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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럭키 몬스터> - 영웅의 죽음, 괴물의 탄생과 폭력의 확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럭키 몬스터> - 영웅의 죽음, 괴물의 탄생과 폭력의 확산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5.04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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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파탄, 가정의 붕괴와 영웅

봉준영 감독의 <럭키 몬스터>는 다단계 판매와 사채로 인한 경제적 파탄과 가정의 붕괴를 다루었으며, 한국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독립영화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럭키 몬스터>는 경제적 난관에 봉착한 일반인의 추락을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력으로 풀어냄으로써 감독의 향후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일반인의 삶을 잠식한 자본의 무게: “똥을 치워야 밥을 먹죠.”

<럭키 몬스터>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도맹수는 똥에 잠식되어버린 밥같은 일반인의 존재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다단계 판매원으로 거액의 사채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사채업자 노민수에게 협박을 받고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위장이혼을 한다. 하지만 이혼하자마자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자, 그는 헤어진 아내를 찾아 나선다. 컨설팅 전문가는 아내 찾기를 의뢰하는 주인공에게 “똥을 치워야 밥을 먹죠.”라며 사채 빚부터 갚기를 조언한다.

그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허용되는 사치인 트램펄린을 타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환상을 꿈꾸며 날아오른다. 그리고 슬프거나 괴로울 때마다 주인공은 기침, 가래 및 목의 염증을 완화시켜주는 약인 용각산을 먹으며 정신적으로 마음을 달랜다. “똥을 치워야 밥을 먹죠.”는 아내를 찾는 것에 앞서 아내와 위장이혼을 하게 만든 사채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는 것이다.

스타일적 측면에서, 영상/사운드의 대비와 상상/현실의 대비는 이상/현실의 간극을 보여준다. 트램펄린을 타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에서는 주인공이 (하늘로) ‘날아오른다.’라고 말하지만, 영상에서는 프레임 아래쪽에서 머리만 겨우 나왔다가 들어감으로써 오히려 (지하로) ‘기어 들어간다.’ 자신의 아내와 사채업자의 섹스 장면에서, 도맹수의 내레이션과 두 사람의 섹스 장면이 함께 결함으로써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폭력의 확산과 영웅-되기의 좌절: “받은 건 돌려줘야지.”

<럭키 몬스터>의 중반부에서 도맹수는 아내의 배신과 폭력의 확산으로 영웅-되기라는 욕망이 좌절된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사채업자의 섹스 장면을 생각하고는, 분노로 두 사람의 살을 녹즙기로 갈아버리는 상상을 한다. 컨설팅 전문가의 조언인 “받은 건 돌려줘야지.”라는 말에 따라, 그는 사채업자를 만나서 과거에 돈을 갚고 폭행을 그대로 돌려준다. 나중에 그는 노만수 부하의 자백으로 자신의 아내가 원해서 노만수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돌아온 도맹수의 아내는 복권을 찾기 위해 남편 몰래 집안을 뒤지고, 그와의 섹스에서 “좋아, 만수씨!”라며 사채업자의 이름을 부른다.

영웅이 되고자 하는 도맹수의 욕망은 아내가 욕망하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허상의 욕망이다. 아내의 배신과 가정의 붕괴로 영웅에 대한 허상의 욕망은 사라지고, 자신이 당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복수만이 남게 된다. 도맹수는 아내가 성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인 사채업자에 대한 동경과 질투로 비현실적인 영웅이 되기를 포기하고 악당의 길로 선택하면서 증오, 복수, 폭력은 점점 확산되어간다.

아내의 배신과 가정의 붕괴에 따른 폭력의 확산은 토끼인형, 손도끼 등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토끼인형이 소파 위에 놓여 있는 장면에서, 도맹수가 아내를 위해서 총을 쏘아 맞춘 경품인 토끼인형은 사라진 아내와의 나약한 사랑을 의미한다. 도맹수가 사채업자 노만수를 폭행하는 장면에서, 과거 노만수가 자신을 폭행할 때 울려 퍼진 클렉션 사운드와 현재 자신이 노만수를 폭행하는 영상이 함께 결합되어 과거의 폭행이 현재의 폭행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녹즙기로 갈아진 살, 주인공이 걸머진 손도끼, 스테이크의 붉은 피, 그의 얼굴에 튄 피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주인공의 분노와 앞으로의 살인을 예고한다.

 

 

분노의 표출과 고립된 괴물: “나도 내가 알아서 살아.”

<럭키 몬스터>의 후반부에서 도맹수는 내재된 분노를 표출시키고 고립된 개인이 됨으로써 괴물로 추락한다. 그는 자신을 폭행하고 아내를 빼앗아간 노민수를 폭행하고 살해한다. 그는 아내에게 “내가 너를 구해준 히어로라고.”고 말하지만, 아내는 “나는 내가 알아서 살아.”라고 답변한다. 이에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나도 내가 알아서 살아.”라고 응대한다. 이를 지켜본 컨설팅 전문가가 “내가 맹수씨 재능 있다고 했잖아.”라며 기뻐하자 그도 죽여 버린다.

도맹수의 분노가 표출하면서 더 이상 내면의 자아인 DJ가 그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 전반부에서 계속 그의 머리 속에서 울리던 DJ의 목소리는 후반부에 와서는 사라진다. 내면에 있는 괴물이 외부로 분출되어 나오면서 더 이상 내면의 괴물과의 정신적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도맹수에게 사채업자는 두려움, 복수, 응징의 대상으로 점점 변화해 간다. 상생과 평화의 삶을 살고자 했던 도맹수는 “난 내가 알아서 살아”라는 말로 인해 내재된 분노가 폭발하며 폭력적이고 고립된 개인이 된다.

도맹수가 내재된 분노를 표출하고 고립된 개인이 되는 모습을 시선, 조명, 숏크기의 대비로 표현한다. 도맹수가 차 트렁크에 갇히는 장면에서, 도맹수와 DJ 사이의 명암의 대비를 보여주는 조명은 인물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선악의 대비를 표현한다. 도맹수가 살인 후 떠나는 장면에서, 앞의 손도끼(클로즈업)과 뒤의 도맹수(익스트림롱숏) 사이의 극과 극의 대비를 한 프레임에 담아냄으로써 영웅이 되고자 했지만 괴물이 되어버린 고립된 주인공의 추락을 표현한다.

 

 

킬로만자로의 표범을 꿈꾸는 하이에나

<럭키 몬스터>는 일반인이 힘겨운 상황에 내몰려 영웅으로의 상승을 꿈꾸지만 결국 괴물로 추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내만을 원하는 로맨티스트, 아내가 원하는 액션영화의 히어로가 되고자 했던 주인공은 아내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더 이상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삶을 잠식해 버린 자본, 폭력의 확산을 거쳐 결국 상생과 평화를 추구하던 주인공은 죽음과 함께 고립된 개인으로 남게 된다.

<럭키 몬스터>를 대표하는 전체적인 스타일은 내레이션과 음악이다. 가장 지배적인 스타일은 주인공의 내레이션이다. 내레이션은 주인공이 자신의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표현한다. 그리고 주제를 핵심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음악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의 국민가수 조용필의 노래 ‘킬로만자로의 표범’는 이상을 추구하는 킬로만자로의 표범이 되고자 했으나 하이에나가 되었다는 점에서, 영웅이 되고자 했으나 괴물로 추락한 주인공의 삶을 잘 반영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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