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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독서의 변신은 유죄일까?
[류수연의 문화톡톡] 독서의 변신은 유죄일까?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07.27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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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하는 독서, 다시 읽고 쓰는 일에 대하여(2)

 

다시 점검하는 읽다의 의미

독서(讀書)라는 말은 이라는 명사와 읽다라는 동사가 만나 책을 읽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하나의 명사가 된 것이다. ‘읽다의 사전적 정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 층위를 가진다. ‘이해하다’, ‘소리 내어 발음하다’, ‘알다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미와 보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은 바로 이해하다이다. 일반적으로 눈으로 인식하고 머리로 이해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독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서를 지극히 사적인 행위로 인식하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읽다의 두 번째 의미, 바로 소리 내어 발음하다이다. , ‘낭독(朗讀)’이다. 우리는 실제로 일상에서 수많은 낭독의 현장과 마주친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호명해서 책을 읽으라고 말할 때, 이때 책을 읽다의 의미는 눈으로 인식하여 머리로 이해하고 소리 내어 발음하는 것까지의 과정을 포함한다.

또한 학창 시절, 시험 대비를 위해 교과서의 주요 내용을 낭독하면서 암기의 효과를 높이고자 했던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뿐이랴. 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라.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얼마나 많은 책을 낭독해주셨는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맨 처음 마주한 독서는 당연하게도 눈으로 인식하여 머리로 이해하고 소리 내어 발음하는 바로 그 독서(낭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독서라는 말에 소리 내어 발음하는 것까지의 과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분명 같은 의미의 단어임에도 독서와 책을 읽음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독서에는 이러한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

사실 근대 이전까지의 독서는 공감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조선 시대의 선비의 모습은 어떠한가? 단정한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서 사서오경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학교라 할 수 있는 서당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어린 아이들이 모여 천자문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근대 이전까지 우리에게 독서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가장 능동적으로 신체의 모든 감각을 결합시키며 진행되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정한 자세로 앉아, 눈으로 인식하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들어 이해하는 이 총체적인 과정이 바로 독서라는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근대 이후, 불과 100년 남짓 동안 학습되어온 독서를 독서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독서는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현상”1)이다. ‘독서의 수행은 개인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2) 독서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들은 대체로 무엇을 읽을 것인가의 문제에 더 천착해 왔지만, 사실 어떻게읽을 것인가의 문제 역시 문화적 현상으로서 독서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떻게야말로 독서가 우리의 일상과 마주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맥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낭독(朗讀)의 귀환

그렇다면 오늘의 독서를 다시금 살펴보자. 지금, 우리의 독서는 어떠한가? 우리가 누리는 독서의 방식이 이미 변해가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발전은 이라는 매체를 먼저 변화시켰다. 따라서 읽다의 범주도 필연적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변화 가운데 있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독서 역시 변주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마트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이 낭독의 현대화를 야기한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것은 오랫동안 망각되었던 또 다른 독서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사진1. 이북 리더기 크레마. 출처-네이버
사진1. 이북 리더기 크레마. 출처-네이버

처음에 변화한 것은 이었다. 이북(E-Book)의 등장은 독서와 종이라는 물질 사이의 관계를 차단했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바로 리더기(Reader-)라 불리는 디지털 단말이었다. 종이의 자리를 대신한 물질로서 기계는, 그럼에도 이라는 매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책에 가장 가깝게 구현되도록 설계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북의 등장은 매체의 변화를 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독서 행위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북에서도 여전히 책장을 넘겨 눈으로 인식하여 머리로 이해한다는 읽다의 의미는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 행위의 과정에서 어떻게라는 부분에 보다 구체적인 변화를 야기한 것은 바로 웹 플랫폼의 등장이다. 웹툰에서 웹소설까지, 새롭게 등장한 웹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웹 플랫폼은 디지털 단말 속에서조차 살아남았던 종이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도록 만들었다. 리더기 안에서조차 살아남았던 책장 넘기기는 웹 플랫폼 속에서 스크롤로 대체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비자인 독자(혹은 유저)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작품 생산 과정에 반영되는 프로슈머(prosumer)의 개념 역시 적극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진2. 오디오북 윌라. 출처–윌라 홈페이지
사진2. 오디오북 윌라. 출처–윌라 홈페이지

하지만 더 큰 지각변동을 예감되기 시작한 것은 보다 최근의 일이다. 바로 오디오북(Audio-Book)의 등장이다. 물론 오디오북은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이미 시간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오디오북은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일종의 어학학습처럼 독서의 기능적인 면에 집중한 본격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독서의 방식에 따른 기본적인 개념을 재고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식 수단인 이 아닌 로의 발상 전환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에서 청각으로 변화되는 독서라니. 익숙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혁신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이북에서 오디오북으로의 전환은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독서에 있어서 문자가 음성보다 압도적이다. 아니, 오디오북이 유행한다고 해도 여전히 텍스트는 문자로 전달되고 눈으로 읽혀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종이라는 매체를 떠난 문자가, 기존의 활자매체에 가졌던 만큼의 가치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미 종이를 떠나 단말의 세계에 접속한 이상, 독서 행위 역시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문자와 삽화를 넘어서는 감각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음성과 음향, 그리고 영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3)

 

다시 터치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실제로 이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여 독서를 향유해왔기 때문이다. 근대적 독서가 정착된 이후 소리를 통한 독서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최초의 독서는 귀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우리 안에는 오감으로 독서하는 DNA가 내재되어 있다. 디지털 단말과의 접속은 오히려 우리에게 망각되었던 또 다른 독서를 재생시킬 기회일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읽다라는 의미의 3가지 층위 안에는 이 문화적 행위가 얼마나 유연한 것인지가 이미 드러나 있다. 이해하고, 소리 내어 발음하고, 결국 그것에 대한 아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행위가 이것으로 망라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독서는 읽는행위이고, 이렇게 읽는대상으로서 책의 모습은 영원불변하지 않다. 인류는 석판을 읽었고, 양피지를 읽었으며, 책을 읽었고, 이제 디지털 단말을 읽는다. 우리의 텍스트를 기록하는 매체는 늘 달라졌지만,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한 가치는 변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 더 나아가 그로부터 더 나은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탐구에 다름 아니다.

디지털 단말이 만드는 새로운 독서의 방식을 일종의 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이미 고루해졌다. 오히려 이 단말이라는 문화 놀이터 속에서 우리의 독서는 좀 더 흥미롭게 생산적인 것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 이 새로운 놀이터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게 될 것인가? 이제 그것을 위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모을 때다. 우리의 독서는 이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참고문헌

1) 천정환·정종현, 대한민국 독서사, 서해문집, 2018, 14.

2) 위의 책, 14-17쪽 참조.

3) 류수연, 클라우드 컴퓨팅과 문학, 인문과학연구논총33,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402-40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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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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