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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기획을 예비하는 이웃나라 알제리
급진적 기획을 예비하는 이웃나라 알제리
  • 카데르 아브데라힘
  • 승인 2011.02.14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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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혁명, 연쇄와 징후]

튀니지의 중부 시디부지드에서 폭동이 일어나기 전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도 폭동의 물결이 강타했다. 정치 지도층을 불신한 시민들은 물가 폭등에 따른 생활수준의 악화에 항의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알제리를 뒤흔든 대규모 소요 사태는 튀니지 폭동에 묻혀 처음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곳 시민들의 결집과 투쟁 의지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국가헌병대 발표에 따르면, 2010년에만 알제리 전역에서 총 1만1500건의 폭동 및 시위, 집회가 발생했다.(1) <<원문 보기>>

알제리 정부는 2011년을 맞이해 새로운 조세정책을 발효함으로써 비공식 경제를 제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즉, 기업에만 해당됐던 부가가치세 의무를 개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세계시장의 물가 상승도 한몫하면서 식용유·설탕·밀가루 같은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현금 유통 감시와 사회보장 부담금, 즉 세금 납부율 향상을 목표로 50만 디나르(약 5100유로) 이상의 모든 거래에 수표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이미 생활조건이 열악한 국민(알제리의 평균 월급은 1만5천 디나르, 즉 153.5유로다)에게 물가 급등이라는 즉각적인 결과를 초래했다(한 예로 설탕 가격은 30% 올랐다). 암시장 거래도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만만치 않은 타격을 받았다. 결국 이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지난 1월 4일부터 10일까지 알제리 전국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까지 투입되며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약자만 죽이는 조세개혁, 그리고 폭동

사회 공동체는 안중에 없이 독선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은, 암시장 척결에도 무관심하고 임금노동자의 의무만 늘릴 정책에 대해 국민을 이해시킬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알제리 노동자총연합(UGTA)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의무에서 면제되는 노동자는 알제리 총노동자 중 1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2) 몇몇 경제학자가 유통망 및 금융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지하경제를 단계적으로 감소해나가자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묵살됐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지난 1월 4일께 시작된 시위가 빠른 속도로 확산돼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최소 3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다쳤다.

▲ <알제>, 2002-브뤼노 하지흐
알제리에서는 보통 ‘트라벤도’(3)라고 불리는 불법 유통망을 통해 막대한 자금이 거래되고 있다. 트라벤도는 석유파동 이후 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198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그 뒤 암시장에서는 유럽에서 밀매된 제품이 거래됐다. 현재 트라벤도에 종사하며 거대한 비공식적 암시장을 형성한 수천 명의 알제리 젊은이들은 거리에 집결해 법령 철폐를 이끌어낼 때까지 경찰에 폭력적으로 대항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소득세와 관세, 부가가치세 인상은 오는 8월까지 유보됐고, 그 뒤 재정법에 대한 의회 표결이 행해질 예정이다.

이런 충돌은 암시장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셈이다. 암시장이 하나의 사회로 자리잡은 알제리에서 모든 사회개혁은 빈민층에게는 금전적 손실로, 사회의 구조적 부패를 장악한 이들에게는 권력의 손실처럼 여겨진다.

암시장 둘러싼 적대적 공생

최근의 폭동은 지난 10년간 사회·경제의 근본적인 변화와 정치 지도층의 정통성 부재라는 이중구조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구현하려는 공동의 이익이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에 의해 끊임없이 문제시됨에 따라 결국 공동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얻어내기 어려워졌다.

역사 속에서 언제나 패권적·독점적·강제적·보호주의적이던 정부는 더 이상 그것이 진실이든 허상이든 정치적 특성을 구현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대다수 알제리 국민은 국가적인 문제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총선 및 지방선거의 저조한 투표율이 정치적 무관심을 잘 대변해준다.

수십 년 전부터 이런 현상은 악화 일로에 있었다. 알제리에서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회적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됨에 따라 정상적인 국가 기능마저 마비됐다.

교사·상인·군인·공무원 등 모든 사회 분야에 걸쳐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한 인맥이 거미줄처럼 형성돼 있으며, 인맥은 맞교환의 원칙을 기반으로 작용한다. 즉, 무언가를 얻는 대신 처벌을 면하도록 힘써주는 식이다.

이같은 ‘주변부 사회’는 알제리가 독립한 뒤 장기간에 걸친 타락의 과정에서 비롯됐다. 알제리는 독립전쟁을 치른 뒤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시민은 정부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합법적 수단을 통해서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민은 정교한 재능을 개발해 법망을 피하고 정부를 속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런 사회적 습성은 이젠 포기할 수 없는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뇌물은 서비스에 대한 수당 정도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뇌물은 서비스에 대한 팁

시민은 기회만 있으면 ‘둘라’(4)의 행위를 비난하려 들지만 자신의 행태에서 비롯된 정부의 기능 마비와 정치인들의 경영능력 간 연관관계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정부와 국민의 대립은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면서 고조됐다. 실제로 이런 대립관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다.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사회가 공존하는 알제리의 모순적인 상황은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국가의 연대를 위협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알제리 모델은 ‘평등한 교육 기회 보장’, ‘무상의료 시스템 제공’, ‘공기업 내 고용 보장’이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이슬람 무장단체와의 내전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 실행(5) 등으로 알제리 모델은 급격히 붕괴됐다. 이후 구걸과 성매매가 증가하고, 결핵·장티푸스·콜레라 같은 질병이 다시 등장했다. 특히 2003년 5월 알제리 동부의 보메르데스에서 지진이 일어난 뒤 보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백신 접종이 어려워지고 의료 서비스가 기능을 상실하자 완전히 사라졌거나 진압됐다고 믿은 전염병이 다시 창궐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돼 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마그레브식 페레스트로이카 필요

최근 진 엘아비딘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의 축출을 통해, 독재권력은 지지자와 후원자의 두터운 관계 속에 존속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튀니지는 이 관계가 끊어지면서 정권 기반이 급속히 무너졌다. 하지만 섣불리 알제리의 경우와 튀니지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두 국가 모두 다른 아랍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의 시대를 겪었다. 하지만 알제리가 1988년 10월 폭동(6) 이후 쟁취한 자유는 이슬람과의 전투로 입지가 약화됐다. 급기야 1990년대에 발생한 유혈 전투는 ‘민주주의자들’을 분열시켰다. 동족상잔으로 알제리 사회는 붕괴되고 반이슬람적 탄압을 주장하는 정당과 단체들은 소외됐다. 결국 민족해방전선(FLN)이나 민족민주동맹(RND) 같은 정당들에 맞선 정책은 껍데기일 뿐이고, 사회주의세력전선(FFS)을 제외한 어떤 야당도 국민의 요구를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이 주기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더라도 그들의 요구가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한 정부는 이를 주요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뿌리 깊은 사회 불만의 표출도 지금까지 민중의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해온 정권을 위협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오늘날 자유와 정의에 대한 욕구를 정권이 위협적으로 느낄 경우 이들이 군을 동원해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뻔하지 않은가. 정치 지도층의 선택이 무엇이든 간에 야당은 분노로 표출된 민심에 당황해서 이를 정치화하는 데 급급하다. 이는 시간만 지체할 뿐이다. 이제는 마그레브식 페레스트로이카(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실시한 사회·경제 개혁)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글•카데르 아브데라힘 Kader A. Abderrahim 
국제·전략관계연구소(IRIS) 연구원. 저서로 <유일한 목표, 독립>(Paris Méditerranée·파리·2008)이 있다.

번역•배영미 youngmib0222@g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정부는 거리의 메시지를 이해했는가?’, <Liberté>, 알제, 2010년 12월 27일자.
(2) UGTA 사무국장의 발표, 제3라디오의 보도지, 2011년 1월 10일자.
(3) 이탈리아어 ‘contrabbando’의 약어로, 암시장에서 이뤄지는 ‘밀수업’을 뜻한다.
(4) 아랍어로 ‘국가’라는 뜻으로, 넓게는 모든 국가적인 상징을 의미한다.
(5) 1989년 5월과 1991년 6월, 1993년 5월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행됐다.
(6) 1988년 10월 알제리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열악한 생활조건에 대해 투쟁했다. 정부의 진압으로 (공식적으로만) 176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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