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제목 다음을 떠올린 이들의 논리가 뛰노는 곳 –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제목 다음을 떠올린 이들의 논리가 뛰노는 곳 –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22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준(손이용)은 자신의 꿈을 앗아간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격연습을 시작한다. 그러나 영 사격에는 소질이 없고, 자신이 오랫동안 해오던 목공일로 익숙해진 몽키 스패너와 드라이버, 건타카를 들고야 훈련에 능률이 오르기 시작한다. 복수에 이를 갈던 영준은 갈고닦은 실력을 무기삼아 옥상에서 거대한 무리와 당당히 맞선다. 이 내용만으로는 언뜻 비장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의 제목 <오늘도 평화로운> 다음의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이라면 이 복수극의 ‘꼬라지’가 어떤 모양새일지 훤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영준의 머리 정중앙에 고속도로를 놓았고, 사격연습은 닭뼈로 만든 BB탄 총알이 들어간 총으로, 옥상에서의 대결에서는 흰 런닝셔츠 위로 우스꽝스러운 작업용 벨트가 어정쩡하게 덮은 복장으로 그를 설명한다.

 

사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예상되는 황당함은 이미 2010년대 초반 문화적으로 유행했던 정서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나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치부하면서도 드러냈던 묘한 자신감, 맥락 없는 과격함이나 무한한 재능 혹은 이성의 낭비 등은 병맛이라는 유희로 정리되었다. 웹툰에서 부터 시작되어 역시 웹툰에서 매우 도드라졌던 이 정서는 2000년대 후반 온라인을 배회하다 2010년대 초 대중문화 전반으로 퍼졌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지만 2019년이 된 지금은 꽤나 희석되어 버린 감정 중 하나이다. 이젠 빈틈없이 짜인 스토리와 그로 인한 해석의 논쟁 가능성과 참여,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러티브의 개연성이 웹상의 주요 논쟁거리이며 그만큼 정반대의 정서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추리가 가능한 서브플롯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 놓인다. 그러니까 <오늘도 평화로운>은 어찌 보면 낡은 정서를 앞세운 영화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중심에 두면서 밑도 끝도 없는 병맛의 유희보다는 그곳을 경유하는 이들의 절박함과 처절함을 중심에 두고 그들만의 논리로 영화를 채운다. 누군가의 손을 탄 물것들을 거래하려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이라는 영토를 바탕으로 각자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이들이 모인 사소한 듯 보이지만 매우 거대한 이 ‘나라’ 속의 법칙이 <오늘도 평화로운>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 나라에 속한 이들끼리 합의한 법칙, 즉 내가 원하는 상품을 찾기 위해 배회하고, 거래를 (시도)하고, 그 제품을 받기까지의 전 과정에 속한 절박함이나 허무함, 혹은 상대의 얼토당토 않는 제안 등은 결코 ‘평화롭지 않으면서’ ‘평화롭다’고 이야기하는, 거래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끔의 희열과 또 가끔의 억울함과 혹은 가끔의 불안과 기쁨 등이 이 영화 속 그들끼리의 논리와 맞닿는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큰 꿈을 품은 채 목공일을 하던 영준이 목표로 삼은 것은 맥북의 중고거래였다. 영준은 자신이 원한 제품이 자신이 살 수 있는 금액에 올라왔다는 기쁨과 원하는 이들이 많아 빨리 입금해야 거래가 성사된다는 다급한 말에 입금부터 해버리는데, 그 후에야 클로즈업되는 이미지 엑박, 개인정보의 미비, 거래내역의 삭제와 같은 컷들은 이 나라에서의 거래가 어떠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영준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며 먼저 거래했던 연락처에 연락을 해보고, 은행을 통해 거래정지를 요청해 본 후, 가장 최종적으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이 지금 당장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영준의 불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세한 피해사항을 빼곡히 작성하는 것이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영준은 보이스 피싱으로 사람들을 낚는다는 중국으로 향한다.

즉 이들의 불안과 절박함은 바깥에서 그저 그런 일 정도로 처리되고 쉽게 무시된다. 그렇기에 그들만의 논리가 더욱 굳건해야 할지 모른다. 영준은 중국으로 향하기 위해서도 다른 무엇보다 인터넷 속 정보를 신뢰한다. 사실 중국으로 밀항하는 법이나 가장 싸게 가는 법 등은 누구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낯 뜨거울 일이겠지만 순식간에 정보를 쏟아내는 모니터 앞에서 이러한 질문은 쉽고도 건조하게 활자화된다. 그들이 자신이 팔고자 하는 혹은 사고자 하는 것들 온라인상에 올려 정보를 주고받고 거래하는 것도, 터무니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네고요청이 가능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할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창피를 털어내는 의연함, 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뻔뻔하게 전환시키는 순간들은 이 영화가 달려 나가는 에너지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여러 영화에 대한 어설픈 패러디들로 가시화되는 장면들이다. 영준의 머리에 고속도로가 난 것은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깔고 있는 <아저씨>의 패러디가 낳은 참사이며, 그 외에도 <악녀>나 <암살>, <해바라기>, <부당거래>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중요한 것은 영준의 머리가 참사인 것처럼 이 영화들 역시 황당한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며 바로 이 뻔뻔함이 이 영화가 가진 그들만의 논리를 표현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비단 이 영화들의 패러디 뿐 아니라 인천역 앞에서 카메라 팬만으로 차이나타운을 곧 중국으로 돌려놓거나, 그렇기에 뻔히 곳곳에 한국어가 보이는 데도 중국이라 우기는 황당함은 그렇게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또한 영준이 중국에서 만난 가족들과의 대화 역시 이와 닿아 있다. 영준은 자신들에게 사기를 친 박병춘 일당에게 잠입하여 고초를 겪고 그들에게 복수를 준비하는 가족들과 만나 함께 복수를 준비한다. 당연히 그들은 ‘중국인’이지만 영준과의 대화를 손쉽게 이어나간다. 영화는 영준이 주성치 영화로, 상대 가족들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한국인 엄마 덕으로 서로의 언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간단한 개연성을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그들의 대화는 (엉뚱한 자막이 없다 해도) 이 개연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관객들 역시 알아들을 법한 것들이다. 이 자막들은 그들만의 대화가 얼마나 경제적(?)인지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유희로 작용하면서 그들의 세계 속 유대를 보여준다.

<오늘도 평화로운>은 그들의 세계가 꽤나 오랫동안 켜켜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구축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준은 중국으로 건너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다 어두운 터널에서 자신을 보며 ‘노트북?’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비웃는 한 청년을 만난다. 거지행색을 한 이 청년은 ‘소니’노트북을 사려다 사기를 당한 후 14년간 노트북을 찾기 위해 배회했다고 이야기 한다. 소니에서 애플로 청년들의 기호가 전환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는 긴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거래법을 이어갔던 이들은 이제 행색과 걸음걸이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이 되어버렸다. 참사에 가까운 영화들이 패러디처럼 그들의 논리는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저씨>에서 방탄유리를 뚫었던 총이 없대도, 방탄유리가 아닌데도 뚫지 못하는 건타카만 손에 들었다 해도 차에 든 이가 실수를 한다면 이 어설픈 무기로도 복수를 못할 것은 없다. 이들의 논리는 이들이 구축한 나라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이상 평화롭지 않은 것이 평화로운 것으로 대체된대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늘도 평화로운>(2019.4.4.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