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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거기 사람이 있어요 - 극장에서 조명되는 ‘노동’
[양근애의 문화톡톡] 거기 사람이 있어요 - 극장에서 조명되는 ‘노동’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2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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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과 실존

흔히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말을 관용구로 내뱉지만, 노동이라는 단어는 땀에 전 작업복, 닳아빠진 신발, 거친 손, 검은 얼굴과 같은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노동자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파업 현장에 모인 깃발 아래의 사람들, 굴뚝에서 전광판에서 크레인에서 첨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 노동은 광장에 모인 노동자의 검은 얼굴로, 피해자의 낙인으로 타자화 되고 대상화 되어 왔다. 실상 인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무수히 많은 노동을 하지만 일상의 차원에 흡수 되는 노동은 좀처럼 의미화 되지 않는다.

경제 개발 시기, 산업화의 역군으로 칭송 받았던 노동자들은 독재 정권에 의해 이념적으로 불온한 자들로 낙인 찍혔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근로가 사용자에게 종속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실하게 노동하되 권리를 주장하지 말라는 명령이 ‘근로’라는 용어에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2017년,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에서 유래된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교체하자는 법안이 발의되고 2018년 대통령 개헌안에서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안이 발표되었다. 언어가 실재를 곧바로 반영하지는 않지만 언어의 변화가 실재의 변화를 견인한다는 점을 믿고 싶어진다.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신자유주의 체제로 빨려들어가면서 임금 노동의 위계가 세분화 되는 등, 이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의 문제는 공적 영역의 그늘 아래 있되 사적 책임의 문제로 봉합되고 있다. 노동유연성과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구조적인 차원이 아니라 마치 개인의 역량 문제인 것처럼 호도되는 현실인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노동이 국가와 사회와 같은 공적 현실보다 개인의 실존에 미치는 영향을 더 섬세하게 다루게 된 것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 <송곳>

2013년 12월부터 웹툰으로 연재되고 2015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송곳>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송곳>은 직장인의 애환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인 갑에게 대응하는 을의 위치에서 개인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핍진하게 다루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구고신의 대사는 노동운동에 대한 희망이나 절망에 기대지 않아도, 노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움직임 그 자체가 생존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임을 말해준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2015)이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섣부른 희망 대신 실패할 것이 자명하지만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는 쪽을 택하는 모습을 통해 애초에 불가능한 선택지를 내민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념이나 이론으로 삶을 해석하지 않고 노동하되 도구화 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 천착하는 일, 최근 연극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 극장에 틈입하는 현실

2014년 쌍용자동차 노조에게 경찰과 회사가 청구한 소송금액 47억 원에 대해 한 시민이 아이의 태권도 학원비 4만 7천원을 보내면서 시작된 ‘노란 봉투 캠페인’은 연극 <노란봉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제안을 처음 했던 배춘환씨는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말이 안 되는 금액과 부당한 상황을 접하고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시 이효리가 이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그 일로 좌파 연예인으로 낙인찍히기도 하는 등, 경색된 정치 분위기에서 진행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노란봉투>는 안산 반월공단 파업 사태를 세월호 이후라는 자장에서 다룬다. 극 중에서 가압류를 견디다 못해 기업 노조에 가입한 ‘민성’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고 결국 자살하는 이야기는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다르지 않음을 환기시켰다. <노란봉투>는 매회 공연마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실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등장시켰다. 뉴스를 통해서 접했던 굴절된 진실은 당사자들을 통해 무대에서 현실화 되었다. 문화방송 노조, KTX 승무원 노조 등 파업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고충과 그들이 파업을 지속해갈 수 있는 동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무력화 시킨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올해 봄, 종로구 청계천로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 개관했다. 새로 들어온 건물들과 청계천 공구 상가가 함께 기거하는 청계천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맞은편 자리에 세워진 전태일 기념관 외벽에는 1969년 12월 19일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편지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전태일의 희생으로 이 나라의 노동 현실은 비참에서 벗어났지만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사용자의 횡포는 더 교묘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반기 전태일 기념관 공연장 울림터에 올라간 세 편의 연극은 변화한, 그러나 변하지 않은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개관초청작으로 올라간 <자본>(김재엽 작/연출)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극인들의 생계를 통해 설명하면서 자본의 정체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공연이다. 상반기 지원 선정작 <섹스 인 더 시티>(송김경화 작/연출)는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통계 수치를 통해 드러낸다. 이 두 편의 공연 역시 최근 연극의 어떤 흐름, 즉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드라마적 재현을 거치지 않고 인물이나 상황에 연민의 감정을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면서 관심을 촉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국립극단 ‘연출의 판’ 시리즈의 주제가 ‘노동’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세월호와 블랙리스트, 검열 사태를 겪으면서 연극이 현실의 문제에 더 깊이 있게 더 객관적으로 파고드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이후 국가를 향한 분노와 주권자로서의 우울, 유가족을 보면서 느낀 죄책감과 무력감은 연극이 더 이상 현실 바깥의 위로이거나 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광장에 세워진 블랙 텐트에서, 대학로 소극장에서, 거리에서 연극은 관객을 동시대 시민으로 호명하고 우리가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 모든 불행과 비극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환기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3. 파업, 노동자의 가족과 이웃들

프랑스에서 1885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은 작가가 프랑스 북부 앙장 탄광의 파업 사태를 직접 돌아본 후에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열악한 탄광의 노동환경, 계속되는 파업, 군인들의 개입과 결국 속출하는 사망자들. 프랑스 혁명력의 일곱 번째 달을 뜻하는 ‘제르미날’은 가난, 기아, 폭동, 폭력 등이 난무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과 정치적 주체화를 다루고 있다. 백석현 연출의 <제르미날>은 원작을 최소한의 단위로 압축시키되 탄광이라는 공간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끔 함으로써 노동의 물질성을 보여준다. 깊고 캄캄한 갱도를 내려가고 탄을 캐는 위험한 상황은 무대 한쪽에 마련된 거대한 환풍구와 엷은 조명에 퍼지는 먼지 입자, 육중한 소리들로 쌓아올린 공간을 통해 구현된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할 수 없는 감각적 체험이 이 공연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대 양쪽에 일렬로 마련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무대 넘어 다른 관객의 관찰자적 태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노동을 체현하는 육체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신체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했다.

 

연극 <제르미날>

대량 해고와 파업 사태가 환기하는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파업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장기화 된 파업으로 인해 침체된 도시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전태일 기념관 상반기 지원작 <개천의 용간지>(한현주 작, 백석현 연출)와 연우무대에서 공연된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는 파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내면을 펼쳐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천의 용간지>는 쌍용자동차 사태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연극 속 ‘OO고등학교’ 아이들은 부모나 부모의 친구, 친구의 부모가 해고노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화 된 파업 사태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영화 동아리 학생들은 파업 사태를 영화로 찍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연극은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파업 사태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업이 해고 노동자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노동이 파업으로 인해 가시화 된 특정 기업의 노동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다. 노동의 의미를 임금 노동만으로 축소하거나 자본을 기준으로 위계화 할 때 드러나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극 중에서 스무 번째 자살이 일어나고 영화제 공모 마감이 다가오면서 학생들은 고장 난 텔레비전 두 대를 가져와 해고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즉흥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일하던 공장에서 생산된 텔레비전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서 텔레비전을 때려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장 난 텔레비전을 본 아저씨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장비를 챙겨와 텔레비전을 고쳐낸다. 회사는 미울지 몰라도 회사를 다니며 만든 텔레비전에는 자기들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생산성을 위한 수단으로 노동자를 고용했을지 모르나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 일자리를 잃고 월급을 받지 못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노동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실존을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보여준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지금도 강남역 8번 출구 철탑에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크레인에서 망루에서 송전탑에서 굴뚝에서 전광판에서 교각에서 성당에서 농성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파인텍 굴뚝농성에 힘을 보태며 구상된 <이게 마지막이야>는 고공농성을 하다 내려온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아내 ‘정화’를 중심으로, 아내가 일하는 편의점 점주, 이전에 일했던 편의점 알바생 ‘보람’, 아이들 학습지 선생님 ‘선영’, 남편의 동료 ‘명호’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노동의 현실을 조명하고 있다. 연극은 편의점을 주요 무대로 하고 있지만 편의점 바깥의 세계 역시 여러 겹의 노동 현실이 교차되고 있다. 편의점 점장과 정화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이지만 정화는 다시 학습지 선생님 선영과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에 있다. 또 선영은 학습지 회사에 고용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화에게 밀린 학습지 비용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편의 후배인 명호가 찾아와 농성 당시 빌린 돈 삼백 만원을 달라고 하자 정화는 점장에게 삼백 만원을 빌리게 된다. 점장은 보람이 찾아와 미지급한 수당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정화는 보람이 일방적으로 하고 간 약속 때문에 난감하다. 보람의 요청 때문이 아니라 다른 알바생이 본사에 연락했기 때문에 밀린 수당 사백 만원을 입금하는 점주의 모습이나, 여기 저기 돈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정화의 모습, 밀린 학습지 비용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선영의 모습,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면서 꿈을 유예시키는 보람의 모습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연극은 인물들 사이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몰고 오는 연쇄적인 불안과 불행을 그려낸다. 개인의 삶은 여러 관계들로 얽혀 있고 그 관계들 사이의 약속이 계약서나 법에 의한 것이든 인간적인 신뢰에 의한 것이든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는 듯하다. 어느새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 논리에 적응해가던 정화는, 부조리함을 느끼고 편의점을 점거한 보람을 편의점 바깥에서 바라본다. 그는 점장의 지시로 열쇠를 찾았지만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메모를 유리창에 붙이고 편의점 문을 잠근 보람에게서, 현장에 오지 않고 전화로만 상황 종료를 지시하고 보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점장에게서 파업 투쟁의 현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 안 여실 거예요?”하고 묻는 선영에게 “안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정화가 말할 때, 우리는 수많은 현장에 있었던 거기, 그 사람들에 대해 기억할 수밖에 없다. 거기, 굴뚝에, 크레인에, 송전탑에, 망루에, 전광판에, 교각, 성당에, ‘사람’이 있다.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그들과 같은 노동자인 우리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일에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와 닿는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로 세계를 만드는 존재다.”(1)

 

4. 일상, 노동, 연극

2014년 4월 16일 이후 교복 입은 학생들을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듯이, 2016년 5월 17일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를 무심히 지나칠 수 없듯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 열어 놓은 ‘해방적 파국’(2)은 우리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연극은 어떤 매체보다 민감한 촉수로 변화된 현실을 건드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동’은 최전선의 화두로 극장에 도착했다. 노동을 노동자와 분리하지 않고 노동을 극적 재현의 소재로 대상화 하지 않는 방식은 지금 연극의 윤리적 태도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대량해고와 파업과 같은 사회적 사건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노동의 미시적 국면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육아와 집안 일 등 임금 노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화 되지 않았던 돌봄 노동의 문제를 풀어낸 공연이 늘어나고 있고 여성의 꾸밈 노동에 대한 페미니즘적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연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한다. 노동의 소외는 존재론적 소외와 연루되어 있다. 일상과 노동의 접점을 넓히고 현실을 향해 열린 극장 문을 열어 각자의 자리에서 해내고 있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할 것 같다.

 

* 사진 출처

<송곳>: JTBC 송곳 공식 홈페이지

전태일 기념관: 네이버

<제르미날>: 극단 창세

<이게 마지막이야>: 박태양

 

* 주석

1) 이양구, 『호모 파베르의 인터뷰』, 도서출판 제철소, 2016, 10면.

2) 울리히 벡(Ulrich Beck), 「해방적 파국: 그것은 기후변화 및 위험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한국일보』, 2014. 7. 8.

 

글: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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