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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맥도날드’라는 장소를 사유하는 방식 - 장정일의 시를 경유하여
[이병국의 문화톡톡] ‘맥도날드’라는 장소를 사유하는 방식 - 장정일의 시를 경유하여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2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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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회사에서 좌천된 필용이 종로 맥도날드에 가 16년 전 양희와의 한때를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종로의 맥도날드는 비록 그 시절의 피시버거를 더는 판매하고 있진 않지만 16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있다’. 그 ‘있음’으로 인해 필용은 양희를 추억하고 둘은 재회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있다가 어느 순간 존재와 교차하면서 ‘있음’으로 전환되는 인간관계의 어떤 지점이 특정한 공간을 전유하여 의미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료1] 맥도날드 *출처:맥도날드코리아 홈페이지
[자료1] 맥도날드 *출처:맥도날드코리아

조지 리처의 표현대로 맥도날드는 소비자, 노동자, 경영자에게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를 제공하면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프랜차이즈로 미국의 궁극적인 표상으로 세계에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맥도날드는 맥도날드화된 시스템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에 가능성과 제약의 측면에서 다양한 영향력을 미친다. 물론 이 글에서 그 영향을 다루진 않는다. 어찌되었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예측가능한 표준화된 맛의 맥도날드는 1988년 압구정에 1호가 개점하면서 한국에서도 압도적인 햄버거 체인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자료2] 맥도날드 압구정점 오픈 *출처:맥도날드코리아 홈페이지
[자료2] 맥도날드 압구정점 오픈 *출처:맥도날드코리아

1987년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라는 시집을 낸 장정일은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하위문화를 교양 삼아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절, 햄버거는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었으며, “금이나 꿈” 혹은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에의 명상(욕망)을 햄버거에 대한 명상(욕망)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위세 등등한 미국의 표상이었다. 시 전문을 다 옮기는 어렵지만 부분이라도 보면,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 1/2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 1/2

(……)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햄버거에 대한 명상』개정판, 민음사, 2002)

 

[자료3] *출처:민음사
[자료3] *출처:민음사

부분도 상당히 긴 편이다. 이 시가 발표될 당시만 해도 햄버거는 미국식 삶의 양태로, 추구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윤택한 삶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들어 한국 사회는 미국식 문화를 향유할 정도로 (짧은)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장정일의 이 시는 시대의 문제점을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하고 비판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가 발표되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바뀐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맥도날드가 지배한 이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맥도날드의 표준화, 이른바 맥도날드화 되었다. 또한 그것은 신뢰와 가치 결정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시대의 망탈리테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달라진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료4] *출처:경기도박물관
[자료4] *출처:경기도박물관

28년만에 장정일이 낸 시집 『눈 속이 구조대』에는 흥미로운 시가 실려 있다. 「시일야방성대곡」이 그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 황성신문에 논설을 써서 그 굴욕적인 늑약의 내용을 폭로하고 서명 당사자인 을사 5적과 일본을 비판한 장지연의 비분강개일 것이다. 하지만 장정일은 ‘이 날에 목놓아 우노라’라는 이 뜻의 논설 제목을 가져와 변주한다. 그것도 맥도날드의 폐점을 애도하면서 말이다. 김금희의 소설을 빌려 말하면 ‘있지 않음’이 아니라 ‘아예 없음’의 상태로 바뀐 맥도날드의 폐점은 장정일에게 더 나아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2018년 3월 30일

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이 폐점했다

어찌 이 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

온통 맥도날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

맥도날드가 없는 동네라니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었다

 

성소가 없는 동네에서는

손가락이나 귀가 하나씩 모자란 아이들이

성기가 없는 아이들이

항문이 없는 아이들이 태어날 거야

개와 고양이가 쥐를 낳게 될 거야

 

여기가 체르노빌이야

여기가 후쿠시마야

여기가 평양이야

여기가 락까야

 

한 컵에 두 개의 빨대를 꽂고

이마를 맞댄 채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던 곳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우리의 보리수

거기서 우리는 새처럼 지절댔지

 

온통 맥도날드인 세상에서

우리는 장소를 잃어버렸다

- 장정일,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눈 속의 구조대』, 민음사, 2019)

 

[자료5] *출처:민음사
[자료5] *출처:민음사

맥도날드가 사라진 곳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평양, 락까와 동일한 공간이 된다. 방사능에 오염돼 사람이 살 수 없거나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직 미치지 않았거나 ISIS에 의해 점령당한 곳처럼 생각될 만큼 장정일에게는 절망으로 감각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곳에서 장정일은 노스트라다무스가 종말을 예고한 것처럼 삶을 지속하지 못할 불안을 안고 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불안이 과잉으로 점철되는 시 구절을 보고 있자니 1999년의 휴거설처럼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슬픈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우리의 보리수”가 아주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맥도날드가 미국식 하위문화의 형태로 우리 삶을 점령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맥도날드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가 폐점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며 우리가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장소는 공간과 달리 그곳을 점유한 존재들의 행위로 인해 의미를 획득한 곳이다. 일종의 실천적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장소를 잃었다는 것은 그곳을 장소로 만든 존재의 행위가 의미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장소의 상실은 존재의 상실로 이어진다. 물론 존재는 다른 공간을 장소로 의미화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장소가 사라지면서 그 장소로부터 이탈한 존재는 자신을 증명할 역사를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맥도날드의 폐점 원인을 알아본 기사에 따르면**, 임대료 등의 고정비용 증가를 이유로 들고 있다. 이를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기사의 논조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기사는 맥도날드가 주요 상권의 점포를 정리해 수익성을 높여 인수·합병(M&A)을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보았다. 또한 기사는 한국맥도날드의 수익성 감소를 든다. 연간 매출액이 2013년 1269억 원에서 2014년 1196억 원, 2015년 1051억 원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으며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도 감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적 부진 속에서 한국맥도날드의 신임 대표는 한국맥도날드를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형 성장 대신 수익성 개선으로 경영 전략이 바뀐 것이라 추정하는데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한 ‘몸집 만들기’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업계의 출점 확대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경제적 원인이 맥도날드 폐점의 주된 원인이라고 해도 결국 남는 건 그 공간을 장소로 행위한 존재의 상실이다.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를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정서적·심리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는 인간 실존의 심오한 중심”***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장소를 상실한다는 것은 존재가 실존의 중심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약속과 만남이 행해졌던 맥도날드가 사라져 없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화된 장소는 어떤 면에서 ‘비장소’이기도 하다. 마르크 오제는 비장소를 “어떠한 종합도 이루지 않고 아무것도 통합하지 않으며, 단지 여정의 시간을 허가하면서 서로 간에 구분되고 대등하면서도 별 상관은 없는 개별성들의 공존을 허용”하는 ‘초근대성의 공간’으로 본다.**** 비장소는 이동수단과 인터넷 환경을 비롯해 구체적인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 곳이면서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처럼 스쳐 지나가는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맥도날드 역시 소비의 공간으로 마르크 오제가 주장하는 비장소로 볼 수 있다. 장소와 비장소는 서로 교차되는 지점을 지닌다. 김금희 소설 속 필용과 장정일 시의 화자는 맥도날드를 장소로 감각하는 한편 다른 이들은 그저 잠시 익명성 속에 머무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장소를 상실했다고 말하는 장정일의 저 언술이 지닌 의미의 가능성일 것이다.

 

최근 싸이월드 홈페이지 도메인 사용 만료 뉴스를 보았다. 인터넷 공간은 전형적인 비장소이다. 그곳은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며 익명성을 담보한 채 자유로운 고독을 향유하는 곳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역시 특정한 계정을 ‘점유’하여 ‘영토화’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맥도날드처럼 장소가 되었다. 싸이월드는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인터넷 커뮤니티로 시작한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다른 SNS가 등장하면서 쇠퇴하다가 이용자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남은 것은 데이터이지만 그것조차 백업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장소는 사라지고 그 장소 안에서 행위 했던 존재의 데이터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존재는 이제 자기를 증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장정일의 「시일야방성대곡」의 문체를 돌아보자.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햄버거에 대한 예찬이 아니듯 「시일야방성대곡」 역시 맥도날드 폐점에 대한 애도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맥도날드라는 비장소를 장소로 여기며 의미화 했던 존재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장정일의 이번 시집에 있는 다른 시들과 연결지어 보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필자가 다른 지면을 통해 이야기했듯이 중요한 것은 장소의 상실이 존재의 망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 공간을 장소로 의미화했다고 생각한 그곳이 어쩌면 세계의 시스템이 우리에게 강제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맥도날드 이후 우리의 일상을 점유한 스타벅스가 “간편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보이고 그 덕분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세계를, 특히 한국을 장악”*******한 것처럼 그 안에 든 전략을 사유할 필요가 있겠다. 장소의 상실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존재의 실존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사진출처 : 맥도날드 홈페이지, 민음사 홈페이지, 경기도박물관 홈페이지

 

*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개정8판, 김종덕·김보영·허남혁 옮김, 풀빛, 2017, 42쪽.

** 이선애, 「[굳이 알아본]맥도날드, 30주년 생일에 무더기 ‘폐점’...과연 임대료 때문일까요」, <아시아경제>, 2018년 4월 5일자 참조.

https://www.asiae.co.kr/article/2018040507301903500

***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 2005, 288쪽.

**** 마르크 오제, 『비장소』, 이상길·이윤영 옮김, 아카넷, 2017, 133쪽.

***** 손원태, 「싸이월드 역사 속으로, 네티즌 “미니홈피 백업만이라도”」, <경인일보>, 2019년 10월 11일.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91011001149121

****** 졸고, 「장소의 상실, 그 탈주에의 가능성」, 『현대시』, 2019년 10월호.

******* 유승호, 『스타벅스화』, 따비, 2019, 24쪽.

 

글: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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