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날. 비가 내린다. 날짜로는 겨울비. 촉촉하게 내리는 게 다른 계절의 비 같다. 우산 잡은 맨손이 하나도 시리지 않게 내리는 비.
12월의 첫날 일요일에 비가 내린다. 이른 외출에서 돌아오며 스친 공원에서 지난 계절의 냄새 충만하게 맡았다. 비에 젖어 바닥에 들어붙은 낙엽들이 아직은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로 드러난 맨바닥이 쇼핑 호스트의 언변처럼 번지르르하다.
어쩌다 급체에 걸릴 때가 있다. 과식하지 않아도 먹은 놈이 넘어가길 거부하는 순간이 있다. 현기증과 식은땀에 굴복하지 않고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선다. 크게 두 모서리쯤 돌면 저항이 진압되기 시작한다. 모처럼 나선 비오는 일요일 오후의 산책, 익숙한 거리가 그저 익숙하다. 12월의 첫날이면, 익숙함이 새삼 낯설게 느껴져도 어울릴 법 하건만, 체증인 양 풍경을 서둘러 넘겨버린다.
은행나무가 조용조용 노란 잎들을 떨군다. 어떤 나무는 거의 헐벗었지만 아직 많은 나무들이 제법 넉넉하게 노랑을 이고 있다. 보도에도 많은 노랑이 임재했다. 은행나무에서 잎 떨어지는 게 만일 울음이라면, 은행나무는 웬만해선 통곡하지 않는다. 만일 비오는 12월 1일 오후에 은행나무가 울 작정이면, 돌아서 조용히 운다. 그날이 일요일이면 나무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결코 눈을 맞추지 않는다. 그날 우리는 나무의 등만 볼 수 있다.
개는 내 옆 소파에서 쿠션에다 얼굴을 괴고 보란 듯 잠을 잔다. 개의 눈그늘. 이 나이에 키가 크려는지 선잠 사이로 자꾸 떨어지는 꿈을 꾼다. 겨울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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