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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톡톡] 오거돈 성추행 사건에서도 여전한 피해자에 대한 무례
[안치용의 문화톡톡] 오거돈 성추행 사건에서도 여전한 피해자에 대한 무례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26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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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에서 터져 나온 큰 뉴스는 야당은 김종인’, 여당은 오거돈이겠다. 오거돈 부산시장의 직원 성추행과 이에 따른 시장 사퇴는 여러 측면에서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건 자체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가 집무실에서 직위를 이용하여 직원을 성추행한 것으로 요약된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피해자가 추가적인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후자에서는 피해와 피해자를 구분하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차단되면서도 피해에 상응하는 응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관음증적 접근과 가부장제 의식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원론이 잘 지켜지고 있지는 않아, 여전히 피해자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

사건을 다루는 담론의 정규적이고 공식적인 장()이라고 할 중앙일간지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어떠한지를 미디어오늘이 24“‘오거돈 성추행 사건다룬 언론의 문제적 시선들이란 제목의 [아침신문 솎아보기] 코너에서 분석했다. “여전한 표기에 성추행 가해자 ‘34강조하고 몰락했다며 가해자 서사 강조피해자 입장 제목에 넣은 건 경향신문이란 부제가 달렸다. 일단 24일 아침에 발행하는 종합 일간지 1면의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경향신문 “‘성추행오거돈피해자 삶 송두리째 흔들려’”

국민일보 “34기 부산시장, 성추행으로 추락” (사진 기사)

동아일보 공무원 성추행 시인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서울신문 오거돈 시장, 성추행 추락

세계일보 “‘여직원 성추행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조선일보 총선 끝나자 터져나온 오거돈의 성추행

중앙일보 총선 전 성추행 총선 뒤 사퇴” (사진기사)

한겨레신문 직원 성추행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한국일보 또 터졌다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몰락’”

 

미디어오늘은 피해자 입장을 반영한 경향신문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듯하다. 그런 관점도 가능하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큰 제목만으로는 사실 관계를 한 번에 담아내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고 나는 판단한다. 사건은 부산시장 오거돈의 성추행과 이에 따른 시장 사퇴이기에 성추행한 오거돈이 부산시장직을 사퇴했다는 것이 큰제목에 들어가는 게 조금 더 저널리즘에 입각한 접근법이 아니었을까. 큰제목을 가해자 중심으로 기술(記述)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곧 바로 미디어오늘에서 지적한 가해자 서사가 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피해는 단독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피해는 가해에 수반되며,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응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성폭력 사건일 때는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최우선하면서 절차가 진행되어야 함은 상식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공인이고,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사건은 가해자 중심으로 보도되어야 한다. 사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한 피해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게 온당한 보도태도이자 접근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향신문은, 피해자가 자기 입장을 밝힌 만큼 피해자 입장을 큰제목에 넣는 선택을 했는데,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방 혹은 대립으로 제목을 뽑는 것을 피하고 사건 중심으로 냉정하게 가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분석대로 추락’, ‘몰락'이란 표현(국민, 서울, 한국)은 일종의 가해자 서사라고 분류해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정도의 표현을 피할 감각이 이 신문들에 없는 것일까.

조선과 중앙의 큰제목은 그들이 해오던 대로의 편향과 왜곡을 그대로 드러냈다. 성추행 사건을 정치화한 것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해 성추행은 정치적 사건이지만, 그것이 조선과 중앙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정치는 아니다. 조선과 중앙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한 셈이다.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밝혔지만 조선과 중앙은 외면하고 엉뚱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같은 날짜 신문에 경향신문이 반영할 수 있는 팩트를 조선과 중앙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이 신문사 기자들의 취재력이 바닥이란 말인가.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았고, 피해자의 인권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공무원 성추행 시인이란 표현이 들어간 동아일보는 문제가 많은 제목이다. 굳이 한자로 쓴 자의 문제점은 그동안 누차 지적된 바이고, 다른 매체와 달리 시인이란 단어를 넣어 오거돈 전 시장의 미디어오늘 용어로 가해자 서사를 구겨 넣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립적인 제목은, 비록 본문에서 피해자 신상을 짐작케 할 정보를 넣은 실수를 범해 사과했지만 한겨레신문이었다. “직원 성추행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는 이 사건의 핵심을 단순명료하게 전한다. 물론 더 세부적인 정보가 따라오겠지만, 오시장의 몰락이나 추락이 아닌 사퇴라는 팩트를 제시했으며 그 이유가 직원 성추행임을 분명히 했다. 피해자가 직원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직원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계일보 또한 비슷한 제목을 뽑았지만 자를 넣었다. ‘직원여직원의 차이는 별게 아닐 수도 있고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예민한 사안을 다룰 때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감안하며 담론의 장에 들어서야 한다.

오거돈 시장은 기자회견문에서 핵심이 되는 사실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경중을 떠나 어떤 말로도,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사퇴는 하지만 이후 진행될 법리공방에 대비하여 예민하게준비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뜻이 명확한 용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튼 가해자 서사는 가해자 자신에서 시작해서 사회 전반에 여전히 강력하게 통용되고 있다. 담론의 장의 종사자들은 비판의식 없이 가해자 서사를 추수하지 말고 피해자 서정을 배려하는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것이 표정 하나 단어 하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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