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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폰
슬기로운 폰
  • 박이가람
  • 승인 2020.02.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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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폰

 

박이가람 | 대학생 .

현 인류의 정식 명칭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21세기 현대인에게 매우 걸 맞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진정으로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슬기로운 것스마트함을 뜻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실히 스마트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한 기기를 만들고 그 기기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을 이용해 우리의 스마트함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다. 시인 함민복은 폰을 사용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간단히 비유했다.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다. 손가락 두개로 스마트하게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다.” 슬기로운 인간이 슬기로운 폰으로 슬기롭게 세상과 소통한다.

 

스마트폰에 대한 인류의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한껏 열중한 채 걸어가는 현대인들을 스몸비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모포비아와 같이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낳은 신조어이다. 스몸비는 스마트폰 + 좀비의 합성어로, 화면에 머리를 박은 채 좀비처럼 영혼 없이 걷는 사람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맥락의 디터우족(머리를 숙인 사람들)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스몸비족은 보행자 사고율에 매년 큰 몫을 한다. 스마트폰 속의 세상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대체해 주고 있다. 219일 국내 개봉예정인 영화 하이, 젝시는 인간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공지능 젝시는 아이폰 인공지능 시리의 다음 버전으로, 주인공의 라이프 스타일, 심리상태를 모두 파악한 후, 새로운 인생 경로를 개척해 주기까지 한다.

 

인류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정신과 육체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2018년 영국의 일간지 Independent에 따르면, Cambridge Dictionary이모티콘’, ‘유투버와 함께 노모포비아를 그 해의 신조어로 선정했다(lepoint.fr, 2019). 노모포비아란 No + Mobile + Phobia가 합쳐진 단어로, 노모포비아 증후군은 잠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이 증후군은 단순한 불안함을 넘어서 거의 공포감을 느끼는 것을 뜻하며, ‘모바일 세대로 불릴 만큼 휴대폰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10-20대의 현대인에게 흔하게 나타난다. 영국의 Independent는 노모포비아의 의미를 더욱더 확대해, 휴대폰이 없을 때 느끼는 공포감에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이나 SNS에 접속해 있지 않으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불안감 역시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신조어인 만큼 노모포비아에 대한 연구 자료는 많지 않다. 현재는 스마트폰 중독과 함께 현대적 정신질환의 일부로 분류되어 있다.

 

가정불화나 학업, 원활하지 않은 대인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은 쉽게 도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폰 속 세상으로 도피할수록 그들은 점점 더 현실 세상에서 고립되어 간다. 뿐만 아니라 폰 중독은 수면부족 현상을 야기해 정신적 피해로 이어진다. 스크린의 희고 파란 빛은, 그것을 오래 접한 눈의 피로 도를 높이고, 뇌에 교란을 일으켜 두통을 유발한다(영산대 의료경영학과 자료, 2019). 수면 전 폰이나 태블릿 등으로 영상물을 접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잠이 들어도 램 수면 상태로 오래 머물러 있어, 깨어났을 때 몸과 머리는 여전히 피로하다. 너무 쉽게 많은 것이 해결되는 시대에, 현대인의 삶에 대한 욕구와 의지력 또한 저하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의 이러한 행보를 통해 인류와 스마트폰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세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먼저 스마트폰이 점점 진화 발전해 인류를 앞지를 수도 있는 미래다. 이미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가설이다. 시인 권오범은 스마트폰에 대한 현대인의 감정을 때와 장소 가릴 것 없이 한번 빠져들면 눈 뗄 수 없고, 마냥 만지고 싶은 미친 사랑이라고 묘사했다. 미친 사랑은 폰을 단순한 기기를 넘어서 하나의 인격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각자의 폰에 이름을 붙이는 날이 온다면 얼마 후, 스마트폰 진화의 역사가 편찬될 수도 있다. 그 진화론에는 어떻게 모바일로피테쿠스(모바일 + 오스트랄로피테쿠스)’모바일 사피엔스 사피엔스(모바일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발전하였는지가 상세히 적힐 것이다. 그리하여 슬기롭고 슬기로운 폰을 만든 슬기롭고 슬기로운 인간의 슬기로움을 예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스마트폰과 인류의 공존이다. 스마트폰을 이 사회에서 없애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가설이다. 스마트폰에게 인류가 잠식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스마트폰의 기능, 사용, 위험성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학교에서 스마트폰에 대한 과목을 창설할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스마트폰 학원도 등장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떤 면에서 아이들보다 새로운 폰의 기능과 사용법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잘 교육된다면, 스마트폰 중독이나 사이버 범죄 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의 개방적 의사소통이 스마트폰 중독을 완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신라대 상담심리학과, 2019).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의 소멸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기능은 그대로 남지만)폰의 형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소멸하는 미래와, 스마트폰과 그 기능 자체를 인류 보호 차원에서 없애버리는 미래다. 여기서 말하는 스마트폰의 소멸을 후자의 의미로 정한다면, 그것을 노모바일리즘(Nomobilism)’으로 명명할 수 있다. 너무 똑똑한 기기가 인류의 지성과 지능을 파괴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모바일을 폐기할 수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 1권에서 기술 개발 시대의 끝을 보고 난 인류가 점점 원시시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가정했다. 그가 제시한 년도는 2222년으로, 2020년인 지금으로부터 약 202년 후다. 그리 멀지 않다.

 

어떤 방향으로 인류의 미래가 흘러가던, 스마트폰 영역에서 만큼은, 인간은 분명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만들 것이다. 기능을 남기고 편리성을 최대한 높이되, 위험성은 최대한 낮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마트폰이 인류의 마지막 기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바일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역사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한 줄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 박이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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