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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생충>, 경계적 인간의 외줄타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생충>, 경계적 인간의 외줄타기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9.0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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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만 관객 영화 <기생충> 다시 보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실 이 영화는 천만 관객이 불가능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은 한동안 찝찝하고 슬프고 괴로운 감정이 일상을 짓누른다. 그만큼 영화가 강렬하지만 즐겁게 볼 수 없는 영화이다. 영화 애호가가 아닌 이상 현실도 고단한데 뭐 하러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러 돈 주고 영화를 보러 가겠는가? 하지만 <기생충>은 천만 관객을 넘었다. 이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 5백만 정도가 들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믿고 보는 봉준호’의 효과가 2백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가문의 영광을 국민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염원이 2백만, 영화계의 거대공룡인 제작배급사 CGV의 지원이 1백만 정도 보태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일반인은 1회 이상, 영화인은 2회 이상 관람해야 한다’며 떠들고 다닌 나같은 영화평론가도 조금은 일조를 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도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다시 극장을 찾는 관객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평론가인 나도 영화가 그리 잘 이해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영화평론가, 영화애호가 등이 모두 영화비평을 쓴 이후에 이렇게 뒤늦게 마지못해 글을 쓰게 된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느낌이다. 상하 대비의 공간, 함축적인 상징, 수미상관식 구성, 비극적 결말, 꼼꼼한 연출 등. 내가 아는 많은 관객들의 의문이 기택이 왜 살인을 했느냐이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이 비평을 쓰게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개운하지 않다. 빨리 써버리고 행복하다는 착각을 내뱉는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2. 믿음의 벨트와 연기하는 신체: 지상으로의 상승과 지하로의 하강

<기생충>에서 하층계급은 연기하는 신체로 분리된 공간과 배타적 믿음의 벨트에 잠입하여 상층계급의 공간을 공유한다. 우선, 이 영화에서 공간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공간의 상하관계는 계급적 질서를 반영한다. 박 사장의 고지대 주택은 상층계급의 풍요와 교양의 공간이고, 기택네의 반지하 주택은 하층계급의 실업과 가난의 공간이고, 근세네의 지하 벙크는 도망자의 은폐와 추방의 공간이다. 박 사장의 집은 다시 고용주의 공간(2층 침실, 거실, 식당, 정원)과 고용인의 공간(부엌, 주차장, 지하 벙크)으로 분리된다.

다음으로, 하층계급은 위장과 가장의 ‘연기하는 신체’를 통해 고용인을 구하는 배타적인 인적 네트워크인 ‘믿음의 벨트’에 잠입한다. 4수생 아들 기우가 친구의 소개로 명문대 재학생 신분을 위조하여 박 사장의 딸 다혜의 과외교사로 취업하고, 기우의 소개로 딸 기정이 유학파 명문대 졸업생을 가장하여 박 사장의 아들 다솜의 과외교사로 취업하고, 기정의 소개로 기택이 운전기사로 취업하고, 기택의 소개로 아내 충숙이 가정부로 취업한다. 믿음의 벨트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배척하는 배제의 벨트이다. 그 벨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속임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하층계급의 속임수는 기만, 위선 때문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라는 점에서 약한 강도의 비판 대상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층계급은 자신들의 계략과 공간의 공유에 무지한 상층계급을 조롱한다.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네는 위장과 계략을 통해 고용인으로 잠입하고, 신용불량자로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는 근세네는 은폐와 은거를 통해 지하 벙크에 거주한다. 이때 채끝살, 짜파게티, 너구리의 혼합인 ‘채끝살 짜파구리’는 한 지붕 세 가족을 이루는 박 사장네, 기택네, 근세네의 공간 공유를 잘 보여준다. 상층계급은 하층계급의 짜파구리를 별미로 즐기면서 서민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한우 채끝살을 넣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 위장과 은거로 공간을 공유하는 기택네와 근세네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기생충>은 공간의 상하 대비로 계급의 상하 관계를 표현한다. 즉, 공간에서의 분리, 상하 대비, 동시성과 분리, 시선을 통해 계급적 차이, 상하계급의 대비, 다른 계급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 넘을 수 없는 계급적 격차를 표현한다. 우선, 부유한 명문대생 친구가 기우에게 과외를 제안하는 장면에서 친구와 기우를 교대로 보여주는 컷 편집을 통해 계급적 차이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기우가 면접을 보러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 반지하 주택에서 설거리를 하는 충숙과 배웅하는 기택의 모습에서 지상의 거리로 올라가는 기우의 모습으로의 팬을 통해 공간을 분할하며 상하 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또한 기우가 박 사장의 집에 도착하는 장면에서는 로우앵글로 고급주택을 올려다보는 기우의 시선과 뒷모습을 통해 계급적 차이와 인물의 불안을 보여준다. 반면에 면접을 마치고 마중하는 연교와 이야기하는 기우의 모습을 아이레벨로 보여줌으로써 주눅 든 모습에서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엿보거나 내려다보는 인물의 시선과 함께 공간의 동시성과 분리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다른 세계를 욕망하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분리된 공간에서 다혜의 훔쳐보기는 기우에 대한 성적 호기심과 기정에 대한 질투의 시선이고, 기우의 내려다보기는 유리벽으로 막혀 있는 건너편의 상층계급 세계에 대한 욕망의 시선이다. 또한 문광이 지하 벙크로 내려가는 장면은 하이앵글과 핸드헬드로 잡음으로써 하강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문광네에게 정체를 들킨 기택네가 자신의 반지하 주택으로 도망가는 장면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익스트림롱숏으로 담아냄으로써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 추락의 이미지 등을 표현한다.

 

 

3. 배타적 삶과 상생의 삶: 기생/공생과 소유/공유의 대립

<기생충>에서 공간과 사물은 배타적 삶과 상생의 삶을 대비시킨다. 우선 집은 상층계급에게는 개별적 소유물인 반면에, 하층계급에게는 구성원의 향유물이다. 박 사장 집의 거실과 정원의 경우 박 사장네에게는 개별적으로 따로 거실이나 정원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공간이다. 반면에, 근세네에게는 함께 거실에서 음악을 듣고 햇볕을 쬐면서 정원과 풍경을 감상하며 부부의 행복을 느끼는 공간이다. 기택네에게도 함께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정원과 풍경을 감상하며 가족의 화목을 느끼는 공간이다.

다음으로 수석(水石)은 상층계급에게는 독점적 소유인데 반해, 하층계급에게는 공유적 나눔이다. 기우 친구가 선물한 비싼 수석은 자연에서 빼내온 아름다운 돌에 풍요와 번영이라는 의미를 담아 소유하는 물건이다. 기우는 수석을 소유함으로써 부유한 명문대생 친구의 삶을 동경하고, 글로벌 기업 사장의 외동딸 다혜와의 관계로 상층계급을 욕망하게 되면서 수석에 더욱 집착한다. 그래서 반지하 주택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기택이 아내 충숙의 메달을 들고 나오고 기정이 비상금과 담배를 챙길 때, 기우는 친구가 선물한 수석을 품에 안고 나온다. 나중에 아버지 기택이 ‘무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기우는 수석을 무기로 근세네를 해치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기우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서, 근세가 휘두른 수석에 기우가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근세가 찌른 칼을 가슴에 맞고 기정이 죽게 된다. 이후 기우는 수석을 들고 시냇물에 놔둠으로써 소유의 물건에서 다시 공유의 자연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한 지붕 세 가족의 삶은 기생의 삶과 공생의 삶을 대비시킨다. 하층계급의 삶은 상층계급의 관점에서는 기생의 삶이지만, 하층계급의 관점에서는 공생의 삶이다. 기생충은 다른 동물의 몸에 기생하며 영양분을 빼앗아 생활하는 동물이다. 기생충은 중간숙주를 통하여 숙주(宿主, 기생생물이 이익을 얻는 생물)인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 질병을 일으킨다. 기생은 식물이나 동물에서 어떤 두 종사이의 관계 중 한 종이 다른 한 종에게 손해를 주면서 자신은 이익을 얻어 살아가는 관계이다.

하지만 기생생물이 숙주를 죽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네는 고용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침범하거나 해를 끼칠까봐 경계한다. 박 사장네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여자 팬티가 발견되자 윤 기사를 해고하고, 쓰레기통에서 붉은 피가 묻은 듯한 휴지를 발견하자 가정부 문광을 해고한다. 이러한 해고가 취업을 하려는 기택네의 계책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박 사장네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실상 기택네·문광네와 박 사장네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에게 손해를 주면서 자신은 이익을 얻으며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생관계가 아니다.

고용주는 임금을 줌으로써 노동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이때 노동자의 시간과 능력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서비스는 제공일 뿐 소유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박 사장네에서 기택을 아들 생일파티 준비를 위한 장보기에 동원하는 행위나 인디언 분장을 하고 광대짓을 하게 하는 행위는 기택이 제공해야 하는 능력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고용주가 고용자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반대로 고용주가 고용자를 해고하는 행위는 고용자를 죽게 할 수도 있다. 박 사장이 문광을 해고함으로써 근세네를 경제적 생계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이러한 위험으로 인해 근세네가 기택네를 협박하게 만듦으로써 죽음의 길에 빠지게 만든다.

<기생충>에서 현실에서의 추방과 가족의 혼란이라는 미래에 대한 복선, 계급·신분의 대비를 보여주는 팬 등으로 기생/공생과 소유/공유의 대립을 표현한다. 첫 장면에서 기택이 골목에 가득한 기생충 소독약 연기로 자신의 반지하 집을 소독하기 위해 창문을 열자 가족들이 모두 기침을 하며 괴로워한다. 이런 장면은 자신들이 없애려고 하는 벌레 꼽등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이후 기생충으로 취급받는 미래의 모습을 예고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가족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담아낸다. 기우의 친구가 수석을 선물로 갖고 오자 엄마가 먹을 것을 사오지라며 아쉬워하는 장면에서 4수생 아들 기우와 부유한 명문대생 친구의 모습을 왔다갔다하며 보여준다. 이러한 팬으로 두 인물의 계급·신분의 대비와 소유/공유의 대립을 드러낸다.

 

 

4. 유리벽을 사이에 둔 빛과 그림자: 냄새의 침입과 살인의 광기

<기생충>은 냄새의 침입과 살인의 광기를 보여준다. 반지하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 오랜 백수로 인한 중년 실업자의 냄새는 개인의 체향이라기보다는 계급적 냄새이다. ‘김 기사, 가정부, 제시카가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어린 아들 다솜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챈다. 박 사장은 ‘기택의 행동이 항상 선을 넘을 듯 말 듯하지만, (행주 냄새, 무말랭이 냄새같은)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아내 연교의 가슴과 성기를 애무하고 윤 기사의 여자가 흘리고 간 (기정의) 팬티를 언급하면서. 기택네는 박 사장의 집에 취직하기 위해서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는 위장 전략을 성공시키지만, 결국 주거 환경에서 비롯된 냄새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솜은 인디언의 복장을 하며 놀이를 한다. 생일날 근세의 모습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다솜은 고용주의 아들이지만 정신적 이방인이다. 인디언은 원주민이면서 이주민에게 쫓겨나고 학살당하고 특정 공간에만 거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를 구속당한 피해자이다. 하층계급에게는 학살, 주거 등이 진지한 삶, 생존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상층계급으로 가면 놀이, 유희가 된다. 생존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놀이, 유희가 가능하다. 문제의 강도, 느끼는 효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무거운 문제가 누구에게는 가벼운 문제가 된다. 박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냄새에 대해서 혐오감을 말했지만 반지하 주택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냄새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망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의복과 음식물에 들어가는 돈은 적은 돈으로도 향유가 가능하지만, 주거나 집의 문제는 큰돈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층계급에게는 단기간에 취업을 했다고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문제, 불가능한 문제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용주가 없는 집을 일시적으로 점유 혹은 공유하여 그 집을 즐긴다. 근세네는 햇빛을 즐기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풍광을 감상한다. 기택네도 넓은 거실, 확 트인 잔디밭,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한 욕조 등을 향유한다. 사실상 고용주보다 반지하 생활자와 지하 생활자가 더 그 집을 향유하고 즐긴다. 그 집을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감성과 교양이 있고 그 행복에 감사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의 생태계에서 자본을 획득하지 못해 그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불법적으로 몰래 사용하지 않고는 향유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선’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자동차 앞좌석과 뒷좌석은 고용인과 고용주의 선이다. 기정이 자신을 집적대는 윤 기사를 골려주기 위해서 벗어놓은 팬티가 나옴으로써, 박 사장은 (윤 기사) 자기 자리인 앞좌석이라면 용인되는 행위를 고용주의 자리에서 행한 윤 기사를 해고한다. 둘째, ‘기택의 말투와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다’는 것은 바로 기택의 본래의 정체성과 위장된 가면 사이의 선이다.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아오다가 어렵게 얻은 운전기사 자리의 소중함으로 아는 중년의 기택은 자신보다 젊은 박 사장의 은근하게 무시하는 말투와 고압적인 자세를 힘겹게 참아내지만 가끔씩 자신의 속마음이 내비치면서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선에 서있다. 셋째, ‘냄새가 선을 넘어온다’는 말은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의 계급적 선이다.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부유한 상층계급 고용주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가난한 하층계급 고용인을 채용했을 때 맡아야 하는 냄새에 대한 혐오감이다.

이 영화에서 기택은 두 번에 걸쳐 자신의 팔로 눈을 가린다. 첫째, 기택이 거실 탁자 밑에서 기우·기정과 함께 박 사장의 냄새 발언을 들었을 때이다. 박 사장의 ‘냄새가 선을 넘어온다’는 말이 바로 선을 넘어온다. 고용주인 박 사장의 혐오감에 찬 냄새 발언을 가장인 기택이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옆에 있는 기우와 기정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자신의 팔로 두 눈을 가리는 기택의 모습은 자신의 냄새와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가장의 모멸감이다. 둘째, 기택이 수재민을 수용한 체육관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우의 질문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다’라고 말할 때이다. 계획을 하면 계획대로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팔로 두 눈을 가리는 그의 모습은 계속된 실패와 좌절을 느낀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아픔이다. 그래서 기택이 자신의 딸을 칼로 찌른 근세가 아니라 근세의 냄새에 코를 막는 박 사장을 살해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하층계급의 절망과 분노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영화에서 인물들이 햇볕을 향유하는 모습과 유리창 너머의 환한 정원을 바라보는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일조권은 주거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지하 주택이나 지하 벙크에 사는 하층계급에게는 누릴 수 없는 권리이다. 태양의 햇살은 무료이며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이지만, 그들에게는 고용주가 자리를 비울 때 몰래 잠깐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벽은 볼 수는 있지만 건너갈 수는 없다. 기우가 다혜와 함께 다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클래식 공연과 뷔페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정원을 내다보는 장면에서, 실내의 자아와 실외의 세계 사이에는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다.

<기생충>에서 경계를 넘는 손, 유리창으로 인한 공간의 분리,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인물의 절망과 추방을 보여준다. 과외 면접에서 기우가 심장의 박동을 말하며 다혜의 손을 잡는 장면에서 기우의 얼굴, 다혜의 얼굴, 기우와 다혜의 맞잡은 손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계급의 경계를 넘고 싶은 인물의 욕망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햇볕이 비치는 정원의 풍요로움을 내려다보는 기우의 시선이 유리창으로 되비치는 장면에서, 이러한 두 개의 자아와 유리벽은 상층계급에 대한 욕망과 좌절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기택이 살인을 저지른 후 도망치는 장면에서, 박 사장의 집을 나서는 기택의 모습에 강한 햇살이 내리쬐면서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상층계급의 규범과 억압에 노출된 하층계급의 고난과 분노를 빛과 그림자라는 대비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5. 무계획과 계획: 비참한 삶에서 끔찍한 삶으로

<기생충>은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처음과 끝에 지상의 거리, 반지하 주택의 방, 기우의 얼굴을 위에 아래로 내려오는 틸트로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도 살인이 일어난 현장을 고개 숙여 들여다보는 인물의 모습을 처음과 끝에 보여주는 수미상관식 구성과 함께 눈물이 글썽이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기생충>에서도 처음에는 가난하지만 화목한 기택네의 소란스러운 일상 풍경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기정의 죽음과 기택의 실종으로 적막한 모습과 인물의 절망을 나타낸다. 바로 직전에 ‘계획이 있다. 돈을 많이 벌어 이 집부터 사면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면 된다.’는 말과 함께 어두운 지하 벙크 문을 열고 햇살 넘치는 정원으로 걸어 나오는 기택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가능한 현실과 상상으로만 가능한 소망의 대비가 현재의 상황에 처한 인물의 좌절과 아픔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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