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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와 영화관의 관계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와 영화관의 관계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05.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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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화 감독의 1934년 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현재 남아있는 한국영화들 중 가장 오래된 영화로서 무성영화이다. 제작 과정에서 사운드 녹음을 하지 않았으니, 2007년에 발굴된 필름에 사운드트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그동안은 영화관에서 봤지만, 이번에는 한국영상자료원 VOD 서비스를 이용해 집에서 봤다. 여러 차례 본 영화이니 사운드가 없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1923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장편영화 제작 노하우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클로즈업, 화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배우들의 위치, 꽤 다양한 카메라 움직임, 엘리베이터를 탄 카메라가 바라보는 바깥 모습,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교차편집 등이 눈에 띄었다.

 

'청춘의 십자로' 스틸
'청춘의 십자로' 스틸

당시 스타급이었던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했다. 운동 경력이 있던 이원용 배우가 연기한 영복이 선보인 액션은 짧지만, 꽤 자연스러웠다. 영화 내내 전형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던 영옥은 마지막에 반전을 선사하는데, 신일선 배우의 코믹 연기도 어색하지 않았다.

 

'청춘의 십자로' 스틸
'청춘의 십자로' 스틸

서울역을 비롯해 서울 곳곳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뻔한 스토리긴 하지만 권선징악 결론이 주는 시원함은 유쾌했다. 무성영화를 눈으로만 보는 재미가 나름 존재했다. 끊임없이 머리를 쓰며 보는 느낌이 새롭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허전했다. 생각해보니 무성영화를 무성으로 본 적이 없었다. 세계영화 역사를 공부하며 본 유명 무성영화들도 DVD나 비디오테이프 제작 당시 녹음된 배경음악을 들으며 봤다. 영화를 눈으로만 보는 건 새롭기도 했지만, 어색하고 낯선 일이었다.

사실 무성영화가 고요하게 상영됐던 적은 없었다. 무성영화 시기 영화관은 오히려 시끌벅적했다. 스크린 옆에 책상을 두고 앉은 변사가 연기를 곁들여 해설하고,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했다. 효과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에는 녹음된 사운드 대신 라이브 사운드가 가득했다.

 

<청춘의 십자로> 상영? 공연?

<청춘의 십자로> 발굴 후 2008년 5월 첫 공개는 1934년 개봉 당시에 그랬듯이 변사 공연 형태로 진행되었다.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공연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조희봉 배우가 변사로서 해설을 맡았고, 키보드, 아코디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로 음악이 연주되었다. 상영 전후, 남녀 가수가 영화 속 인물처럼 차려입고 나와 노래도 불렀다.

 

'청춘의 십자로' 공연 모습
'청춘의 십자로' 공연 모습
'청춘의 십자로' 공연 모습
'청춘의 십자로' 공연 모습

첫 감상은 ‘뮤지컬 같다!’ 였다. 영화를 본건지 뮤지컬 공연을 본 건지 굳이 구분한 필요는 없었지만, 중독성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무성영화 관객들이 이렇게 재미있게 영화를 봤나?’란 생각도 들었다.

2008년 공연에 이어 2012년 <청춘의 십자로> 문화재 지정 기념 공연도 봤다. 그 사이 국내외 영화제를 비롯해 문화행사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진행한 덕에, 조희봉 변사의 해설은 디테일이 풍부해졌고, 한편의 뮤지컬을 관람한 느낌도 더욱 강렬해졌다.

<청춘의 십자로>는 현재까지 국내외 방방곡곡에서 소개되었다. 뉴욕, 런던, 베를린, 멕시코 과나후아토, 스페인 마드리드 등을 비롯해 서울, 부산, 수원, 제천, 울산, 춘천, 평창 등에서 기존 영관뿐만 아니라 산, 호수, 강, 바다, 정원 등에 마련된 야외무대까지 <청춘의 십자로>의 상영장이자 공연장이 되었다.

작년 독일 공연의 경우, 피아노 즉흥 연주에 독일어 변사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멕시코에서는 현지 밴드와 협업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지속되고 있다. 같은 영화지만 또 다른 영화로 재탄생되어 왔다.

 

영화가 완성되는 공간, 영화관

1927년 개봉된 <재즈싱어>(앨런 크로슬랜드) 이후 세계 영화계는 서서히 유성영화로 전환되었다. 유성영화의 등장을 두고 이런 평가도 있었다. ‘이제야 드디어 전 세계 관객들이 똑같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무성영화는 상영되는 영상은 동일했지만, 사운드는 다 달랐다는 걸 의미한다. 영상은 영화인들의 몫이었지만, 사운드는 영화관의 몫이었고, 음악가와 변사, 효과 맨 등이 협업했다. 관객들도 적극적인 반응으로 함께했다. 무성영화시기 영화관은 영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영화관은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행과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식사나 쇼핑 전후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팝콘과 탄산수 등 먹거리가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 관람이라는 경험이 다양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공간인 셈이다.

영화관이 사라질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화관은 끊임없이 변화할 거라 본다. 일단 코로나19가 안정화되고,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맘 편히 돌아갈 수 있는 날부터 와야겠지만 말이다.

그때까지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활용한 나름의 방법으로 나만의 영화관 공간을 만들어보시기 바란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글: 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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