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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곁'으로 떠나는 여행
[서포터즈 칼럼] '곁'으로 떠나는 여행
  • 송소민(르디플러)
  • 승인 2020.08.10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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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러 1기=송소민] ‘세계화’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다채롭고 찬란하다. 교통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공간은 압축되고, 사회적 관계 또한 기존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급속히 확장되었다. 공동체의 형성이 지리적 조건, 즉 ‘영토’에 의해 한정되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문화’는 그 자체로 다양성과 접촉을 전제하는 개념이 되었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유무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환경 위기와 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국가들이 협력하여 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화는 인류 전체의 진보와 한계 없는 소통,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 대규모로 이동하는 자본 등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그 산물들이 너무나 화려한 탓에,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주변부’는 종종 (때로는 의도적으로) 간과되기 일쑤이다. 사실 세계화 담론은 “자본주의의 변모하고 있는 외관 뒤에 있는 착취와 축적이라는 본질의 연속성을 신비화”[1]하는 데 크게 일조하는데, 그 중 하나의 핵심적 요소가 바로 ‘관광’이다.​



1. 자본주의 시대의 여행

산업화와 도시화,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세계화에 힘입어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투어리즘은 ‘이국적’인 것에 열광했던 식민지 시대 엘리트들의 부르주아적 취미에서 시작되어, 점차 시장이 그 욕구를 포섭함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노동과 여가가 분리되면서 여행은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풀 수 있는 효과적인 활동으로 사랑받았고, 곧 다양한 취향들을 반영한 각양각색의 관광상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없는 게 없어진 편의점처럼, 더욱 편리하고 저렴하게 나에게 꼭 맞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동유연화와 금융자유화,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에 맞추어 전세계의 관광지들도 신속하게 개발되었다. 이제는 충분한 비용만 지불하면, 색다른 장소에서 쾌적하게 여가를 향유할 수 있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의하면 2018년도 세계 국제관광객수는 전년비 5.6% 성장하여 14억 명이며, 세계 국제관광수입은 2017년 기준 1조 3400억불(전년비 7.5% 성장) 규모이다. 세계 관광산업의 국민총생산(GDP) 기여도는 총기여도 10.4%(직접기여도 3.2%)이며, 고용기여도는 총기여도 9.9%(직접기여도 3.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 여행에 대한 개인들의 욕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관광 시장도 더욱 확대되고, 이제 관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행은 잠시나마 답답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안겨주는 시간이자, 그만큼 점점 더 많은 자원과 노동력을 그 수하로 끌어들이고 있는 주요 산업이다. 관광은 “즐거운 일일 뿐 아니라 좋은 일”[3]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 어떤 ‘세계화’

그러나 관광에 있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사인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관광 산업은 해당 지역을 활성화시키기도 하지만, 더 많은 관광 수익을 올리기 위한 개발이 그 지역 고유의 생태계를 갉아먹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역에서 생산하는 작물이 해당 지역의 특산물로 한정된다던가, 관광중심지를 새로이 개발함에 따라 원주민들의 주거지는 낙후된다던가, 과잉관광으로 인해 자연 및 주거 환경이 파괴된다던가, 대형 프랜차이즈와 관광시설들이 들어서며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본다던가 하는 식이다. 즉 공공 예산과 공적 개발 계획이 주민 삶의 개선보다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에 집중되고, 한 지역의 자원과 환경이 ‘돈을 쓰러 온 사람’의 편의와 취향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것이다.[4]

이렇듯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하고, 세계 각 지역들의 활성화와 적극적인 교류를 가능케하는 것처럼 보이는 투어리즘도, 결국은 ‘과잉’과 ‘유동성’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에 봉사할 뿐이다. 상기한 부작용들에도 불구하고 관광산업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저렴한 상품들을 출시해 노동자들을 고객층으로 흡수하는 동시에, 그들과의 차별화를 원하는 부르주아를 위한 고가 상품들 또한 끊임없이 개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계급화를 통해 그 몸집을 키워가지만, 동시에 그 계급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획일적인 생산체계와 “자유로운” 소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한다.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된 ‘공정한’ 경쟁은 암묵적인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만든다. 자유로운 세계화의 신화가 확산될수록,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에 종속되는 약자들의 존재는 지워진다. 세계화의 혜택은 주도권을 가진 일부에게 집중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는 자유로운 경쟁에 따른 결과이다. 지역 중심의 경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지역화’(localization) 운동 또한 이러한 흐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이는데, 이미 ‘돈’으로 통일된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가치들이 일정 가격으로 치환되고,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기 위해 여러 자원들의 상품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관광은 필연적으로 착취적일 수밖에 없다. 관광은 “화폐를 수혈해서 수치와 지표로만 성장하는”[5],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산업이다.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만족시키는 일련의 물질/비물질 상품들과 그것의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불평등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자원과 노동력이 착취당함에도 불구하고, 관광이라는 분야에서 사람들은 착취와 불평등에 대한 사유를 유예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자신의 착취와 소외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 (게다가 비용을 지불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왔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자가 늘어나고 이어서 소비사회가 발전하면서, 관광은 생산주의 사회의 보조 동력 역할을 했다. 이 위락 산업은 단숨에 노동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생산성의 반대급부인 임금은 그리움 가득한 희망에 발을 붙인 악마와의 거래다.



3. ‘세계성’

세계성은 필요에 따라 문화적·자연적 다양성에 적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이고 지역적이며 가능한 한 멀리 확대되는 생태학을 목표로 추구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계화와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예전부터 이어져 왔고, 착취적, 파괴적이지 않은 관광을 추구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불평등과 더불어 여행, 특히 항공 여행이 초래하는 심각한 환경파괴를 줄이자는 취지로 등장한 ‘생태관광’이 하나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환경과 지역 경제를 해치지 않는 관광으로써, 이는 단순히 환경파괴를 줄이자는 것 뿐 아니라 생태학이 기반을 두고 있는 ‘관계’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원주민과 관광객이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로 만나는 데 그치지 않는, “영혼도 없고 흥취도 없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더 깊이 있고 드물며 시적이고 덜 피상적인 교류”[6]를 포함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에 실린 기사 <세계화에서 벗어나 세계성에 눈뜨기>의 로돌프 크리스탱은, 이를 ‘세계성’(mondialité)으로 설명한다. 세계화는 균일하고 획일적인, 그리고 착취적인 하나의 흐름이라면, 세계성은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관계 형식인 셈이다. 여행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관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비대칭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제한적인 접촉을 타파하면, 여행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구축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이는 생명이 경시되는 자본주의를 탈피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광 산업이 크게 축소되고 이동의 자유 또한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여행을 떠나왔는가? 여행을 지극히 ‘상품’으로 인식해왔다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지불한 비용과 내가 얻은 편익 밖에는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여행, 누군가의 ‘곁’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성’을 품고 여행을 떠나는 순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우리는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법을 배우고, 또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에이드리언 버드 (2001년, 2월 1일). 세계화의 신화에 대한 도전. 노동자연대. Retrieved from https://wspaper.org/article/106.
[2] 김병헌 (2019년, 7월 15일).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항공·관광 정책 방향. 경제포커스. Retrived from http://www.economyf.com/m/view.asp?idx=3874.
[3] 로돌프 크리스탱 (2020년, 6월 30일). 세계화에서 벗어나 세계성에 눈뜨기. 르몽드디플로마티크. Retrived from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07
[4] 채효정 (2019년, 11월 26일). 오버투어리즘. 참세상. Retrived from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4468
[5] 채효정 (2019년, 11월 26일). 오버투어리즘. 참세상. Retrived from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4468
[6] 로돌프 크리스탱 (2020년, 6월 30일). 세계화에서 벗어나 세계성에 눈뜨기. 르몽드디플로마티크. Retrived from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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