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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동네책방, 일상적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1)
[이병국의 문화톡톡] 동네책방, 일상적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1)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7.2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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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링클레이터의 2004년 영화 <비포 선셋>을 보면, 작가가 된 제시가 셀린느와 보낸 꿈같은 하루를 책으로 써 파리에서 낭독회를 하던 중 다시 셀린느와 재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포 선라이즈>(1995)의 후속작으로 비엔나에서의 짧은 하룻밤으로는 이어질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는 영화이다. 참으로 애틋한 영화다. (<비포 미드나잇>(2013)은 그들의 사랑이 일상이 되면서 어떻게 파국을 맞는지 공포스럽게 그려낸다.) 그런데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제시와 셀린느가 재회하게 되는 장소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였다.

 

사진출처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인스타그램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접근선이 뛰어난 장소라서 그런지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필자도 2013년 등단하여 받은 상금으로 유럽 여행을 갔었는데 파리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이고 찾아가 본 적이 있다.) 헤밍웨이와 제임스 조이스가 자주 찾던 그곳은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건너온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동성 연인 아드리엔 모니에Adrienne Monnier와 같이 만든 서점으로 2차 세계 대전 때 문을 닫았다가 1951년,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은 휘트먼의 딸 실비아Sylvia Beach Whitman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작가들 및 일반인들의 일상적 장소였지만 지금은 파리의 명소가 되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작은 (고)서점이다.

서점은 작가와 독자를 일차적으로 매개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물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졌지만 규모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동네책방과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작은 규모의 서점이 여러 행사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오랜 세월 지속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역의 작은서점, 동네책방들로 인해 책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공공재로써 공유되고 소통되는 일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웃들의 시간과 사유가 공유되는 공간이자 일상적 장소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동네책방이 활성화된 시점은 (정책적 성과는 차치하고)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로 볼 수 있겠다.

책 소매가격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할인하지 못하도록 강제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올해로 17년째이고 신·구간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한 개정 도서정가제가 적용된 지도 6년이 지났다. 여러 문제들로 인해 폐지를 주장하거나 완전 도서정가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재로서는 소형 출판사와 서점들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독자 인구를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가, 이겠지만, 도서정가제로 책값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올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발간한 ‘2020 한국서점편람’을 보면, 국내서점은 2003년 3589개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총 1976개로 하향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학습지와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는 ‘기타서점’의 증가세이다. 기타서점은 전통적 서점에 가까운 서점과 책이 아닌 음료, 주류, 문구 등이 주된 수입인 서점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기타서점은 2015년 61개에서 지난해 344개로 증가했다.1) 물론 대형 체인서점과 온라인 서점도 몸짓을 불렸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이겠다. 그러나 기타서점으로 분류된 지역서점, 동네책방의 증가 추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이 독자와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동네책방2)들의 타격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온라인 서점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출을 앞질렀다는 기사3) 들을 보면 오프라인 서점 그 중에서도 동네책방들의 어려움은 짐작할 만하다. 비대면 시대이니만큼 그동안 동네책방들이 구축해왔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책방은 독서 시장의 최말단에서 출판과 창작, 향유와 소통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책이 지닌 공공재로서의 가치가 가장 왕성하게 공유되는 장소가 동네책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책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우리의 삶과 일상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가 동네책방인 것이다.

필자가 근래 자주 가는 동네책방으로 ‘라이바리Li.Bar.i’라는 곳이 있다. 서적, 가게 등을 의미하는 Librairie와 bar를 결합한, 이른바 ‘책바’이다. ‘연남동 책바cheagbar’를 벤치마킹한 곳인데 독립서적을 주로 다룬다. 서점편람의 기준으로 보면 기타서점에 해당하는 곳으로 책 판매보다는 주류-칵테일과 위스키 판매가 주된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가에 위치한 라이바리 역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초 문을 열었지만 봄 학기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하기도 하지만 대학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진출처 - 라이바리 인스타그램
사진출처 - 라이바리 인스타그램

동네책방에서 수익 구조를 따지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동네책방의 책 판매는 책방을 유지하기 위한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책방의 경우, 평균 도서 공급률이 70~75%이기에 단순히 책만 파는 것으로는 공간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앞에서 본 라이바리처럼 주류나 커피 등의 음료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동네책방에서 설정사진 찍고 대형서점에서 온라인 주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방지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이웃과, 손님과 관계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파는 곳이 서점이라지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에는 책만 팔아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책방으로 이어지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순전히 창작자 입장에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이미 수많은 책방들이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하여 북토크를 열어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북스테이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공방을 두어 예술가들과의 공간을 나누어 쓰며 개성 넘치는 굿즈를 공동 개발해 판매하기도 한다. 드로잉 클래스나 창작 교실을 개설하여 이웃의 문화적 감성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는 대형서점과 차별화된 북큐레이션을 통해 이주의 책, 이달의 책을 선정하여 손님들에게 추천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서모임, 워크숍, 세미나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필자도 인천 배다리의 나비날다책방과 계양구의 책방산책, 서구의 서점안착과 같은 곳에서 작가로, 독자로, 클래스의 학생으로 참여한 바 있다.

동네책방의 각종 문화예술행사는 이웃들, 더 나아가 먼 곳의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끈다. 이는 대형서점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동네책방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별화된 기획으로 소비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을 펼쳐 일정한 판매부수를 확보하려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함이다. 이것을 살롱 문화, 혹은 사랑방 문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표적인 곳이 ‘땡스북스’라고 할 수 있을 텐데 2011년 문을 연 홍대 앞 ‘땡스북스’는 동네책방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으며 동네책방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이다. 독특하고 세련된 홍대 앞의 분위기를 책방은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젊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퇴근길 직장인들을 사로잡는 이 책방은 북토크나 금주의 땡스, 북스! 땡스, 초이스! 땡스, 페이퍼! 등을 통해 책방지기의 안목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들의 독서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책 판매와 결부시킨다. 또한 땡스북스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주제의 책을 선정하여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를 쇼윈도 공간전시를 통해 전시하는 한편 내부 테이블에는 작가들의 소장품이나 간단한 메모들을 보여줌으로써 책방을 찾는 이들의 흥미를 북돋는다. 단순히 호기심에 들른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지속적인 관심과 반복적인 참여로 돌리는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네책방의 존재 기반이 되어 그 너머를 지향할 수 있게 한다.

(다음호에 계속)

 

사진출처 - 땡스북스 홈페이지
사진출처 - 땡스북스 홈페이지

1) 「서점 감소세 여전…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20 한국서점편람> 분석 결과 발표」, 《한국강사신문》, 2020. 5. 17.

2) 작은서점, 독립서점, 동네책방 등은 각각을 구분하는 정의가 다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동네책방으로 이들을 통칭하도록 한다.

3) 「코로나19에 달라진 서점..온라인 매출, 오프라인 앞질렀다」, 《뉴스1》, 2020. 6. 8.

 

 

글: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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