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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칼’ 모성애와 희생양들-<마더>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칼’ 모성애와 희생양들-<마더>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0.07.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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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와 관련해서는 동물의 사례가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최근에는 제주도 연안에서 촬영된 돌고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에는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자꾸만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새끼는 죽은 지 2주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됐는데, 어미 돌고래는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줄기차게 밀어 올리는 행동을 반복한 것이다. 연구진은 어미 돌고래가 새끼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언론들은 ‘죽은 새끼 업고 다니는 돌고래 모정에 뭉클’, ‘애틋한 모성애’와 같은 감성적인 제목을 달았다. 홍수로 불어난 물을 피해서 새끼 다섯 마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기진맥진한 어미 쥐의 영상이 보도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에서도 엄마(김혜자)의 모성애는 눈물겹다(엄마보다 ‘어미’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이 영화에서 엄마의 모성 본능은 살인 혐의로 수감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표현된다. 도준은 동네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지만, 실제로도 바보이지만,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소중한 아들이다. 따라서 엄마가 도준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엄마의 행동은 과감하고, 집요하고, 끈질기다. 도준이 죽인 것으로 마무리된 여고생 아정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내 아들은 죄가 없다”고 외치고, 전단지를 만들어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아들 친구를 동원해 아정의 문란한 사생활을 탐문한다. 이는 새끼를 줄기차게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어미 돌고래의 행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제주 바다의 어미 돌고래는 죽은 새끼를 살려내지 못했지만, <마더>의 엄마는 도준이 석방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식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래서 결국 구해내는 엄마의 전형적인 모델은 데메테르이다. 데메테르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이자 곡식의 여신이다. 이 서사는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가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데서 시작된다. 데메테르는 딸을 지하세계에서 구해내기 위해 양면 작전을 구사한다. 제우스를 찾아가 하소연하고, 대지를 돌보지 않아서 인간들이 굶어죽도록 방치한다. 그러자 제우스가 중재에 나선다. 페르세포네가 1년 중 4개월(혹은 6개월)은 지하세계에 머무르고, 나머지는 지상에서 생활하도록 정리한다. 페르세포네의 이러한 생활은 식물(곡식)의 생육 주기와 일치하며,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도준이 수감된 것은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된 상황과 유사하다. 교도소는 지하세계이자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이며, 도준의 석방은 페르세포네의 부활 서사와 같은 맥락이다. 도준과 페르세포네, 엄마와 데메테르는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거의 동일한 캐릭터인 셈이다.

 

그런데 <마더>의 모성애의 밑바닥에는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들 도준에 대한 엄마의 죄의식이다. 엄마와 데메테르의 모성애의 다른 점이다. 이 죄의식은 다 큰 아들에게 밥상머리에서 고기를 발라주거나 길 건너 오줌 누는 곳까지 따라가서 한약을 먹이는, 단순한 모성애의 범주를 넘어서는 엄마의 행위로 연결된다. 엄마의 죄의식은 어린 도준의 목숨을 거두려고 했던 과거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엄마는 도준이 다섯 살 때 동반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도준은 이 ‘농약 박카스’ 사건의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면회 온 엄마 앞에서 이 기억을 소환한다. 왜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지, ‘농약 박카스’를 엄마보다 먼저 마시게 했는지 따진다. 엄마는 도준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다는 엄마의 대답은 도준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도준은 언제부터 바보였을까? 아마도 ‘농약 박카스’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엄마의 죄의식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엄마가 멀쩡한 아들을 바보로 만들었으니까. 설령 ‘농약 박카스’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동반 음독자살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엄마의 행위는 트라우마가 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들을 챙기는 엄마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된다. 엄마의 집착에 가까운 모성애는 사실 죄의식 때문이며, 동시에 속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더>는 모성애와 죄의식이 결합된 속죄의 영화가 된다. 따라서 <마더>의 서사는 엄마가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혹은 아들을 바보로 만든 죄를 씻어내려는 엄마의 속죄의 기록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엄마의 속죄 행위로 인해 무고한 희생양이 발생한다. 기도원을 탈출한 종팔과 도준의 살인 장면을 목격한 고물상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종팔은 진범으로 몰려 도준 대신 수감되고, 고물상 할아버지는 사건의 진실을 경찰에 알리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누구의 죄를 대신하는 존재들인가? 종팔은 도준의 살인죄를 뒤집어쓴 희생양이고, 고물상 할아버지는 도준의 부활을 위한 희생양이다. 도준의 석방은 종팔과 고물상 할아버지의 강요된 희생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엄마가 진실을 수용했다면, 그들은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엄마의 모성애는 위험한 칼이 된다.

 

<마더>에서 엄마의 행위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들의 죄 없음을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 엄마 자신의 문제로 다가온다. 엄마는 종팔이 아들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또 아들의 범행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고물상 할아버지를 살해한다. 신화에서는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귀환한 후 세계의 질서가 회복되지만, <마더>에서는 도준이 출소한 뒤에도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더구나 엄마에게는 위험한 비밀이 생겼다. 도준이 진범이라는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과 고물상 할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다. 따라서 도준이 불에 탄 고물상에서 찾아낸 엄마의 침통은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그래서 도준은 “이런 거 막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라고 엄마를 타박한다. 도준은 어떤 순간에는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판단한다. <마더>의 엄마와 아들은 둘 다 살인자이다. 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발설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엄마의 모성애는 희생양까지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희생양은 일반적으로 재난 혹은 죄의 전가와 관련이 있다. 자신(집단)의 죄와 고뇌를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것은 원시사회에서 흔한 일이었다. 죄의 전가 대상은 동물, 물건, 나무, 사람, 인간신 등 다양했다. 사람의 경우에는 죽어도 그다지 애석하지 않은 천한 사람이 주로 희생 제물로 선택됐다. 재난을 전가 받은 사람은 살해되거나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병든 자, 죽어가는 자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자신의 질병이나 죄를 대신 짊어지도록 하기도 했다. 고통과 죄, 재난의 전가는 집단 차원에서도 이뤄졌다. 원시사회에서는 주술사가 의식을 주도했다. 아테네에서는 역병, 한발, 기근 등의 재난이 닥쳐오면 공금으로 부양한 천민 가운데 두 명을 골라서 제물로 바쳤다. 두 사람은 시내를 끌려 다니다가 성 밖으로 추방돼 돌에 맞아 죽었다. 인간을 신의 화신으로서 제물로 바친 사례도 많다. 아테네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아즈텍 족에서도 이러한 희생 제의가 행해졌다(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이경덕 옮김, 까치, 271~308쪽).

 

희생제의에서 제물의 성격은 다양했다. 성스러운 동물이나 인간신 혹은 미천한 존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마더>의 희생양은 미천한 존재들이다. 종팔은 부모가 없는 데다 “상태가 안 좋은” 인물이다. 그는 남방셔츠에 죽은 아정의 혈흔이 묻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쓴다. 그런데 아정은 툭하면 코피를 흘렸고, 종팔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물상 할아버지 역시 가족이 없으며, 외딴 곳에서 홀로 지낸다. <마더>는 엄마가 고물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익스트림 롱쇼트로 촬영함으로써 마을과 고물상의 거리를 강조한다. 이 거리는 고물상 할아버지와 마을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이기도 하다. <마더>에는 몇 가지 트릭이 있다. 영화 중반까지 도준이 희생양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도준은 희생양의 조건에 들어맞는 인물이다. 하지만 도준에게는 데메테르 못지않은 엄마가 있다.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엄마의 극성스러운 행동이나 엄마와 경찰의 관계를 볼 때, 그 결과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엄마 없는 종팔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봉준호 영화 특유의 현실비판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더>에서 엄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엄마의 딜레마는 두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종팔의 면회 장면을 보자. 엄마는 종팔에게 “부모님은 계시니?” 하고 묻는다. 종팔은 고개를 젓는다. 이어서 엄마는 “엄마 없어?”라고 다시 묻는다. 엄마는 첫 번째 질문을 한 뒤 울음을 터뜨리고, 두 번째 질문 이후에는 오열하며 입술을 깨문다. 종팔에 대한 연민 혹은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복잡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엄마도 없고 ‘상태마저 안 좋은’ 종팔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고나 있을까? 더구나 종팔은 진범이 아닌데.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 엄마는 도준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자백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엄마는 울음으로, 오열로 자신의 딜레마를 표현한다. 그리고 진실보다 아들을 선택한다.

 

춤의 의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엄마는 왜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혼자 춤을 추는 것일까? 마른 갈대 무성한 벌판에서 추는 엄마의 춤은 무슨 의미일까? 이 몸짓은 종팔과 고물상 할아버지를 위한 진혼의 춤사위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정화하거나 혹은 자신의 운명을 다스리기 위한 몸짓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행위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엄마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엄마는 진실을 외면했다. 죄의식과 결합한 모성애라는 갑옷을 입고서 종팔이 희생양이 되는 것을 묵인했다. 또한 엄마는 살인을 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한 엄마가 진혼의 춤을 추고, 운명을 정화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과 딜레마로 인해 엄마의 춤은 이도저도 아닌, 춤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몸짓이 된다. 관광버스 안에서 추는 막춤의 의미도 복합적이다. 엄마는 도준에게서 침통을 받아들고 관광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춤추는 엄마들 속으로 스며든다. 이때 카메라는 버스 밖에서 엄마들을 실루엣으로 보여준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도준의 엄마는 세상의 모든 엄마의 한 명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엄마는 도준의 엄마일 수 있다. 엄마의 춤은 또한 윤리적, 법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마더>에서 엄마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엄마는 아들을 낳은 자인 동시에 아들을 죽이려고 한 자이다.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진실을 외면한 자이며,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른 자이다. 그렇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는 아니다. 엄마는 종팔의 앞에서 오열하고, 비록 자격은 없을지라도 희생양을 위해 진혼의 춤을 춘다. <마더>에서 엄마의 모성애는 순결하지 않다. 위험하다. 그 안에는 날선 죄의식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엄마는 윤리적, 법적 단죄의 대상이기도 하다. 관광버스의 다른 엄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아니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래서 엄마는 ‘모든 엄마는 똑같다’는 듯이 다른 엄마들 속으로 숨어든다. <마더>에서 모성애는 엄마의 삶과 영혼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찌르고, 엄마는 상처투성이 짐승이 되어 스산한 가을 벌판을 무겁게 헤맨다. 결국 <마더>의 마지막 희생양은 죄의식과 결합한 모성애의 포로가 된 엄마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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