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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유
그들이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유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4.30 17:4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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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티스트 인플레’의 시대다. 헤어 아티스트에게서 머리손질을 받고, 네일 아티스트에게서 손톱단장을 받으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피부 마사지를 받고, 팝 아티스트와 랩 아티스트, 재즈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긴다. 그러다가 무료하면 낯선 어나니머스(Anonymous) 아티스트의 실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연애전문가인 픽업 아티스트의 코칭을 받아 푸드 아티스트가 요리한 음식을 맛보며,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남자 또는 여자가 될 사람과 함께 자신이 즐기고 꿈꾸는 ‘예술적’ 삶을 늘어놓는다. 민주화 이후 예술의 대중성이 확장된 덕택인지, 일상 속에서 아티스트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꿈은 사라지고>, 2015-골라즈 아프라즈

아티스트 인플레 시대 

한때 소수의 엘리트 문화예술인들에게만 부여되던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정작 그동안 ‘아티스트’을 독점해왔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정도다. 원래적 직업군으로서의 아티스트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지난해의 ‘#미투’ 시즌 때는 무용, 연극, 미술, 영화, 문학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많은 ‘아티스트들’의 일탈이 폭로됐고, 최근에는 버닝썬의 마약 및 성폭행 사건에 몇몇 가수와 배우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연 아티스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혹자는 마약 및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물과 비료로 속성 재배된 화초처럼, 막대한 자본으로 인위적으로 길러진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애써 이들에게서 아티스트라는 딱지를 떼어내려 하지만, 중매쟁이와 요리사까지 픽업 아티스트와 푸드 아티스트라는 ‘세련된’ 용어로 치장하는 마당에 오히려 공허한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아티스트는 예술 활동, 즉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특히 아티스트들은 출세와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심취해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사회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치열한 예술정신은 인정받는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물적으로 생활이 궁핍할지라도 고단한 일상의 삶을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버텨왔으며, 그렇기에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격제도가 없는 탓에 아티스트의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예술 활동을 업으로 삼으면 ‘아티스트’로 불린다. 아티스트에게는 미적 감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창성과 원본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리듬을 다루는 뮤지션에게는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찰나적인 현장성이 중요하다.

 

아티스트도 복제되는 세상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발터 벤야민은 아티스트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에서 내뿜어지는 감동과 그 신비로움을 ‘아우라’라고 불렀다. 그러나 카메라와 레코드 같은 복제기기의 등장으로 뮤지션들의 아우라는 더 이상 유효치 않은 세상이 됐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 사진, 미술, 소설, 뮤지컬, 연극 등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서 컴퓨터 기술에 힘입어 혼성모방과 융합의 과정을 거치며, 과거 벤야민이 아우라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창작 예술의 독창성과 원본성, 현재성이 굴절되고, 훼손되고 변형됐다.

오히려, 모방과 복제와 반복의 과정을 거친 예술이 대중에게 더 깊게 파고드는 게 현실이다. 벤야민은 현대예술의 복제성 탓에 예술의 원본성에 깃든 아우리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다량 복제된 예술의 세속성이 자리한다고 지적했는데, 필자는 여기에 자본 축적의 무한 욕망을 추가로 들고 싶다. 단적인 예로, 수많은 아이돌 아티스트들의 춤과 노래들을 라디오, 공중파 TV, 음악 전문 케이블 TV에서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됐고, 특히 유튜브나 SNS에 이들이 얼마나 많이 노출되는지가 인기와 수입의 척도가 되는 세상이 됐다. 

음악만 아니라 아티스트 자체가 마치 무한 복제되는 형국이다. 생김새와 옷차림이 같은 10여 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리듬에 맞춰 똑같은 제스처를 하며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인공지능(AI) 로봇이라도 이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네오가 복제된 수많은 스미스 요원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컴퓨터그래픽(CG)이라는 것이 너무 드러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늘구멍 뚫기만큼이나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아이돌 그룹의 연습생이 돼 수많은 연습을 거친 결과일 것이다. 

코스닥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형 연예기획사의 상업적 기획에 따라, 속성재배 되다시피 한 아이돌 아티스트들(어쩌면 팬들은 이렇게 표현하는 필자에게 꼰대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은 시시각각 주식시세를 들여다보는 투자자들의 매력 있는 투자 상품으로 각광받는다. 기획사 대표들은 각종 공개오디션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직접 심사위원으로 나와 자사의 주가를 올려줄 ‘상품’ 후보군을 고른다. 케이블 방송 Mnet이 2009년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를 선보인 뒤, 그 후 많은 방송사들이 경쟁하다시피 랩, 트로트, 밴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사실 대형 기획사들의 ‘기획’이 작용한다. 

아이돌 아티스트들은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반복적인 연습에 매달린 나머지, 자신만의 음악적 철학이나 예술적 세계관을 가질 여유가 없다. 신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알리기 위해, 또 이미 스타덤에 오른 이들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코미디언들과 함께 ‘아무말 대잔치’을 벌이며, ‘예능력’이라는 순발력을 발휘한다. 대본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에서 순발력을 인정받으면, 여러 채널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게 되며, 마침내 인기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되는 식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연예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이른바 예능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나마 소수의 인기 스타들이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TV채널을 독차지한다. 오락 프로그램으로 변질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예능 프로그램은 이보다 훨씬 많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정에 뉴스, 드라마, 교양, 오락 등의 방송 시간 비율이 적시돼 있겠지만, 이 규정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돈벌이에 질주하는 아티스트들  
   
우리 사회에서 아티스트의 인기는 곧 돈과 직결된다. 그래서 방송에 많이 노출되면, 그만큼 지명도가 오르고 또 상업광고(CF) 모델 출연으로 이어진다. 대중적인 아티스트든지, 클래식 아티스트이든지, 인기가 좀 있다 싶으면, 방송을 통해 스스로 (농담조이지만) 노골적으로 CF 출연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CF에 출연하느냐가 인기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정도다. 드라마나, 영화, 노래로 인기를 얻은 아티스트들이 10여 편의 CF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대중들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입할 때, 그 기능과 품질을 따지기보다는 누가 광고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대중들이 스타 아티스트들이 홍보한 제품을 더 신뢰하는 현실인데, 어느 스타가 CF 출연을 마다할 수 있을까? 

CF 출연 외에도 스타 아티스트들의 돈벌이 영역은 식당, 카페, 술집, 부동산을 가리지 않는다. 속성 재배된 화초가 금세 시들 듯이, 기획전문가들에 의해 ‘웃자란’ 아티스트들은 대중에게 식상해지면 버려지는 서글픈 현실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조금이라도 인지도가 있을 때, 돈을 모아야겠다는 요량이다. 

프랑스나 독일, 심지어 물신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조차 영화배우나 코미디언, 가수가 천문학적인 출연료를 받으며 CF에 출연하거나, 식당, 술집, 부동산 임대업 등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10여 편의 CF에 동시 출연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다. 그건 아티스트로서의 삶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상업적 광고 출연이 법적 금지사항은 아니지만,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 원인이 된다. 아티스트로서의 데뷔와 성공 과정, 지향점과 정체성이 우리와 달라서일까? 

30여 년 전, 프랑스의 유명배우 소피 마르소가 드봉 화장품 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국내 팬들은 인기 절정의 소피 마르소가 안방 TV에 나와 입술을 오므리며 ‘드봉’이라고 발음하는 모습에 열광했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그의 한국 CF 출연을 몰랐다. 아니, 그의 출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소피 마르소는 자신의 상업 광고출연 사실이 자국 팬들에게 알려질 경우, ‘아티스트가 돈을 밝힌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CF 출연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아티스트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전문가를 의미한다. 손톱을 다듬는 일이나, 머리를 매만지는 일, 음식을 만다는 일, 선남선녀의 연애를 돕는 일에 ‘아티스트’를 붙이는 것은 그만큼 솜씨가 아름답고 손색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아티스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아티스트’라는 명칭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돈벌이, 출세, 일탈의 발판으로 남용되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아티스트다움’이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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