을 남겼다.

흔히 음악사나 뒷이야기에서 그려진 베토벤은, 심각하고 괴팍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천재다. 남성적 웅장함이 특징인 그의 음악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우리의 오해일 수도 있다.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까칠한 ‘강마에’ 캐릭터 또한 베토벤의 고착된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은 아닐까? 그의 헤어스타일조차 베토벤 초상과 비슷하다.

슈베르트가 방문했고, 근래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그린칭 마을의 호이리게는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았다. 특별히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아늑한 분위기에서 햇포도주와 함께 식사를 즐겼다. 한국 여행객이 많이 찾는지 악사가 <아리랑>을 연주해 더욱 기분 좋았다.

지친 행색으로 유럽을 누비던 우리는 음악회에 가기 위해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빈의 다른 공연도 그렇듯 반드시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웅장한 규모의 숀브룬 궁전 한편에서 열리는 연주회였지만 빈 좌석은 거의 없었다.

곡목은 대부분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였다. 여행객이 많기에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많이 연주된다고 현지 가이드가 전했다. 피곤한 여행객에게는 2시간 남짓한 공연이 부담될 수 있었지만, 장르가 다양하고 레퍼토리가 귀에 익숙해 시간이 금방 흘렀다. 1부는 모차르트 작품이지만 아리아와 서곡에 무용수의 공연까지 어우러져 흥미로웠다. 2부 역시 음악가 가문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잘 짜여 있었다.

도나우강엔 역사가 흐른다

마지막 곡은 유명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독일에서 발원해 빈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강은 연주회가 열린 숀브룬 궁전과 멀지 않았다. 도나우강이 흐르는 곳에서 듣는 왈츠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다뉴브강으로도 알려진 도나우는 내륙국가인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해변’과 같은 휴식처다. 노래가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도나우강 양편으로 오래된 건물이 위대한 음악가들이 살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문득 예술가의 흔적마저 개발에 밀려나고 있는 서울 풍경과 대비됐다. ‘한강팔경’은 물론 모래톱조차 자취 없이 사라진, 아파트 장벽으로 둘러싸인 한강의 처지가 생각났다.

12일간 여행의 마지막 밤, 아쉬움을 달래려고 호텔 바에서 홀로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쌉싸래한 유럽 맥주 맛이 낯선 이국땅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여행은 늘 아쉬움과 향수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끝나는 것일까? 유럽 음악여행, 12일간의 짧은 충만이여, 안녕.

글•안세희 
대학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음악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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