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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코미디가 여성을 다루는 법
[이주라의 문화톡톡] 코미디가 여성을 다루는 법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3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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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로드라마, 오해 속에 노출된 여성

 

2018년 2월부터 3월까지 방송된 JTBC 드라마 <미스티>는 고혜란(김남주 분)이라는 화려하지만 위험한 여성을 둘러싼 남성들의 불안과 욕망을 흥미롭게 보여준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초점은 당대 최고의 앵커에서 살인 용의자로 내몰린 고혜란이라는 여성의 삶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성공의 욕망이 강한 한 여성을 위험한 여자로 만드는, 남성들의 시선과 욕망이다.

 

JTBC 드라마 미스티 공식 포스터 (http://tv.jtbc.joins.com/photo)
JTBC 드라마 미스티 공식 포스터 (http://tv.jtbc.joins.com/photo)

아름다운 여성을 위험한 여성으로 만드는 남성의 전형적 시선은 고혜란의 고등학생 시절 벌어진 금은방 살인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어린 시절 고혜란은 금은방 사장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성추행을 당할 위기에 놓이고, 혜란을 사랑하는 친구 명우(임태경 분)는 혜란을 구하기 위해 사장에게 덤빈다. 혜란은 소리친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러니 그냥 나가자고. 하지만 명우는 혜란의 말은 믿지 않는다. 결국 금은방 사장은 죽고, 명우는 혜란이라는 존재를 살인 현장에서 사라지게 한 뒤, 살인범이 되어 감옥으로 간다.

그 후, 혜란은 끊임없이 되뇐다. “명우는 왜 내 말을 믿지 않았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혜란의 말을 믿고, 분노를 가라앉힌 채 혜란의 손을 잡고 금은방을 나왔다면, 명우는 살인자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옛 애인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 고혜란. 사건 담당 형사(안내상 분)와 대중은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라는 고혜란의 일관된 입장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당연히 추문이 따를 것이고, 그 여자는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추문을 없애기 위해서 당연히 옛 애인을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인은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유혹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남성들의 추행에 시달리며, 그러한 위험 상황 속에서 그 여성들은 스스로 그 위험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멋진 남성의 구원을 받지 못하면) 결국 타락할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타락한 여성으로 바뀌는 공식은 이러한 전형적 인식 하에서 이루어진다.

드라마 <미스티>는 고혜란을 둘러싼 이러한 전형적 남성의 시선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사건 담당 형사는 아름다운 여성을 나쁜 여자로 의심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반면 명우 그리고 그녀의 남편(지진희 분)은 다른 남성들의 폭력적 유혹에 노출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의 순정으로 덮으려고 한다. 그들은 고혜란을 사랑하지만, 고혜란이라는 화려한 여자에 대한 전형적인 의심과 불안에서는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믿지 못한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순정남의 형상으로 그려지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여자에 대한 전형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멜로드라마에서 여성은 언제나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연애의 시대’라고 불렸던 1920년대 한국의 연애소설에서, 신성한 연애가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으로 ‘돈의 유혹에 타락한 여성’이 지목된 이후, 아름다운 여성은 항상 부자의 유혹을 받고 타락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래서 한국의 연애소설은 언제나 돈과 사랑의 대립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돈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문제 앞에서 여성은 항상 오답을 제출했고, 답을 맞히지 못한 여성들은 온갖 의혹에 시달리다, 자살로서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2. 스파이물, 국가를 망치는 팜므파탈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의 여성 주인공은 사랑받는 대상이기는 하였다. 아름다운 여성은, 결국에는 타락할지라도, 어쨌든 여러 남성에게 사랑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추리물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아름다운 여성 인물형의 존재는 범죄자로 전환된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파이물의 문법이 식민지 조선에서도 유행을 하면서,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국가의 기밀을 빼내는 여성 스파이의 존재가 부각된다.

식민지시기 한국 추리물의 기반을 다진 김내성의 작품에 나타난 변화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1930년대 후반, 아직 스파이물이 유행하지 않았을 시기의 작품, 『마인』의 여주인공 백은몽은 살인자이기는 하지만, 사적인 영역의 문제에 머무른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모든 남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녀가 행하는 살인은 개인적 원한에 의한 복수일 뿐이다. 반면에 총력전 체제가 강화되면서 스파이물이 정착했을 시기, 1940년대 작품 『매국노』에서 엘리자는 공적인 영역에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자로 그려진다. “엘리자-. 그는, 이태리 여자라는 가면을 쓰고 비밀전 제일선에서 공교로운 화술과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미모를 가지고 제국의 전력을 소모시키고자 암약하는 적국 아메리카의 여간첩이었던 것이다.”

식민지 말기 총력전 체제 하에서 여성은 첩보전의 위험에 노출되어 국가의 기밀을 빼낼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그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하에 가장 유명한 팜므파탈이었던 ‘마타 하리’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봐도 그러하다. 1933년 『동아일보』에서는 마타 하리를 낭만적 사랑의 맥락에서 그려낸다. “그도 일생에 처음으로 순수한 사랑을 알고 나서는 한낱 가련한 여성으로 사형장을 향한다.” 여기에서 마타 하리의 삶은 사랑을 했던 여인의 비극적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하지만 1939년 『동아일보』는 마타 하리를 전쟁의 상황 속에서 국가를 좀 먹는 존재로 그려낸다. “‘패전경국(敗戰傾國)의 요마(妖魔)’이자 ‘아름다운 악마’, 가련한 여성이었던 그녀는 총검과 비행기보다 ‘무서운’ 존재로 변질”했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적과 나의 구분이 명확할 때, 아름다운 여성의 존재는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여 남성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에, 한국의 추리물에서 스파이물이 유행할 때, 팜므파탈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화려한 여성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자로 자리 잡는다.

 

3. 코미디, 경계에 선 여성의 가능성

 

멜로드라마도 추리물도 모두 주체적 욕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특히나 그 여성이 아름다울 경우, 그 여성을 팜므파탈, 나쁜 여자, 살인자, 범죄자로 전환시킨다. 아름다운 여성이 주체적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욕망은 대부분 화려하게 살고 싶다는 속물적 욕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돈 때문에 쉽게 남자를 떠나거나, 조금 더 편한 삶을 위해 국가를 배신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와 달리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욕망하는 여성은 훨씬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는 코미디가 추구하는 웃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상대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는 풍자적 웃음의 경우, 여성은 여지없이 조롱받는 대상이 된다. 조롱의 이유는 사치와 허영, 무지와 비상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그 콘서트>와 같은 코미디 프로에서,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운전 못하는 김 여사에게서 캐릭터 아이디어를 얻어, 상점에서 생떼를 부리며 환불을 요구하는, 정 여사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경우다.

 

키스내기 화투, 별건곤, 1934년 4월.
키스내기 화투, 별건곤, 1934년 4월.

그런데 유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상대에 대한 화해와 포용이 이루어지는 해학적 웃음을 추구하는 유머의 경우,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회복한다. 식민지시기 대중의 흥미를 위해 신문과 잡지에서 기획했던 ‘유머소설’에는 발랄하고 명랑하여 주체적인 여성상이 주로 등장한다. 특히나 유머소설 속에서 재치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인물은 대부분 신여성인 아내이다.

소화나 만문만화 등에서 풍자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신여성은 유머소설 속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기지를 발휘할 줄 아는 센스 있는 가정주부로 그려진다. 대중의 취향을 위한 잡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별건곤』에 1934년에 실린 유머소설, 이아부의 「키스내기 화투」는 남편의 오해로 이혼의 위기에 처했던 아내가 자신의 재치로 그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느 날 ‘나’의 남편은 ‘나’가 다녔던 학교의 교장 선생이 학생들과 키스내기 화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정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는 당시 유명했던 실화 스캔들이다.) 남편은 ‘나’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무조건 이혼을 하자고 한다. ‘나’는 여학교 선배인 은숙에게 얻어온 방책을 풀어 부부 사이의 위기를 모면한다. 그 방책은 남편과 키스내기 화투를 한 판 치는 것이었다. ‘나’는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던 키스내기 화투를 이용하여 남편과의 금슬을 하룻밤 안에 회복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부기를 덧붙였다. “이상에 소개한 영애 씨의 모범가정은 한동안 병적사회현상(病的社會現象)(?)으로 말미암아 가정 비극이 일어날 뻔하다가 주부되는 영애 씨의 재치 있는 기전(機轉)으로 위기일발에서 다시금 전날의 몇 곱절 되는 단란한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에서 필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부되는 영애의 재치와 기지이다.

이 시기 유머소설은 대부분 중산층 부부의 티격태격 소극(笑劇)을 그려내었다. 사소한 오해나 가치관의 충돌로 싸우는 부부의 위기는 남편이나 아내 일방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의 우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이를 바라보는 제3자인 독자의 웃음이 유발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엎치락뒤치락의 과정 속에서, 당대의 상식선으로 기능했던 남편의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담론도 드러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치관으로 등장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모던을 지향했지만,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비아냥거렸던 당시 사회상 속에서 ‘모던’의 가치를 그리고 ‘여성의 욕망’을 주눅 들지 않고 말할 수 있게 했던 장르가 코미디였다.

코미디는 가치관이 변화하는 현재, 그 전환의 지점 사이에 존재한다. 비극이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뇌를 비장하게 드러낸다면, 희극은 그 모든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며 티격태격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즐긴다. 코미디는 기존의 가치관을 승인하면서도 전복한다. 이러한 모순적 양가성이 공존하는 세계가 코미디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화해하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일탈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코미디는 상대에 대한 공격과 조롱에 의존하는 듯하다. 개그 프로그램의 웃음이 소수자 혐오라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코미디는 스스로의 동력을 잃는다.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 같은 약자와 소수자를 놀리며 웃는 것은, 쉽다. 고민이 없다. 결국 강자의 힘과 질서를 강화시킨다. 기존의 가치를 일탈하는 존재들을 웃기게 바라보는 동시에, 일탈적 존재의 시선에서는 나의 존재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너도 웃고, 나도 웃을 수 있다. 이러한 웃음은 나의 존재를 그리고 주류적 가치관을 상대화시키며 새로운 일탈을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

 

글: 이주라(문화평론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한국 근대 대중문학 및 문화 연구.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적 흐름과 감성적 특징에 관심. 명랑을 키워드로 긍정과 낙관의 태도가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과 역사성을 탐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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